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하며 영문 한류 뉴스 사이트 K 바이브에서도 영문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AI 영상 사기 광고, 신뢰를 훔치는 새로운 인프라(?)
지난 칼럼에서 인공지능(AI) 영상 기술이 딥페이크 범죄와 가짜뉴스에 악용되는 현실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이제는 광고 시장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소비자의 신뢰 자체를 노리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AI 영상 기반 사기 광고는 그저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수준을 넘어, '믿을 만해 보이는 말투와 형식'을 정교하게 설계해 소비자를 설득하고, 특히 취약 계층을 정조준한다.
목적은 명확하다. 어떻게든 신뢰를 얻어 클릭하게 만들고, 결국 결제 버튼까지 누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냥감은 점점 더 구체적인 연령, 관심사, 심리 상태로 좁혀지고 있다.
최근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등 주요 플랫폼에는 AI로 제작된 영상 사기 광고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광고는 공통으로 한 가지 전략을 공유한다. 노골적인 설득 대신, '이미 신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면과 형식을 정교하게 연출한다.
필자가 유튜브에서 본 수많은 AI 영상 광고 속에는 의사, 교수, 연구자, 재테크 전문가로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화면에는 하얀 가운과 청진기, 병원 진료실이나 연구실, 대학 강의실을 연상시키는 배경이 등장하고, 차분하고 확신에 찬 말투로 전문 용어와 수치, 그래프, 실험 장면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이 교차한다.
이 모든 것은 실제 현실의 전문가가 아니라, AI가 합성한 얼굴과 음성, 그리고 '전문가란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알고리즘이 조합한 결과물이다.
특히 건강식품, 건강보조기구, 다이어트 제품, 의료기기, 투자 상품, 암·치매 예방 설루션 등 전문 지식이 개입되는 영역에서 이러한 AI 영상 광고는 강하게 작동한다. 실제 의료진의 진료 현장을 본 듯한 화면 구성이 등장하고, 실존 기관을 연상시키는 로고나 가상의 연구소 이름이 붙는다.
'임상 결과', '실험군', '검증된 효과' 같은 단어가 자막과 함께 흘러나오지만, 이런 표현을 뒷받침하는 실제 논문이나 기관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러한 광고가 "이 제품이 좋다"라고만 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은 "당신의 상태를 이해한다", "환자 보호자들의 고민을 잘 안다", "의사로서 말씀드린다"는 식으로 말을 건다.
이것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권위의 연출'이다.
소비자, 특히 체력 저하·만성질환·노년기 질환 등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고령층에게는 이 형식이 심리적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지점이 된다.
◇ 고령층은 '속은 것'이 아니라, 배운 대로 '판단'한 것
이 문제는 흔히 '디지털 리터러시 부족'으로 설명되곤 한다. 하지만 이 설명은 현실을 절반만 짚는다. 고령층은 인터넷과 모바일 환경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대신 TV 뉴스와 다큐멘터리, 공익 광고, 건강 프로그램을 수십 년간 시청하면서 '영상이 신뢰를 표현하는 방식'을 누구보다 성실하게 학습해 왔다.
그들이 몸에 익힌 신뢰의 문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전문가는 하얀 가운이나 정장을 입고, 병원·강의실·연구실 같은 공간에서 말한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는 차분한 말투, 안정된 조명, 자막과 그래프, 그래픽 요소를 갖춘다. 여기에 의사·교수·연구자의 말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검증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여긴다.
AI 영상 기반 사기 광고는 바로 이 신뢰의 문법을 거의 완벽하게 복제한다. 얼굴, 음성, 배경, 제스처, 카메라 움직임까지 '전문가 출연 프로그램'의 포맷을 정밀하게 모방한다. 그래서 고령층 피해자들은 이 영상을 '부주의하게'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배운 기준에 비추어 '이 정도면 믿을 만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영상 매체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 구조를 범죄자가 통째로 탈취해 쓰고 있다는 점에 있다.
AI 영상 사기 광고의 또 다른 위험은 '개인화된 접근'이다. 과거의 사기 광고가 불특정 다수에게 같은 메시지를 뿌리는 방식이었다면, 오늘날의 AI 광고는 플랫폼의 추천 알고리즘과 결합해 개개인의 데이터에 맞춰 내용과 톤을 조정한다.
우선 특정 연령대에 맞춘 말투와 연출 기법을 사용한다. 70대 노년층에게는 조용하고 공손한 말투, "손주들한테 폐 끼치고 싶지 않으시죠?" 같은 문장을 사용하고, 40∼50대에게는 "부모님 건강, 이제 자식인 우리가 챙겨야죠"라는 부담감을 건드린다.
