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조 새벽배송 시장 70%가 쿠팡, 시작점은 ‘유통법’
26일 한국로지스틱스학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11조 8000억원이었으며, 지난해엔 15조원까지 성장했을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 새벽배송 시장은 2020년 이후 유통업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으며, 현재 이용자만 2000만명 수준인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쿠팡은 국내 새벽배송 시장에서 최소 11조원(약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현재로선 쿠팡의 대항마가 전무한 상황이다.
이처럼 쿠팡 중심의 새벽배송 시장이 조성된 건 기업 자체의 물류 인프라 투자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새벽배송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자정(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점포를 활용한 온라인 주문·배송을 제한하는 규제다. 이는 2012년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 법의 핵심은 ‘제12조의2’에 명시된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 점포(SSM) 영업시간 제한(0시~10시) △매월 2일 의무휴업이다.
유통법 개정안의 당초 취지는 전통시장과 자영업자 상권 보호였다. 사람들이 전통시장에 가지 않으니 ‘잘 나가던’ 대형마트를 규제해 골목상권을 지키겠단 의도였다. 당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의 조직인 한국체인스토어협회는 유통법상 영업제한 시간 내 배송(새벽배송)에 대해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의뢰했는데, 이것이 ‘법 위반’으로 해석되면서 지금의 대형마트·SSM 등의 새벽배송 규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초창기 지식경제부(현 산업부)가 이끌던 유통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 등을 통해 영업시간 등을 조율할 수 있었다. 하지만 18대 국회가 뒤늦게 가세하면서 유통법은 더 세졌다. 당시 관련 업무를 했던 산업부 전직 관료는 “정부안과 달리 2012년 제18대 국회에서 김영환 민주당 의원(당시 국회 지식경제위원장) 등이 ‘의무휴업 등을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며 “결국 19대 국회에서 2013년 개정안을 통해 규제가 더 강화됐다”고 말했다. 실제 영업 제한 시간이 기존 0시~8시에서 0시~10시로, 의무 휴업일은 매월 2일 이내에서 2일로 강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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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대항마는 ‘대형마트’, 국회 규제 철폐 ‘액션’ 보여야
하지만 유통법은 취지와 달리 흘러갔다. 우선 예상했던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으로의 소비자 이동은 희미했고, 이커머스(전자상거래) 비중만 높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의 전통시장 식료품 평균 구매액은 610만원으로 2015년(1370만원)대비 55% 감소했다. 반면 온라인몰 구매액은 같은 기간 350만원에서 8170만원으로 20배 이상 늘었다. 이 같은 이커머스 성장을 이끈 것이 바로 2014년부터 새벽배송을 도입한 쿠팡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유통법상 대형마트 등은 심야·새벽영업과 배송이 막혔는데 이 틈새를 쿠팡, 컬리 등은 자유롭게 운영하면서 사실상 이커머스의 특혜가 된 구조가 됐다”며 “쿠팡이 유통법의 맹점을 잘 파고들어 대대적인 자체 물류센터·배송망 투자를 전개했고, 이후 2018년 신선식품 새벽배송(로켓프레시)까지 내세워 유통시장을 모두 가져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13년간 법 취지와 달리 쿠팡만 키웠던 새벽배송 규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쿠팡 사태를 기점으로 변화를 맞는 모습이다. 실제 최근 쿠팡에 대한 국민 반감이 커지자 ‘쿠팡의 대체재’를 찾는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업계와 정부 일각에서도 이제는 새벽배송 규제를 풀어 시장에 경쟁 체제를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산업통상부가 유통업계에 새벽배송 규제 관련 의견 수렴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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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가능성이 높은 건 대형마트와 SSM이다. 새벽배송 규제가 풀리기만 해도 대형마트 3사와 SSM 4사의 전국 1800여개 점포가 ‘도심형 물류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대형마트 3사 점포는 392개, SSM 점포는 1463개로 총 1855개에 달한다. 현재 쿠팡의 풀필먼트센터(FC)와 중간 거점 캠프가 약 200곳임을 감안하면 9배 이상의 물류 인프라가 이미 준비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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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금난에 허덕이는 홈플러스 회생에도 새벽배송 규제 개선은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단 평가도 나온다. 특히 SSM의 경우 도심 주택가에 인접한 곳들이 많아 새벽배송 규제가 풀리면 ‘마이크로 풀필먼트’ 역할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정부와 국회 입장에서도 쿠팡 사태의 뒷수습과 함께 홈플러스 회생, 자영업자(SSM 가맹점주) 지원까지 ‘일거삼득’ 할 수 있단 설명이다.
새벽배송 규제를 풀려면 결국 국회가 나서야 한다. 앞서 국회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당초 지난해 11월로 일몰될 예정이었던 유통법 개정안 규제 조항의 유효기간을 오는 2029년 11월 말로 연장시키며 규제를 유지하는 선택을 했다. 업계 일각에서 “국회가 쿠팡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다. 실질적인 국회의 ‘액션’이 필요한 때다.
이호택 계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새벽배송은 현재 쿠팡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 선택권이 상당히 제한된 시장”이라며 “여당인 민주당이 골목상권과 노동계에 상당히 많은 지지 기반을 갖고 있지만, 시장의 공정경쟁과 파이 확대 등에 필요한 만큼 이제 전향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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