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지난해 말 인천국제공항을 둘러싼 노동 문제는 단순한 노사 갈등의 범주를 넘어섰다. 자회사 노동자들이 근무 체계와 과로 문제를 제기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이후 단식 농성으로까지 이어지면서 갈등이 장기화됐다.
특히 국가 핵심 인프라를 운영하는 공공기관에서 전면적인 파업과 단식 투쟁이 반복됐다는 점에서, 이번 사안은 공항 운영의 지속가능성을 직접적으로 시험하는 문제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인천국제공항공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서는 이러한 위험 신호를 확인하기 어렵다. 오히려 보고서 전반에서는 ‘근로자를 존중하는 조직문화’, ‘사람 중심 경영’이 반복적으로 강조된다. 현장에서 드러난 갈등의 강도와 공시 내용 사이의 괴리가 지적되는 이유다.
◇ 전면파업과 단식으로 이어진 노동 현장
27일 관련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1일 전후부터 인천공항공사 자회사 노동자들은 3조2교대 근무 체계의 폐지와 4조2교대 전환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10월 초부터 파업이 본격화된 뒤 갈등은 단기간에 해소되지 않았다. 이후 인천공항지역지부 지도부는 10월 27일부터 단식 투쟁에 들어간 데 이어, 11월 초에는 단식 10일차를 넘기며 일부 간부가 건강 악화로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11월과 12월에도 교대제 합의 이행 문제와 자회사 구조, 과로 논란을 둘러싼 투쟁이 계속 이어졌다. 이 과정은 노동 문제가 단기간의 갈등이 아니라, 장기간 누적돼 온 부담과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된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파업과 단식 농성이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부터 근무 체계에 따른 피로 누적, 인력 부족, 자회사 중심의 고용 구조에 대한 문제는 반복적으로 제기됐지만 구조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안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전에 식별되고 관리됐어야 할 ‘리스크’에 가깝다.
◇ 국제 ESG 기준에서 본 노동 리스크
국제 ESG 공시 기준에서는 노동시간과 교대제, 단체교섭, 안전을 조직의 지속가능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핵심 관리 항목으로 분류한다. 특히 공공기관과 대형 인프라 운영 조직의 경우, 장기적인 파업이나 단식 농성은 서비스 안정성과 안전, 조직 신뢰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회(S) 리스크로 평가된다.
이런 사안이 반복되거나 장기화될 경우, 단순한 노사 분쟁을 넘어 경영 리스크 차원의 공시와 설명이 요구되는 사안이 된다. ESG에서 사회(S) 영역의 신뢰도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데서가 아니라,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관리했는지에서 갈린다. 전면적인 파업과 단식 농성은, ESG 보고서에 담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S) 영역이 관리해야 할 대표적인 리스크라는 의미다.
해외 주요 공항의 사례는 이런 기준을 실제로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보여준다. 네덜란드의 스키폴공항은 과거 수하물 처리와 지상조업 분야에서 인력 부족과 과중한 노동 문제가 사회적 논란으로 번진 바 있다. 해당 문제는 공항 운영 차질로까지 이어지며 공항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지적됐다.
스키폴공항이 주목받은 이유는 문제 발생 사실 자체가 아니라, 그 이후의 대응 방식이다. 스키폴공항은 노동강도 문제를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주요 사회(S) 이슈이자 운영 리스크로 명시했다. 단순히 ‘인권을 존중한다’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와 함께 휴식·인력운영·작업환경 개선 등 구체적인 개선 조치를 보고서에 담았다. 아울러 노동 문제가 공항 운영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설명했다. 이 사례는 ESG 보고서가 성과를 홍보하는 문서가 아니라, 갈등과 위험을 어떻게 관리했는지를 설명하는 책임 문서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에 비해 인천공항공사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보면, 누적된 노동 리스크를 주요 사회(S) 이슈로 식별하고 관리해 왔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근무 체계나 자회사 구조에 따른 노동 부담을 핵심 관리 항목으로 다루기보다는, 인권 존중과 조직문화 개선 같은 선언적 표현이 중심을 이룬다. 전면적인 파업과 단식 농성으로까지 이어질 만큼 누적된 문제가 있었다면, 왜 그 이전 단계에서 ESG 관리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피하기 어렵다.
◇ 인천공항공사 ESG, 무엇을 보여줘야 하나
인천공항공사는 국가 핵심 인프라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공공기관이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는 단순한 자료가 아니라, 국민과 이해관계자에게 조직이 어떤 위험을 인식하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공적 문서다.
전면적인 파업과 단식 농성으로까지 이어진 노동 현안은, 해당 문제가 사전에 충분히 관리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ESG 보고서에서는 이러한 누적된 위험 신호를 확인하기 어렵고, 오히려 근로자를 존중하는 조직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항공안전법에 따라 매년 ‘항공안전투자공시’를 통해 연도별 안전 투자액과 사업계획을 공개한다. 예를 들어 항행안전시설·항공기 이착륙 시설 개선, 항공종사자 교육훈련 등에 얼마를 썼는지 총액 수준으로 공개된다. 하지만 공시 자료에는 자회사·협력업체까지 포함한 안전 인력 확충 규모나 교대제 개선, 휴게시간 확보를 위해 추가로 투입한 예산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위험도가 높은 업무에 따른 재해 발생 건수 등 노동 현장 지표도 확인하기 어렵다.
한 ESG 전문가는 “ESG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보고서가 아니라 문제를 어떻게 마주하고,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과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해외에서는 노동 갈등이 발생했을 때 이를 숨기기보다, 왜 문제가 생겼고 어떤 관리 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는지를 ESG 보고서에서 설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서 “반대로 보고서에서는 근로자 존중을 강조하는데 현장에서는 장기 파업과 단식이 반복된다면, 이해관계자들은 ESG 공시의 신뢰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자회사 노동 문제와 안전 관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공사 내부에서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ESG 보고서에 자회사 노동 현안이나 개별 사건을 상세히 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이어 관계자는 “ESG 경영 보고서는 글로벌 ESG 가이드라인과 지속가능경영보고서 작성 기준을 준수해 작성하다 보니, 자회사에서 발생한 여러 이벤트나 개별 사안에 대한 공사의 대책을 모두 담기에는 구조적인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대신 “재정경제부가 지난해 말 공공기관 ESG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만큼, 해당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장기적으로는 자회사 관련 내용도 단계적으로 반영해 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결국 인천공항공사가 노동 환경을 둘러싼 현실과 보고서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것인지가, 향후 인천공항 ESG의 신뢰도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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