그런 다음, 질병·재정 불안·외로움 등 감정적 약점을 겨냥한다. 만성 통증, 수면장애, 치매 공포, 노후 자금 부족, 가족과의 거리감 같은 불안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문구와 사례를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플랫폼 알고리즘과 결합한 반복 노출을 통해 접근한다. 사용자가 한 번이라도 건강 정보, 재테크 영상, 효도·노후 생활 관련 콘텐츠를 클릭하면, 같은 유형의 AI 광고가 여러 채널을 통해 계속 노출된다.
이렇게 반복 노출이 이루어지면, 광고 속 인물은 어느 순간 단지 낯선 '광고 모델'이 아니라 '자주 보던 익숙한 의사 선생님'처럼 인식된다. 영상 속 인물이 실존하지 않는 AI 합성이라는 사실과 무관하게, 사람들은 반복 노출을 통해 '심리적 친숙함(단순 노출 효과)'을 느끼게 된다.
이때 광고는 더 이상 광고가 아니라 마치 자신을 오래 지켜본 누군가의 조언처럼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기존 사기 광고와 질적으로 다른, 훨씬 깊은 심리적 침투다.
◇ 예술이 얻은 자유, 사회가 감당해야 할 비용
역설적으로, 이 모든 문제의 출발점에는 AI 영상 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있다. 영화와 드라마, 광고, 뮤직비디오, 게임 시네마틱, 실험 영상 예술은 바로, 이 기술 덕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실제로는 촬영하기 어려운 고난도 액션 장면, 역사적 현장의 재현, 상상 속 공간과 캐릭터가 저비용으로 구현되고, 소규모 창작자도 과거 블록버스터에 버금가는 시각적 퀄리티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됐다.
실제 배우의 나이를 조정하거나, 여러 촬영본을 합성하거나, 세트와 배경을 가상으로 구축하는 기술은 이미 상업 영화계의 표준 도구가 됐고, 이는 예술적 자유와 제작 환경의 효율성을 크게 확장했다.
교육·다큐멘터리 분야에서도 복원·해설·재연 영상이 더 풍부하게 제작되며, 정보 전달의 몰입도가 높아졌다.
그러나 같은 기술이 상업 광고와 일상 콘텐츠, 나아가 불법 광고 시장까지 내려오면서, 우리는 전혀 다른 비용을 치르고 있다. 신뢰는 더 쉽게 복제되고, 전문성은 더 쉽게 연출되며, 영상은 더 이상 '무엇인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가장 정교한 위조의 도구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제대로 된 사회적 대비, 제도적 논의, 교육적 전환 없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이다.
AI 영상의 확산을 막을 수는 없다. 이미 영화, 광고, 뉴스, 교육, SNS 전반에 깊숙이 들어와 있고, 앞으로도 더 빠르게 정교해질 것이다.
"AI 영상이 위험하다"는 경고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술 공포가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다.
AI 영상 시대에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봤는가'가 아니다.
"그 장면이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이 플랫폼에서, 나에게 제시됐는가"를 묻는 감각이다.
필자는 이러한 시대에 우리가 모두 이런 질문을 항상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이 영상은 누가 만들었고, 어떤 이해관계를 가졌는가?
이 메시지가 나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영상 속 인물과 기관 이름은 실제로 존재하며, 독립적인 검증 경로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우리는 영상이 주는 첫인상을 잠시 유보하고 '거리 두기'를 확보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AI 영상은 예술과 표현에 새로운 자유를 부여했다. 동시에, 현실을 확인하던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인 눈으로 본 것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는 명제를 가장 먼저 무너뜨렸다.
앞으로 더 많은 고퀄리티 AI 영상이 등장할 것이고, 그중 일부는 분명 사람을 속이고, 약점을 겨냥하고, 신뢰를 탈취하기 위해 만들어질 것이다.
이제 질문은 'AI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것인가'가 아니다. 그보다 앞선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그 영상을 어떤 거리에서, 어떤 의심과 어떤 기준으로 바라볼 준비가 돼 있는가.
영상이 '사실의 기록'에서 '설계된 경험'으로 완전히 넘어가고 있는 시대에, 신뢰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선은 기술이 아니라, 영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 사회적 규범일지 모른다.
이은준 미디어아티스트·인공지능 영상 전문가
▲ 경일대 사진영상학부 교수
<정리 : 이세영 기자>
s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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