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2023
인터뷰를 위해 라이카스토어 청담에 들어섰을 때 마침 배송차 들른 한 퀵 배송원이 안웅철 작가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진에 담긴 어떤 감정이 누구보다 시간을 쪼개서 살고 있는 배송원의 발길을 붙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도시의 한 조각이 담긴 사진이 아마도 짧은 휴식의 시간을 선물했을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흐려지면 가슴이 뛰는 어느 사진가의 사진 이야기’라는 부제 아래, 안웅철 작가는 최근 4년간 라이카 카메라로 기록한 도시의 장면들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다. 자연과 인물을 오랫동안 촬영하며 사진이 지닌 서정성과 관찰의 미학을 탐구해온 그는, 이번 전시에서 흐린 하늘 아래 드러나는 도시의 표정과 감정에 시선을 고정한다. 전시는 작가가 일상처럼 들고 다닌 카메라로 포착한 50여 점의 작업으로 구성되며, 도시는 더 이상 차갑고 고정된 구조물이 아닌 살아 있는 풍경으로 확장된다.
안웅철에게 높은 빌딩은 나무이고, 빽빽한 도시는 숲이며, 도로 위를 흐르는 자동차의 행렬은 파도에 가깝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꽃처럼 잠시 피었다 사라진다. 그는 도시를 자연과 다르지 않은 존재로 바라본다. 빛과 기후, 시간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도시의 표정은 맑은 날보다 흐린 날에 오히려 더 또렷해진다. 모두가 ‘사진 찍기 좋지 않은 날’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그 안에서만 드러나는 감정의 결을 발견한다.
이번 전시는 도시를 기록한 작업이지만, 동시에 자연을 바라보듯 세계를 관찰해온 한 사진가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날씨 좋은 날보다 흐린 날에 설레고, 일상의 많은 순간을 카메라와 함께하고 한 장의 사진을 즉각적으로 판단하기보다 시간을 두고 다시 바라보는 태도. 안웅철의 사진은 그렇게 일상과 감각, 기억과 시간이 겹치는 지점에서 완성된다. 전시장을 나서는 순간, 관객은 자신이 매일 지나치던 도시를, 그리고 자신의 일상을 조금 다른 눈으로 다시 바라보게 될지도 모른다.
라이카 청담 스토어를 비롯해 세 곳의 라이카 매장에서 전시가 열렸다.
사진전 제목인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몰라>가 마치 영화 제목처럼 다가왔습니다. 제목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겼나요? 이전 사진전 제목은 <바람이 내게 뭐라고 하든>이었습니다. 많은 전시 제목이 단어로 딱 떨어지곤 하는데 저는 문장으로 이뤄진 제목을 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일상생활의 한 장면처럼, 혹은 에세이 제목처럼 짓고 싶었습니다. 제게 전시는 한 권의 에세이를 세상에 내놓는 것과 같기도 하고요. 언젠가부터 문장처럼 전시 제목을 정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하나의 단어로 연상되는 세계보다는 문장으로 연상되는 느낌을 좀 더 강조해 보여주고 싶거든요.
에세이 같은 작품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사진은 한 장으로 끝나는 작업이 아니에요. 한 장 한 장의 결과물이 남지만 결국 하나의 연결고리를 갖게 되고, 그 연결고리가 저만의 짧은 단편소설이나 에세이가 됩니다. 그런 연속성을 가진 제목 혹은 주제를 끄집어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도 해요.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진이 곧 비가 올 것 같은 흐린 날씨를 배경으로 하진 않습니다. 우리의 매일이 비 오는 날도 있고 쾌청한 날도 있고, 하지만 내일은 비가 올지도 모르는 날이니까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에 적힌 글이기도 해요. 1990년대 초반쯤이었는데, ‘시카고의 지금 날씨는 흐리다.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은데, 비가 오면 넌 또 바빠지겠지. 카메라를 들고…’라는 말을 적어 제게 보냈어요. 제가 그 문장을 참 좋아하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 제목에 담아 봤습니다.
