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의 충만함을 믿는 마음, 내일로 기꺼이 향하기 위한 내면의 근육, 삶을 지탱하는 힘.
사랑을 말하는 예술 작품 속 언어들을 모았다. 우리의 세계가 각양각색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바라며.
이제니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그러니까 사랑 때문이다 사랑 때문이다.
이제니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
없는 목소리가 그리워서 사전을 펼쳐 열어 사랑이라는 낱말을 찾아보는 밤이 있다.”
사랑을 가장 선명하게 감각하는 순간은 대체로 그 안에 있을 때가 아니라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낸 후에야 뒤늦게 찾아온다는 사실이 슬프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제니의 시 ‘영원이 미래를 돌아본다’는 누군가와 함께일 때보다 그들이 더는 곁에 없을 때 분명해지는 게 사랑이라는 사실을 새삼 되새겨보게 한다. 세상을 떠난 개가 곤히 잘 때 느껴지던 숨 냄새, 누군가와 살을 맞댈 때 전해지던 온기, 언젠가 나란히 앉아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피아노 건반을 누르던 때의 감촉 같은 것.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감각이란 이렇듯 어느 날 문득 들려오는 소리에서, 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향기에서, 익숙한 감촉에서 선명히 되살아난다. “사랑은 완전한 상실 뒤에야 비로소 시작된다”는 작가의 말이 시를 읽고 나니 마냥 슬프게 들리지 않았다. 함께 지나온 시간이 우리 안에 남긴 흔적은 상실 이후에도 색과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해서 살아 숨 쉴 테니까. 시의 화자처럼 ‘떠나간 이의 목소리가 그리울 때마다 사전을 펼치고 사랑이란 낱말을 찾아보는’ 순간에, 우리는 우리가 사랑했던 대상이 하나의 고정된 이름에 갇히지 않고 냄새와 소리, 감촉과 같이 다양한 이름으로 흩어져 여전히 우리 곁에 존재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이 깊은 위로로 다가온다.
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
“It’s this secret world that exists right there in public, unnoticed, that no one else knows about.”
노아 바움백 <프란시스 하>
“거기에는 비밀스러운 세계가 존재해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세계.”
늘 영화 <프란시스 하>가 그리는 ‘프란시스’와 ‘소피’의 관계가 바로 이상적인 사랑의 형태일 거라 생각했다. 혼자서는 완전하지 않은 나의 세계를 빈 부분에 꼭 맞는 퍼즐 조각처럼 채워주는 존재, 나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인. 그리하여 우정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끝내 설명할 수 없는 관계. 영화는 첫 시퀀스부터 두 사람만의 공고한 세계를 비추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둘의 관계는 프란시스의 삶만큼이나 예측할 수 없는 곡선을 그리며 위태롭게 흘러간다. 영화의 중반, 서로의 모든 것을 공유하던 시절을 지나 소피가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해 떠난 뒤, 프란시스는 관계에서 자신이 원하는 하나의 구체적인 순간에 대해 들려준다. “파티에서 각자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웃고 있는데, 눈을 돌리다가 서로에게 시선이 멈추는 거예요. 어떠한 불순한 의도도 없이, 단지 이번 생에 그 사람이 내 사람이라서. 언젠가 끝날 인생이라 재밌고 슬프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비밀스러운 세계가 존재해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우리만 아는 세계.” 이때 프란시스가 말하는 세계란 의심할 여지 없이 소피와 함께하는 세계일 것이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 불러야 할까. 이 물음에 답하듯 영화는 엔딩을 얼마 남기지 않고 군중 속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머무는 순간을 포착한다. 그 짧은 순간 두 사람의 얼굴 위로 만감이 교차하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살아오며 만난 나의 여자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우정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싶었던 얼굴들을.
미츠키 ‘First Love / Late Spring’
“So please, hurry, leave me,
미츠키 ‘First Love / Late Spring’
I can’t breathe
Please don’t say you love me
胸がはち切れそうで”
“그러니까 제발, 서둘러 떠나줘,
숨을 쉴 수가 없어
제발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사랑은 언제나 우리 자신의 취약함을 새로 깨닫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미츠키(Mitski)의 곡을 통해 배운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랑에 빠졌던 경험을 토대로 가장 솔직한 언어로 써나간 미츠키의 곡 ‘First Love / Late Spring’에는 불현듯 찾아온 사랑 앞에서 한 존재가 속절없이 겪어야만 하는 내면의 혼란이 생생히 그려져 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있어 숨을 쉴 수가 없으니 제발 서둘러 떠나달라고, 가슴이 터질 것 같으니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달라고 간청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떠올려본다. 첫사랑이란 이런 것 아닐까.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력하게 한 존재의 중심을 흔들어놓는 사건이자, 키만 자란 어린 아이 같은 자신의 나약함을 여지없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일. 그 어떤 낭만적 수사 없이 첫사랑의 본질을 정확하게 그려낸 이 곡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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