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대한민국 럭비가 대중 스포츠로 도약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로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대회 운영은 구시대적인 행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 실업리그 운영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한럭비협회는 최근 ‘2026년도 국내·국제대회 일정(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전국 럭비 실업리그 1차 대회를 수도권에서 3~4시간 거리인 경북 경산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협회 측은 ‘지역 안배’를 이유로 들며 실업팀 지도자 간 협의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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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럭비계 반응은 싸늘하다. 대다수 팬과 선수 가족, 잠재 관중이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을 감안하면, 개막대회를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여는 것은 팬 유입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분당에 거주하는 한 럭비팬은 “드라마와 예능을 보고 실제 경기의 박진감을 느끼고 싶어 경기장을 찾으려 했지만, 서울에서 왕복 7~8시간이 걸리는 경산 개최 소식에 포기했다”며 “축제를 즐기고 싶은 팬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전력공사, 포스코이앤씨, 현대글로비스, OK금융그룹 등 대기업이 운영 중인 럭비 실업팀들은 연간 30억원 안팎의 운영비를 투입하고 있다. 명칭은 ‘실업팀’이지만,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하는 사실상 프로팀이나 다름없다.
프로스포츠의 생명은 팬이다. 더 많은 팬들과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경기장 접근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경기장 접근성은 스포츠 마케팅 효과, 기업 브랜드 노출, 팬 응원과 임직원 참여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꼽힌다.
럭비계 관계자는 “연간 30억원을 투자하는 팀들이 2000만~3000만원 수준의 추가 비용을 아끼려 수도권 팬들과 접점을 포기하는 것은 경영 논리로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기업 경영진이 이런 결정을 보고받고 동의한 것인지, 아니면 현장 실무진 차원의 판단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럭비계의 고질적인 비효율적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기업 내부의 공식 검토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일부 감독, 코치, 프론트 중심으로 주요 사안이 결정되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럭비계 관계자는 “연간 수십억원이 투입되는 팀 운영을 더 이상 현장 판단에만 맡길 수는 없다”며 “이 구조가 반복되면 기업 내부 신뢰가 약해지고, 결국 투자 무용론이나 팀 해체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업리그 운영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2년 실업팀들은 ‘코리아 슈퍼럭비리그’를 부활시켜 유료 관람과 전 경기 생중계, 팬 친화 마케팅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난해 리그가 지방 개최와 중·고교 대회 통합 운영 방식으로 전환되며 관중 중심 기조가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한국 럭비는 지난해 넷플릭스 예능 ‘최강럭비’와 SBS 드라마 ‘트라이’가 잇따라 방영되며, 모처럼 ‘보는 스포츠’로 대중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관심과 비례해 접근성이 높은 경기장 개최, 공정한 심판 배정, 고화질 생중계 등 ‘즐기고 보는 스포츠’로서의 기본 환경을 마련해 달라는 팬들의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다른 럭비계 관계자들은 “이제는 낡은 내부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기업이 직접 팬 친화적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때”라며 “선수들의 땀이 텅 빈 관중석이 아닌 함성 속에서 빛날 수 있도록 리그 운영 전반에 대한 재논의가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스포츠 산업의 본질은 팬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팬을 외면한 리그 운영은 종목의 성장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대한럭비협회는 전국 실업리그를 포함한 2026년도 대회를 순차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실업리그 운영 방향과 경기장 접근성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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