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신작로 따라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시외버스에 올랐다. 미루나무가 농수로를 따라 높이 솟아 있는 오솔길, H의 집은 우정읍에서 가까운 수정리였다. 마당엔 펌프가 물을 길어 올렸고 작은 툇마루가 있는 소담한 집은 나그네를 굽어봤다.
H와의 첫 인연은 현실감도 긴장감도 없이 시작됐고 겨를없이 고된 세월은 빠르게 치달아 지금에 정박했다. H의 외가는 청풍 김씨였는데 그림 속 잡초 우거진 땅도 그 집안 땅이었다. 2남4녀인 H의 집에서 처남들과 동서 넷이 가끔 멍석 깔고 모여 앉아 여름밤을 보냈고 긴 겨울밤에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마을 뒤에 쌍봉산이 있고 앞엔 삼괴고등학교가 있었다.
나와 H가 주말에 채소밭을 가꾸기도 했던 그 시절이 이젠 꿈처럼 먼 빈집이 됐다. 텃밭 가꾸며 맑게 살아가시던 H의 어머님도 집을 비우고 부근의 요양원에 드셨다. 100세가 눈앞이지만 아직 건강하시고 동료분들과 잘 어울리며 사신다. 사라진 시간은 옛것을 지우고 다시 질주한다. 세월이 더 흐르면 그땐 또 어떤 모습일까. 나의 고향 빈집도 옛일을 잃고 있다. 입춘이 다가오고 설이 가깝다. 이런 시가 스친다. ‘빈집에 쌓이는 시간의 무늬에도/아름답고 쓸쓸한 생을 관통하던 추억있다/집은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었고/나는 길 위의 집에서 꿈을 꾸었다./보일 듯, 보이지 않는 삶의 흔적과/잡힐 듯 잡히지 않는 옛사랑의 그림자여.’ -민병일 ‘적멸 속에 빛나는 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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