[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전시장에 들어간다는 건 보통 어떤 약속을 전제로 한다. 조명이 켜져 있고, 동선은 정리되어 있으며, 작품은 보호받는다. 우리는 그 약속에 따라 작품을 관람한다. 아트선재에서 열리고 있는 ‘적군의 언어’는 그 약속을 처음부터 비껴간다. 입구는 막혀 있고, 어디부터 봐야 할지도 선뜻 감이 오지 않는다. 이 전시는 관객을 맞이하기보다, 이미 다른 규칙으로 돌아가고 있는 세계 안으로 밀어 넣는 쪽에 가깝다.
이 전시를 만든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Adrián Villar Rojas)는 흔히 조각가로 불리지만, 그의 작업을 조형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는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는지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로하스는 전시를 위해 미술관을 수개월 동안 관찰했고, 공간에 남겨진 과거의 흔적과 사람들의 일상적 움직임까지 작업의 조건으로 보았다. 전시장 곳곳에 남아 있던 바닥의 구멍, 벽의 잔여 흔적, 별다른 기록 없이 서 있는 구조물들은 모두 작업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고, 그것들을 새로운 생명체와 자연의 유입과 결합시키는 것이 그의 핵심적인 작업 방식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런 태도는 분명하다. 미술관 내부는 깔끔한 전시장이 아니라 관리가 중단된 공간처럼 보인다. 벽은 드러나 있고, 공조 장치는 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온도와 습도는 작품에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은 숨겨지지 않는다. 작품과 공간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관객은 그 환경 안에 잠시 들어온 존재가 된다. 불편함이 먼저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불편함은 이 전시가 의도한 상태에 가깝다.
‘적군의 언어’라는 제목은 전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적군은 싸워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존재에 가깝다. 로하스는 인류가 늘 낯선 존재와의 마찰 속에서 사고의 틀을 넓혀왔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해되지 않는 대상과 마주할 때, 우리는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왔다. 이 전시는 바로 그 지점, 아직 말로 정리되지 않은 상태를 공간 전체로 옮겨놓는다.
이런 태도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도 겹친다. 인공지능과 알고리즘, 자동화된 시스템은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로하스의 전시는 이 상황을 설명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더 이상 중심에 서지 않는 세계를 물리적으로 구현해 놓는다. 여기서 관객은 주체라기보다 여러 요소 중 하나로 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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