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정혜련 작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 –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로버트 리먼 컬렉션’ 전시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관람자의 시선을 조용히 붙잡는다. ‘인상주의’, ‘모더니즘’이라는 익숙한 미술사적 키워드보다 먼저 다가오는 것은 이 전시가 선택한 하나의 문장, ‘빛을 수집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이다. 그 문장은 작품을 설명하기보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은근히 제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며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익숙함 속의 낯섦’이었다. 인상주의와 초기 모더니즘은 이미 수차례 책과 강의, 이미지로 접해온 미술사적 흐름이지만, 이번 전시는 그 익숙한 이름들을 ‘빛을 수집한 사람들’이라는 한 문장으로 묶어내며 전혀 다른 결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설명하는 대신 빛을 바라보는 태도와 감각의 변화에 집중하도록 이끄는 구성은 관람자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화면 안으로 끌어당겼다.
인상주의 회화 속 빛은 언제나 찰나의 감정과 닮아있다. 고정되지 않고, 머물지 않으며,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가진다. 붓질은 느슨하고 색은 경계 없이 스며들며, 화면은 완결된 이야기라기보다 막 지나간 시간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작품들을 따라가다 보니 이들이 빛을 ‘묘사’했다기보다 빛을 ‘경험’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은 대상 위에 얹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선과 감정, 호흡 속에서 함께 태어난 것이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이 전시가 인상주의를 단순히 ‘밝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초기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빛은 점점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로 확장된다. 화면은 더 이상 현실을 재현하기 위한 창이 아니라, 작가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그 자체가 된다. 색은 감정이 되고, 형태는 선택이 되며, 회화는 질문을 던지는 장치로 변해간다. 그 변화의 과정을 따라가며 나는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들었다.
작품을 수집한 한 개인의 시선 또한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 전시는 단순한 명작전이 아니라, 한 수집가가 어떤 시대의 감각과 가능성을 믿고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하다. 그의 선택은 완벽하게 정제된 미술사적 정답이라기보다 당대의 변화와 실험을 기꺼이 품으려 했던 태도에 가깝다. 그것은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는 태도와도 닮았다. 아직 평가받지 않은 것, 불완전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것, 설명되지 않지만 분명 느껴지는 어떤 감각을 믿는 일.
예술가로서 또 창작자로서 내가 반복해 온 선택들이 떠올랐다. 전시를 관람하며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작업 세계와도 연결 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다뤄온 ‘행복’, ‘따뜻함’, ‘일상의 감정’이라는 주제 역시 결국은 빛과 닮아있다. 눈에 보이지만 손에 잡히지 않고, 분명히 존재하지만 쉽게 설명되지 않는 것. 순간적으로 스쳐 가지만 마음에는 오래 남는 것. 인상주의 화가들이 빛을 통해 일상의 순간을 붙잡으려 했듯, 나 역시 작업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잠시 머물다 사라질 감정을 붙잡고 싶어 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이 전시는 예술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나에게도 많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정답이 있는 그림, 잘 그린 그림을 향해 가고 있지는 않은가. 인상주의 화가들이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빛과 순간을 선택했듯, 지금의 아이들 역시 자신만의 감각을 믿고 표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기술이나 도구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보는가’라는 질문이라는 사실을 이 전시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전시장을 나서며 마음 한편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거대한 미술사 앞에서 압도되기보다 오히려 ‘나도 여전히 보고, 느끼고, 수집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빛을 수집한다는 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닌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에 가깝다. 하루의 작은 장면, 아이들의 웃음, 종이 위에 번지는 색, 작업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햇살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나만의 컬렉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는 나에게 다시 한번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어떤 빛을 선택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빛을 어떤 방식으로 나만의 언어로 남기고 싶은가. 아마도 앞으로의 작업에서도, 교육의 현장에서도 이 질문은 오래도록 나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있는 한, 나 역시 계속해서 나만의 빛을 수집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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