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앞에선 계절도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영하의 날씨가 엄습하는 겨울 시즌에도 패션 하우스들은 어김없이 얇디얇은 란제리 드레싱 룩을 선보였다. 보는 이도 염려스러울 만큼 대담한 이 스타일은 사실 오랜 시간 패션 역사에서 반복되어온 흐름이기도 하다. 속옷 패션의 대중적 기원은 17세기 프랑스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성의 실내복과 잠옷을 일컫는 네글리제(Negligee) 드레스는 프랑스어로 ‘조심성 없는’이라는 뜻의 형용사에서 유래했다. 코르셋으로 단단히 조인 정식 예복과 달리 힘을 뺀 편안한 차림이자 가벼운 평상복이었던 것. 나이트가운으로 활용되던 이 드레스는 초기에는 넉넉한 가운 형태였으나 시간이 흘러 레이스와 리본, 비치는 실크 소재가 더해지며 관능적인 슬립웨어로 진화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또 다른 속옷 같은 패션이 등장한다. 나폴레옹 대관식에서 조세핀 왕후가 선보인 엠파이어 라인 드레스다. 가슴 아래에서 일자로 떨어지는 하늘거리는 실루엣은 스커트를 과장되게 부풀리던 기존 드레스와는 전혀 다른 인상을 남기며 사교계의 열렬한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깊게 파인 네크라인과 속살이 비칠 듯 얇은 소재 때문에 ‘독감 패션’이라는 별명을 얻는다. 한겨울에도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던 여성들이 이 차림을 즐기다 건강을 해치기도 했기 때문. 실제로 목숨을 잃는 사례가 발생하면서 말 그대로 치명적 유행으로 기록됐다. 그리고 오늘날 란제리 드레싱, 이른바 ‘부두아(Boudoir)’ 룩은 다시금 트렌드의 중심에 섰다. 돌체앤가바나와 끌로에가 섬세한 레이스와 윤기 나는 실크, 가터벨트 디테일을 앞세워 관능미를 극대화한 2025 F/W 컬렉션을 선보인 데 이어 2026 S/S 시즌에는 보다 일상적인 변주로 확장된 모습이 포착됐다. 침실과 드레스 룸에 머물던 란제리 요소들이 리얼웨이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터프한 레더 재킷이나 포멀한 슈트에 캐미솔과 슬립 드레스, 시스루 아이템을 레이어드한 스타일링은 한층 현실적인 데일리 룩으로 해석된다. 한파 속에서도 섬세하고 아름다운 란제리 룩에 도전하고 싶다면 이러한 런웨이의 제안에서 해답을 찾아보자. 계절감과 스타일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현명한 절충안이 되어줄 것이다.
Copyright ⓒ 노블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