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비대면진료가 2010년 처음 국회에 발의된 지 15년 만에 법제화 단계에 들어서면서 의료 현장과 산업계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말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오는 12월 24일 시행을 앞두면서 제도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다만 초진 허용 범위와 약 배송 방식, 수가 체계 등 핵심 쟁점이 시행령과 하위 규정에 위임되며 실제 확산 속도와 방향은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법제화는 비대면진료가 시범사업을 넘어 제도권 의료 행위로 편입됐음을 의미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규제가 완화된 기간 동안 월평균 비대면진료 건수는 약 20만 건 수준을 유지. 진료비 상한을 감안하면 국내 시장 규모는 연간 최소 480억~500억원가량으로, 글로벌 시장은 2030년대 초반까지 10배 가까운 성장이 예상된다. 의료계와 정책 당국은 하위 규정 설계에 따라 체감 효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가장 민감한 쟁점은 초진이다. 정부는 비대면 초진을 환자 거주지와 동일 지역 의료기관으로 제한하고, 처방 일수와 약물 범위 등을 시행령에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료계는 대면진료 원칙과 의료 전달체계 질서 유지를 이유로 재진 중심 설계를 요구해 왔고, 이 기조는 법안에 반영됐다. 반면 산업계와 일부 의료기관은 초진·지역 제한이 과도할 경우 비대면진료의 효용이 낮아질 수 있다고 본다. 만성질환이나 소아 진료에서는 거주지 기준이 의료 접근성을 제약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소아과 감소와 진료 수요 증가로 ‘소아과 오픈런’ 현상이 나타나는 가운데, 가정 내 생체 데이터를 활용한 비대면 소아 진료 모델에 대한 투자와 실증이 진행되고 있다. 체온·심음·이비인후 검사 등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해 진료 정확도를 보완하려는 시도는 비대면진료가 단순 화상 상담을 넘어서는 흐름을 보여준다. 초진 허용 여부 역시 이분법적 접근보다 질환 특성과 진료 환경을 반영한 세분화된 설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약 배송은 비대면진료 논쟁을 복잡하게 만드는 변수로 꼽힌다. 의료법 개정으로 진료는 허용됐지만 약 배송은 별도 입법 없이 제한적으로만 가능해지면서, 플랫폼의 의약품 도매상 겸업을 둘러싼 갈등이 불거졌다. 특정 사업자를 겨냥했다며 비판받은, 이른바 ‘닥터나우 방지법’은 국회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보건복지부는 환자 안전과 의약품 유통 질서를, 중소벤처기업부는 혁신 산업 위축 가능성을 각각 우려하며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다.
약 배송 논쟁은 허용 여부보다 의약품 관리 책임의 귀속을 둘러싼 문제로 옮겨가는 모습이다. 비대면진료 본사업 시행을 앞두고 대만의 약사 주도형 약 배송 모델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배경도 이와 맞닿아 있다. 약사가 거동 불편 환자를 직접 방문해 의약품을 전달하고 복약 지도를 병행하는 방식은 오남용 위험을 줄이는 한편, 약 배송을 의료 행위의 연장으로 설계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플랫폼 업계와 약사회 모두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인건비 부담과 비수도권 인력 부족이라는 현실적 한계도 동시에 제기된다. 현행법 체계상 약 배송 대상이 거동 불편자나 도서·산간 거주자 등으로 제한돼 있다는 점도 제도 확장의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결국 약 배송 논쟁은 안전성 검증과 함께 수가와 재정 설계를 어떻게 마련할지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가 체계 역시 비대면진료 확산의 핵심 변수로 지목된다. 현재 30% 가산 수가가 유지되고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대면진료 대비 수익성이 낮다는 인식이 적지 않다. 검사·주사 등 부가 행위가 제한돼 참여 유인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부는 본사업 전환을 전제로 비대면진료 전용 수가와 청구·심사 체계 설계를 검토 중이다. 수가 논의는 ‘가산 폭’보다 어떤 의료 성과를 보상할지의 기준 설정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해외에서는 관련 논의를 비용보다 의료 전달체계 전환 관점에서 다루는 흐름이 나타난다. 미국 의료계는 비대면진료를 의료 인프라의 일부로 보고 상시화를 요구해 왔다. 반복적인 임시 연장이 의료 현장의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된 시기에 비대면진료 이용이 감소한 사례는 제도 연속성이 의료 접근성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실증 연구에서는 비대면진료 확대가 의료 이용량·의료비를 크게 늘리지 않았다는 결과도 제시됐다.
국내 의료계의 시각은 상대적으로 신중하다.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은 보건의료체계 전반에 대해서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비대면진료 등 주요 보건의료정책에는 70% 이상이 부정적 인식을 보였다. 특히 젊은 의사층에서 정책에 대한 불신이 두드러졌다. 환자 중심 의료에는 공감하지만, 정책 설계가 의료인의 책임과 보상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럼에도 비대면진료는 일부 지역에서 이미 공공 의료 인프라로 실험되고 있다. 의료기관과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 고령자와 만성질환자를 대상으로 키오스크 기반 비대면진료를 도입해 의료 접근성을 보완하려는 시도가 대표적이다. 혈압·체온 등 기초 건강 정보를 연계하고, 보건소와 협력해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방식은 관리 범위 내 활용 모델로 거론된다.
정부는 관련 논의를 의료개혁 전반의 틀 속에서 다루겠다는 입장이다. 국무총리 산하 의료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지역 순회 의견 수렴과 대국민 설문조사를 통해 의료 혁신전략을 마련할 계획을 밝혔다. 다만 의대 정원과 지역의사제 논의가 병행되면서 의료계와의 긴장 국면은 이어지고 있어, 비대면진료를 둘러싼 불신도 개별 제도보다는 누적된 의정 갈등의 연장선에서 이해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비대면진료 논쟁이 기술이나 플랫폼 문제로만 다뤄지는 동안, 의료인의 책임과 보상에 대한 불신은 해소되지 않았다”며 “약 배송 하나로 성패를 가를 문제가 아닌, 본사업을 통해 관리 가능한 범위와 한계를 먼저 검증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도 설계 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병행되지 않으면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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