모로코, 2025
사진전의 부제가 ‘하늘이 흐려지면 가슴이 뛰는 어느 사진가의 사진 이야기’입니다. 빛과 기후의 변화를 인지하고 카메라를 들고 나가기까지, 감각을 좀 예민하게 두는 편인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감각이 예민하지 않고 충동적인 편이에요. 화창한 날 촬영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전 그렇지 않아요. 촬영하기 좋지 않은 날씨에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죠. 날씨가 좋지 않아 오히려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은 경우도 많아요. 스스로를 프로페셔널한 사진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진을 위한 조건을 갖추고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생활 속에서 어떤 순간을 만나면 그냥 찍는 거죠.
사진작가의 기록하고 싶은 순간이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이제는 거의 직감이에요. 30여년간 촬영해왔는데, 우스갯소리로 ‘다른 분야의 일을 이토록 오래 했다면 도인이나 도사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곤 해요. 사진은 촬영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무수한 컷에서 골라내는 작업도 중요합니다. 언젠가 김중만 작가가 ‘웅철아, 사진은 당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으려고 하지 말고, 2년 뒤 봤을 때 좋은 사진으로 다가오는 것이 좋은 사진이다’고 했어요. 당장 마음에 드는 건 표면적으로 좋아할 수 있지만 그건 한낱 유행처럼 잊혀지기도 쉽죠. 당장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도 한 박자 뒤로 빠져서 골라요. 너무 흥분된 마음으로 고르다 보면 다 좋아 보여요. 제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냉정한 사람들이거든요. 전후 상황을 다 알고 있는 제가 보는 관점보다 딱 한 ‘슛’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고려해야죠.
(왼쪽부터) 안웅철 작가, 도시를 향한 작가의 시선이 펼쳐진 사진전.
이번 전시 작품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신 건가요? 라이카와 함께하는 세 번째 전시예요. 지난 두 번의 전시는 모두 자연을 대상으로 했어요. 이번에는 도시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 전시를 위한 사진을 선택할 때 작가로서의 제 정체성을 오롯이 드러낸 작품보다는 좀 더 다양한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라이카 전시장은 전문 갤러리라기보다는 라이카 카메라와 사진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찾는 곳이어서 장소적 특징을 고려했죠. 물론 그중에는 안웅철의 색을 담은 사진도 있어요. 가령 오사카의 강에서 찍은 물에 비친 네온사인이나 차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끔 클로즈업해서 찍은 빨간 자동차 사진이 그렇습니다.
피사체로서 도시와 자연은 접근 방식이 다른가요? 저는 도시와 자연을 비슷하게 봐요. 글로도 쓴 적 있듯이, 사람은 저에게 꽃 같은 존재고, 도시의 빌딩은 나무 같아요. 뉴욕 엠파이어 빌딩을 찍든, 높은 곳에서 내려 찍든, 그게 결국은 숲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대상’이 아니라 ‘내가 왜 이걸 셀렉하고 어떻게 찍느냐’예요. 장소성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를테면 오사카의 강을 보고 북경의 강이나 한강이라고 하더라도 크게 다를 게 없죠. 다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찍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어요. 30년 넘게 촬영하며 스스로 찾은 화두가 ‘익숙한 것에 대한 새로움’이에요. 사진은 결국 ‘있는 대상’을 찍을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있어요. 필립 퍼키스가 ‘사진은 가장 멍청한 예술이다’라고 말한 이유도 그거죠. 사진은 장소와 시간에 제약이 있으니까요. 그림은 작업실에서 달과 해를 동시에 그릴 수도 있는데 사진은 그게 불가능해요. 그 제약이 사진의 제약이자 숙명인데, 그걸 장점으로 극복하는 게 작가가 해야 할 일이죠.
