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스경제=전시현 기자 | "지금까지 규제 샌드박스라는 울타리 안에서 가능성을 테스트했다면 이제는 법이라는 냉혹한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을 증명해야 할 때입니다. 올해 준비하지 못하면 100조원대 토큰증권(STO) 시장의 문은 닫힐 것입니다."
지난 26일 열린 한국블록체인산업진흥협회 정기총회에서 법률사무소 비컴의 차상진 대표변호사는 '샌드박스를 넘어 제도권으로: STO 법안 통과와 블록체인 기업이 바로 준비해야 할 성장전략'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15일 우리나라 금융 산업의 지형도를 뒤흔들 자본시장법 및 전자증권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혁신금융서비스'라는 이름 하에 한시적·제한적으로만 허용되던 토큰증권(STO)이 정식 제도권 금융상품으로 편입됐다.
이와 관련 차 변호사는 단순한 법안 해석을 넘어 블록체인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할 5대 핵심 사업 전략을 제시하며 제도권 진입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로드맵을 주문했다.
◆ 조각투자, 자본시장 주류 인정...'발행인계좌관리기관' 핵심
이번 법 개정의 가장 큰 의의는 그동안 특정 실물 자산에 대한 수익권 정도로 취급되던 '투자계약증권'의 법적 지위를 공고화하고 유통 시장을 활성화하는데 있다. 미술품, 부동산, 저작권, 한우 등 다양한 기초 자산을 쪼개 파는 이른바 '조각투자' 상품이 자본시장법상의 엄연한 증권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차 변호사는 "일반 투자자들이 주식처럼 장외거래중개업 시장에서 자유롭게 토큰증권을 사고팔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유동성 부족에 시달리던 조각투자 업체들에게는 다자간 거래 인프라를 통해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신설된 '발행인계좌관리기관' 제도다. 이는 요건을 갖춘 발행인이 기존 증권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분산원장에 증권을 등록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블록체인 기술 기업들에게는 사상 유례없는 기회로 평가받는다.
차 변호사는 "자기자본 10억원 이상, 전문 인력 확보 등 진입 장벽은 존재하지만 이를 충족한 기업은 스스로 금융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며 시장 주도권을 쥘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기존 증권사의 독점 체계에 균열을 내고 금융 중개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 독자 노선보다 '검증된 메인넷'이 안정성 높아
차 변호사는 제도권 진입을 위한 기술적 요건으로 가장 먼저 '메인넷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개정된 전자증권법에 따르면 전자등록기관(한국예탁결제원) 및 계좌관리기관은 안정적인 업무 수행을 위해 대통령령이 정하는 요건을 갖춘 분산원장을 이용해야 한다.
그는 "기술적 콧대만 높여 독자적인 메인넷을 고집할 때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이어 "새로운 메인넷은 안정성 검증에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한국예탁결제원의 총량 관리 업무와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기술 구조를 확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 변호사는 실무적인 해법으로 "이미 다수의 발행인이 사용해 검증된 메인넷을 선택해야 기술적 안정성은 물론 향후 전자등록기관과의 연동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며 "많은 기업이 이용하는 메인넷을 선택할수록 후속 지원 대비 비용 효율성이 높아지며 이는 곧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투자자 예탁금 직접 보유 불가...내부통제도 완비해야
금융당국의 인허가 과정에서 가장 엄격하게 다뤄질 부분은 단연 '투자자 보호'다. 차 변호사는 발행인계좌관리기관이 투자자의 예탁금을 직접 보유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 변호사는 "블록체인 기업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예탁금 관리의 투명성"이라며 "은행이나 증권사 등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금융기관과 파트너십을 구축해 자금 보관 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또한 이해상충 방지 체계 구축도 시급한 과제다. 그는 "발행과 유통이 분리되는 원칙 하에 의사결정 구조의 독립성 확보와 정보 차단벽 설치 등 내부통제 시스템을 완비하지 못하면 등록 심사 자체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여기에 더해 "블록체인의 특성상 삭제가 어려운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리 기준을 수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과 '핫라인' 구축...업권 명확히 해야
차 변호사는 규제 불확실성 해소를 위한 발 빠른 움직임도 주문했다. 그는 "당장 2월부터 금융위원회 주도로 금융감독원, 예탁결제원 등이 참여하는 '토큰증권 협의체'가 가동될 예정"이라며 "기업들은 협의체 구성 전이라도 금융감독원과 선제적으로 소통해 감독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사업이 자본시장법상 어디에 해당하는지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다. 차 변호사는 "내 사업 모델이 '투자매매업'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집합투자업' 영역을 침범하는지 명확한 법적 지위를 확립하고 필요한 인가를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법 시행 전 1년의 유예 기간 동안 컴플라이언스 이슈를 미리 해결해야만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차 변호사는 끝으로 '시간 싸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자본시장법과 전자증권법 개정안은 공포 후 1년 뒤인 2027년 초 시행될 예정이다. 남은 시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그는 "내달 토큰증권 협의체 구성을 기점으로 세부 시행령과 가이드라인이 논의될 것"이라며 "올해 상반기 내에 기본 준비를 마치고 법 시행 전까지 시스템 완성 및 등록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로드맵을 제시했다.
차 변호사는 발표를 마치며 "100조원대 규모로 전망되는 STO 시장에서 주역이 될지 아니면 주변부로 밀려날지는 2026년 상반기의 준비 상황에 달려 있다"며 "샌드박스 시절의 안일함을 버리고 법률 전문가와 기술 전문가가 머리를 맞대 정교한 법적 대응과 혁신적 기술력을 결합해야만 냉혹한 제도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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