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법원이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한국인들의 유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변호인단은 이번 판결이 "재외 피폭자 청구권 시효 소멸 여부에 대한 첫 사법 판단"이라고 전했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28일 마이니치신문과 NHK, 지지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히로시마지방재판소(지방법원)의 야마구치 아쓰시 재판장은 이날 유족 23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330만엔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피폭자 유족에게 청구액 전액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앞서 일본 정부는 패전 뒤인 1957년 3월 원폭 피폭자 치료를 지원하기 위한 '원폭 피해자의 의료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피폭자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효력을 정지시킨다는 내용의 이른바 '402호 통달'을 당국이 1974년 내놓고 의료비 지원 대상을 '일본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한정하면서, 해방 이후 한국으로 돌아간 한국인 피폭자들은 사실상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차별적 조치라는 비판에도 이 같은 운용은 2003년까지 이어졌다.
이후 일본 최고재판소는 2007년 일본 정부가 한국인 원폭 피해자와 유족에게 1인당 120만엔씩 배상하라고 판결했고, 이 판결을 계기로 관련 통달은 폐지됐다.
판결 이후 정부는 피폭 사실이 입증되면 재판상 화해 방식으로 배상에 응해 왔다.
다만 이후 일본 정부는 민법상 불법행위 발생 시점부터 20년이 지나면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한다는 이른바 제척기간을 근거로 화해를 거부하는 경우가 늘었고, 결과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경우 등에 한해 지급이 이뤄져 왔다.
이번 재판에서도 일본 정부는 청구권이 소멸했다며 청구 기각을 요청했다.
그러나 야마구치 재판장은 "통달 내용의 위법성 여부가 별도 재판에서 다투어졌고 2007년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까지 국가가 책임을 계속 다퉜던 점은 원고가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사실상 어렵게 했다"며 "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하지 않았고 국가의 주장은 권리 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재외 피폭자의 청구권이 시효로 소멸했는지 여부에 대해 법원이 판단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원고 측 대리인 변호사는 지지통신에 "어떻게든 권리 행사를 못 하게 하려는 국가의 태도에 대해 법원이 엄정하게 비난했다는 점에서 판결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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