30년 동안 찍으며 사진에 대한 마음이나 태도가 변했나요? 옛날엔 별 생각 없이 그냥 찍었어요. 그땐 이런저런 카메라 촬영 기술과 눈으로 사물을 보고 찍는 데 급급했죠. 그런데 결국 사진은 ‘어떻게 찍느냐’에서 시작해 ‘무엇을 찍느냐’를 거쳐, 마지막엔 ‘왜 찍느냐’로 가더라고요. ‘왜 찍느냐’까지 가야 작가가 되는 거예요. 그 세 번째는 아직도 숙제예요. 중요한 건 표현이고, 결과물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죠. ‘왜 찍느냐’에 대해서는 올해 비로소 답을 하나 찾았어요. ‘익숙한 것에 대한 새로움.’ 남들이 보는 물과 풍경도, 내가 다르게 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이거든요. 카메라를 쥐면 누구나 찍을 수 있지만, 똑같은 사진은 없어요. 작은 앵글 차이만으로도 전혀 다른 사진이 되죠. 저는 그걸 계속 찾아가는 중이에요. 죽기 전에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죠.(웃음)
호이안, 2024
이번 전시는 4년간의 기록물이에요. 그 시간은 라이카를 사용한 기간이기도 해요. 대부분의 사진은 Q2로 찍었어요. 28mm 고정 렌즈여서 줌이 안돼요. 대신 명확하죠. 피사체가 멀면 내가 걸어가고, 가까우면 내가 물러서면 돼요.
작가님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생활이에요. 예전엔 사진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심오해 보였는데, 지금은 그냥 일상이죠. 대부분의 일상에 카메라와 함께하니까요.
오랜 시간 사진을 멈추지 않았던 원동력이 있을까요? 다양한 장르에 대한 관심이에요. 그중에서도 음악. 뮤지션들과 협업도 많이 했고요. 특히 이루마와는 아주 각별해요. 앨범 사진 작업도 많이 했고 전시 때마다 오기도 하고요. 한번은 제 사진에 영감 받아 작곡하고 싶다는 제안을 한 적도 있죠. 그래서 여러 컷의 곶자왈 사진을 주고 골라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 곡 중 하나로 영상 작업을 해보겠다고 했죠. 영상 테크닉은 없어도 감각은 있으니 충분히 할 수 있었죠. 그렇게 둘이 곶자왈에서 2박 3일 동안 찍었어요. 사진가로서 사진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영감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술과 건축도 좋고요. 음악은 보이는 예술이 아니잖아요. 사진은 결정적으로 보여야 하는 예술이고.
관객들이 이번 전시를 어떻게 즐기기를 바라나요? 많은 사람들에게 프린트된 사진을, 벽에 걸린 작품을 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꼭 제 작업이 아니어도 좋아요. 화면으로만 들여다보지 말고요. 제 사진전을 보고 ‘사진이 프린트되면 이런 매력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기를 바라요.
뉴욕, 2024
AI 시대에도 사진의 힘은 여전하리라고 믿나요? AI를 정확히 알진 못하지만, 디지털 기술은 다양하게 뭔가를 만들 수 있잖아요. 그런데 ‘작가’와 ‘아트피스’는 또 다른 영역이에요. 얼마 전에 마인드 마이너인 송길영 씨를 촬영했는데 그분이 제게 그러더군요. ‘당신은 이미 하고 있어요. 30년 동안 이미 하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잘될 겁니다. 남들이 안 하는 걸 하고 있어요.’ 개인이 결국 하나의 ‘컴퍼니’인 지금의 시대에 저는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그렇고 작가로서 살아가야죠.
작업 루틴이 있다면요?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 <배철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 ‘어떤 장르의 음악을 좋아하느냐’란 질문을 받았어요. 재즈, 록, 팝, 클래식 구분 없이 다 좋아한다고 답했죠. 저는 그게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록만 들으면 록이 싫어지는 순간 들을 게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재즈 듣다가 지겨우면 클래식으로 가고, 또 다른 장르로 갈 수 있어요. 루틴도 비슷하다고 봐요. 루틴은 스스로를 만드는 동시에 가두는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어떤 전시를 꿈꾸시나요? 좀 더 제 색깔이 드러나는 전시요. 그건 모험도 필요하고, 누군가의 지원도 필요해요. 이런 사진은 팔릴지 안 팔릴지 두려운 사진이거든요. 그렇지만 그게 내 색깔이라면 보여줘야죠. 만약 라이카에서 한 번 더 하게 된다면, 저는 이 벽면을 한 장으로 채우고 싶어요. 파노라마로 길게 찍어서. 컴퓨터 기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합성은 아니고 단순히 이어붙이는 거죠. 그런 도움을 받아서라도, “안웅철이 이런 면도 있구나”를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더네이버, 피플, 인터뷰
Copyright ⓒ 더 네이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