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교류의 무게중심이 국가에서 도시로 옮겨가고 있다. 과거 의례적 방문과 문화 교류에 머물던 지방정부 간 교류는 최근 투자·산업·경제 성과로 이어지는 실질적 외교 수단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세계 각국의 도시들은 중앙정부 외교를 보완하거나 때로는 앞서 나가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이른바 ‘도시 외교(City Diplomacy)’다.
■ 도시 간 국제 교류의 중요성… 보이지 않는 자산된다
도시 간 국제교류가 경제적 성과로 이어진다는 점은 여러 연구를 통해 확인된다. 2021년 한 국제학술지는 다국적 기업의 해외 투자 결정 과정에서 도시 간 신뢰와 네트워크가 투자 위험을 낮추고 정보 접근성을 높여 투자 지역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국제학술지 역시 지난해 중국 286개 도시를 분석해 자매도시 관계를 폭넓고 깊이 있게 운영한 도시일수록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증가한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이 같은 분석은 도시가 장기간 축적한 국제적 관계가 기업의 투자 결정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신뢰 자산’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입증한다.
국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국제 정세 속에서 도시 외교의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자매도시협회(SCI)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은 2023년 기준 280여쌍의 자매도시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는 복잡한 정치 환경 속에서도 도시가 경제적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 평택항·반도체 살려 국제 네트워크 확장하는 평택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국내에서는 평택시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시는 평택항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반도체 등 산업 역량을 국제교류의 지렛대로 활용하며 도시 간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시가 우호교류를 맺은 도시는 6개국 12개 도시로 정장선 시장이 2018년 취임한 이후 국제교류를 대폭 확대한 결과다.
취임 이전 평택시의 국제교류가 중국, 일본에 집중돼 있었다면 민선 7, 8기를 거치며 ▲베트남 다낭시 ▲우즈베키스탄 시르다리야주 ▲몽골 토브아이막 ▲크로아티아 풀라시 등 동남아, 중앙아시아, 유럽으로 교류 축을 넓혀 국제 정세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이와 함께 키르기스스탄 오시시(市), 카자흐스탄 알마티주를 방문해 협력 가능성을 점검했으며 필리핀 일리간시, 대만 타이난·타이중시와도 교류 확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타이난시와는 5일 농특산물 교류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평택 배와 타이난 파인애플 상호 홍보를 약속했다.
교류의 깊이도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중국 칭다오, 다롄, 르자오 등 3개 도시가 참여한 ‘평택–중국 우호도시 공동번영 교류회’에서는 ‘1도시 1사업’ 정례화에 합의하고 청년·문화·체육 등 민간 교류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베트남 다낭시와의 교류는 경제외교의 성격이 특히 뚜렷하다. 지난해 4월 우호교류 체결 직후 투자·수출상담회를 연이어 열어 평택상공회의소와 다낭 투자진흥청 간 MOU 체결을 이끌어내며 지자체 교류를 기업 비즈니스로 연결했다.
■ 1도시 1사업 가동으로 도시 외교 지속성 ‘쑥쑥’
제도적 기반도 강화했다. 시는 ‘국내외 자치단체 간 교류협력 조례’를 개정해 시민·기업·단체의 국제교류 참여 근거를 마련하며 민관 협력형 교류 구조를 구축했다. 대학생·청년 교류캠프, 마라톤대회 상호 참가 등으로 교류 저변도 넓히고 있다.
평택시국제교류재단이 주관하는 국제아동미술교류전과 세계문화주간은 각각 50여개국 참여, 9개국 주제 운영으로 평택의 대표 문화외교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으며 주한 대사관과 해외 도시 인사들이 참여하는 국제 행사로 확장됐다.
특히 주한미군 주둔이라는 특성을 살린 ‘평택 국제 평화·안보 포럼’은 도시 차원의 안보 담론 참여라는 새로운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 같은 성과로 평택시는 한–베트남 정상외교와 연계된 무대에서 다낭시와 지방정부 가운데 유일하게 협력 합의각서(MOA)를 교환했으며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지방외교 우수사례 공모전’에서도 장려상을 수상했다.
아울러 시는 올해 반도체 생산라인과 평택항을 활용한 전략산업 연계형 경제외교를 강화하고 중국권역 우호 도시들과 ‘1도시 1사업’을 본격 가동하며 시민 참여형 공공외교로 도시 외교의 지속성을 높일 방침이다.
인터뷰 정장선 평택시장 “보스턴·시애틀처럼…세계 속 평택 꿈꾼다”
도시 외교를 통해 평택시의 국제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중심에는 정장선 시장이 있다. 민선 7기 취임 이후 8기에 이르기까지 정 시장은 국제교류의 외연을 꾸준히 넓히는 동시에 형식에 그치지 않는 성과 중심의 교류 모델을 정착시키며 평택시의 국제무대를 향한 방향성을 분명히 해왔다.
단순한 방문 외교를 넘어 투자·산업·문화·청년 교류로 이어지는 구조를 설계하며 도시 외교의 실질화를 이끌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 시장이 도시 외교 확장에 나선 배경은 분명하다. 평택을 명실상부한 국제도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다.
그는 “평택시는 오랫동안 국제도시를 표방해 왔지만 실제 국제교류는 의례적인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며 “그러나 평택은 다른 도시와 분명히 구별되는 국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 시장은 평택의 지정학적·산업적 특수성을 도시 외교의 핵심 자산으로 꼽았다.
그는 “대한민국 공군과 해군의 주요 전력이 평택에 있고 세계 최대 규모의 주한미군도 주둔하고 있다. 동시에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다. 안보를 책임지면서도 미래 산업을 이끌어 가는 도시라는 점은 매우 독특한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평택만의 지역 색깔을 세계에 알리고 형식이 아닌 실질적인 국제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지난 임기 동안 국제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왔다”고 덧붙였다.
도시 외교가 경직된 국제 정치 환경 속에서도 현실적인 소통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그는 “중국과 대만의 정치적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상하이–타이베이 포럼’을 통해 도시 행정과 민생 분야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며 “도시 간 교류는 국가 관계가 경색되더라도 협력의 끈을 유지하는 완충지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국가 간 외교 환경이 불투명해지고 있지만 도시 외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협력의 돌파구로 기능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정 시장은 국제교류를 통해 평택시가 세계 속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도시로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다.
그는 “보스턴이나 시애틀, 독일의 슈투트가르트는 인구가 60만~80만명 수준이지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도시”라며 “우리나라에도 규모가 큰 도시가 많지만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곳은 여전히 서울에 집중돼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국제교류를 통해 평택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세계 여러 도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기 바란다”며 “이를 통해 도시 브랜드 가치와 신뢰가 쌓이고 장기적으로는 기업 간 거래, 공동 프로젝트, 인적 교류 등 구체적인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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