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상호관세와 함께 의약품 관세를 다시 25% 수준으로 높이겠다고 밝히면서 제약·바이오 산업을 둘러싼 통상 리스크가 재부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국 국회의 입법 지연이 명분으로 제시됐지만, 의약품이 직접 거론됐다는 점에서 협상 압박의 초점이 해당 품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한국 입법부가 한미 간 역사적인 무역 합의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자동차·목재와 함께 의약품을 관세 인상 대상에 포함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대가로 관세를 15%로 낮췄던 합의를 사실상 원위치하겠다는 뜻이다. 백악관 역시 “한국이 관세 인하의 대가로 한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동차는 한미 무역 합의에서 관세 인하 대상 품목으로 정리돼 왔다. 미국은 한국의 대미 투자 이행을 전제로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소급 인하했으며, 이번 관세 재인상 발언은 합의 이행 상황에 따라 기존 조치가 조정될 수 있음을 내포한다. 반면 의약품은 인하 대상이 아님에도 관세 인상 대상으로 직접 거론, 미국의 협상 압박 범위가 기존 합의 품목을 넘어 확장되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약품 관세 적용 구조는 자동차 등 다른 품목과 다르게 설정돼 있다. 한미 공동 팩트시트에 따르면 관세 인하 대상은 자동차와 일부 제조품으로 제한돼 있으며, 의약품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의약품에 관세가 적용될 경우 국가안보를 근거로 한 무역확장법 232조가 근거가 될 수 있으나, 미국 정부는 아직 관련 조사 결과나 구체적인 부과 계획을 공개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의약품을 협상 의제로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관세 인상 발표에 앞서 디지털 규제와 플랫폼 정책, 개인정보 보호 이슈 등을 놓고 한국 정부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의약품 관세 언급 역시 개별 산업을 겨냥한 조치라기보다 투자·규제·안보 사안을 함께 놓고 협상 범위를 넓히려는 접근으로 풀이된다.
외신들은 이번 사안을 한미 합의의 체결 방식과 연계해 다루고 있다. 한미 간 합의가 조약이 아닌 팩트시트와 양해각서(MOU) 형태로 체결, 법적 구속력보다는 정치적 합의에 기반한 구조라는 점이 관세 불확실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캐나다와 유럽연합(EU)을 상대로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가 이를 철회한 전례도 함께 언급, 이번 조치의 성격을 협상 압박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나온다.
제약·바이오 업계는 기업별 글로벌 생산 구조에 따라 관세 이슈에 대한 대응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 내 생산시설을 보유한 기업들은 관세 영향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셀트리온은 뉴저지주 브랜치버그 생산시설을 통해 미국 판매 물량의 현지 생산 기반을 확보, 현지 생산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이미 미국에 입고된 약 2년 치 물량을 통해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내 생산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의약품 관세 적용 범위와 수준을 둘러싼 정책 판단을 주시하고 있다. 232조 적용 시 관세율은 최대 15%로 언급되지만, 향후 협정 조정에 따라 추가 변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경쟁국의 관세 수준과 비교할 때 한국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가 높아질 경우, 글로벌 생산·공급망 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거론된다.
이 같은 불확실성은 정책 대응 역시 협상 변수로 남겨두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인상 발표 하루 만에 “한국과 함께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향후 협상을 통한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관세가 최종 결정이라기보다 협상 과정에서 활용되는 카드로 운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번 조치를 단기적 결론으로 보기보다, 미국 행정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와 협상의 초점이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재인상 발언의 성격에 주목하고 있다. 톰 라마지 한미경제연구소(KEI) 경제정책 분석가는 “과거 정책 발표 관행을 고려하면 이번 조치는 한국 측의 추가 대응을 유도하기 위한 압박 카드로 볼 수 있다”며 “단기 이슈로만 넘기기보다, 미국 행정부가 요구하는 핵심 사안을 외교 채널을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호관세의 적법성을 둘러싼 미국 연방대법원 판단이 계류 중이라는 점을 짚으며 “성급한 결론보다는 제도적 변수까지 함께 고려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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