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도 식당 장사가 여의치 않아 고민이 많던 A씨는 지난달 오랜만에 반가운 단체예약 전화를 받았다. 전화 예약을 한 손님은 좋아하는 술을 미리 준비해달라며 주류회사 명함을 보냈다. 한 병에 300만원짜리 고가의 술이라 A씨는 잠시 의심했지만 단체 손님을 놓칠 수 없었던 그는 명함 속 업체 계좌로 입금했다. 이후 추가로 700만원을 더 입금한 후 예약자라는 상대와는 연락이 끊겨 버렸다. A씨는 그제야 뭔가 잘못됐단 생각이 들어 경찰서로 달려가 진정서를 제출하고, 은행에 지급 정지를 요청했지만 대출 사기 피해가 아닌 물품 사기에는 지급 정지가 적용되지 않는 답변을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연간 기준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A씨가 겪은 ‘노쇼 사기’와 같은 신종 범죄 피해까지 더하면 실제 피싱 범죄 피해액의 규모는 두 배를 뛰어넘는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을 기반으로 대응하는 피싱 범죄 범주에는 노쇼 사기를 비롯해 로맨스스캠, 투자리딩방 사기 등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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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A씨처럼 노쇼 사기 피해액만 1256억원 규모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자영업자를 겨냥한 이같은 노쇼 사기가 신종 범죄로 기승을 부리면서 지난해 처음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했다. 특정 사이트에 가입시켜 참여비나 적립금·수수료 명목으로 금전을 뜯어내는 ‘팀미션 사기’도 신종 범죄 중 하나로 집계를 시작한 지난해 피해액이 1396억원에 달했다.
투자자들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모은 뒤 조작된 수익 화면으로 속여 돈을 끌어모으는 ‘투자 리딩방 사기’ 피해액은 6581억원, 온라인에서 연애와 결혼을 미끼로 감정적 친밀감을 쌓은 뒤 돈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도 피해액도 1360억원에 달했다. 이 같은 일부 유형만 집계하더라도 피해액은 1조 593억원에 달한다. 이 유형으로 분류되지 않는 피싱 범죄들을 포함하면 이 수치는 더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피싱 범죄 수법이 날로 고도화·다변화하고 있지만 신·변종 피싱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법 체계는 미비하다. 경찰은 지난 2022년부터 다중피해사기를 포함한 비대면·온라인 사기 전반에 일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규정을 담은 ‘사기방지기본법’ 제정을 추진했지만 21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제도공백을 틈타 다중피해사기는 더욱 기승을 부리자 경찰은 지난해 7월 ‘다중피해사기 대응 전담반’을 출범하고 ‘다중피해사기방지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경찰은 더불어민주당 보이스피싱 TF와 함께 지난달 29일 ‘전기통신이용 다중피해사기 방지법’(채현일 의원 대표발의)을 발의했다. 다중피해사기 등에 이용된 전화번호에 대한 이용중지, 이용계좌에 대해 금융회사에 지급 정치 요청 등의 규정을 담고 있는 해당 법안은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회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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