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퍼 보스만스.
글래드스톤 갤러리는 오는 1월 29일부터 3월 14일까지 벨기에 브뤼셀 기반의 작가 캐스퍼 보스만스(Kasper Bosmans)의 국내 최초 개인전 《Peas, Pod》를 개최한다. 혼합매체를 활용한 작가의 신작 및 근작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회화, 조각, 벽화를 포함한 다양한 형식을 아우르며, 정체성과 표현 등의 주제를 동시대의 퀴어적 관점에서 바라본다. 특히 작가가 선보이는 실험적인 브론즈 주조(bronze-casting) 작업과 벨기에 전통 회화 양식은 해부학적 형태와 그 가변성을 탐구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작업에는 신화나 설화, 오래된 이야기들이 콘텍스트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특정한 서사를 재현한다기보다, 이야기 속 상징이 '작동하는 방식' 자체에 더 관심이 있어 보여요. 이야기의 내용보다 암시가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차용한다고 느꼈습니다
맞아요. 저는 사람들에게 어떤 걸 '설명해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하지 않아요. 제가 하는 건, 제가 자라온 문화 안에 이미 존재하던 것들을 즉흥적으로 꺼내어 다시 만져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각문화 속에서 이상한 소속감 같은 걸 느꼈어요. 그래서 계속 해독하려고 했죠. 그런데 오래 들여다볼수록 깨닫는 건, 상징은 하나의 정답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상징은 늘 다르게 읽히고, 해석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의미를 '찾는 것'보다는, 그 의미를 둘러싸고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상징 언어, 우화적 추상, 은유 같은 것들을 만들거나 차용하는 행위 자체가 저에게는 훨씬 흥미롭습니다. 연금술과 비슷하달까요. 연금술이 ‘철을 금으로 바꾸는 결과’만을 목표로 하지 않듯, 저도 ‘정답’을 생산하기보다 그 과정에서 윤리의 경계, 질문의 형태를 탐색하는 쪽에 더 가까워요.
'Legend: Critter Pavilion, Ostrich Caryatid', 2024, Gouache and silverpoint on poplar panel, 28 x 21 cm.
당신의 도상에서 문장(紋章)이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가문이 자기 문장을 가진다’는 개념이 익숙하지 않습니다. 국가나 기관의 상징은 있어도, 개인/가문이 로고처럼 세습하는 문화는 낯설죠. 문장학(heraldry)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겨났는지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기원은 정확히 한 가지로 확정하기 어렵지만, 흔히 이야기되는 가설이 있어요. 십자군 전쟁 시기, 중동의 강한 햇빛 탓에 갑옷이 너무 뜨거워지고 매우 위험했기 때문에 기사들이 천으로 몸을 덮어야 했지요. 그런데 그러면 서로를 구별하기가 어려워지잖아요. 그래서 자신을 식별하기 위한 표식, 일종의 로고를 쓰기 시작했다는 설명이죠. 예를 들어 ‘라이언 하트’라는 성을 가진 가문의 사람이라면 사자가 그려진 천을 덮는 거죠. 이 표식이 점점 가문과 계보로 고정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사자 문장을 가진 기사와 비둘기 문장을 가진 집안이 혼인하면, 후손의 문장에는 사자와 비둘기가 절반씩 나뉘어 들어가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문장은 세대를 따라 축적되고 결합하면서 추상적이지만 읽을 수 있는 언어가 됩니다. 게다가 방패를 어떻게 분할할지, 어떤 색과 도형을 허용할지 등 규칙이 엄격해서, 창작자의 발명은 제한되죠. 흥미로운 건, 이 전통이 여전히 유럽 곳곳에서 살아 있다는 점이에요. 국가뿐 아니라 도시, 마을, 가문, 경우에 따라 기업도 문장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 대부분은 '대가들의 미술'로는 다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디자인이나 장식에 가까운 것으로 취급되곤 했지요. 위대한 화가들도 귀족의 의뢰를 받아 문장이 포함된 장식 작업을 했지만, 그런 작업들은 걸작으로는 보존되지 않고 일시적·실용적 영역으로 분류되곤 했어요. 저는 그 익명성과 규칙성, ‘미술과 디자인 사이’의 애매함에 끌립니다.
'Legend: Critter Pavilion, Cornucopia', 2024, Gouache and silverpoint on poplar panel, 28 x 21 cm.
방금 '의미는 점점 추상화되지만 여전히 읽히는 언어'라고 했어요. 그렇다면 관객이 상징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하거나, 설명을 요구하는 상황도 많을 것 같습니다. 유럽 관객들은 이런 상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낯설어 하는 한국인들과는 달리 이런 도상들에 익숙한 유럽 문화권에서의 독해가 따로 작동하나요?
어떤 문화권에서도 '모든 걸 다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설령 누군가 모든 걸 안다고 해서 작품을 이해하는 건 아니죠. 의미는 계속 바뀌거든요. 저는 늘 '당신은 설명을 충분히 안 한다'는 말을 듣는데, 솔직히 저도 제가 다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많이 안다고 해서 곧 이해하는 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만 유럽 관객에게는 익숙한 기호들이 있으니 ‘친밀감’이 생기기도 해요. 동시에 “왜 다 설명해주지 않냐”는 식의 불만도 나오죠. 그런데 저는 점점, 모든 걸 설명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일이 어떤 경우에는 억압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저는 예술을 감상할 때 설명을 받은 적이 없어요. 늘 스스로 찾았고, 그게 기쁨이었죠. 와인도 그렇잖아요. 제조법을 모두 알아야 그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반복해서 마시다 보면 어느 순간 감각이 연결되면서 “아, 이게 이런 결의 와인이구나”라고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 오는 거죠. 저는 그 복잡성을 유지하는 게임이 좋아요. 레시피를 정답이라며 보여 주고 싶지 않습니다.
문장이란 결국 ‘정체성이 계보를 타고 공유되는 장치’이기도 하니까, 퀴어로서의 정체성이 문장의 어떤 지점과 연결되기도 할 것 같아요.
저는 퀴어라 제 ‘가문’이나 ‘혈통’이 사회적가 요청하는 방식 그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 않지요. 한편 어려서부터 문장과 가문이나 혈통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그 자체가 '아이덴티티'의 상징이기 때문이었어요, 제게 문장학은 정체성이 공유되고, 결합되고, 전승되는 방식을 상상하게 하는 매체였던 셈이죠. 제 삶에서는 쉽게 이룰 수 없는 것을, 상징의 구조가 대신 보여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건 욕망이라기보다는 정체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훈련시키는 장치처럼 작동했지요.
당신의 작품 〈Cold Lips, Wet Feet〉은 14세기에 등장한 성녀 빌게포르티스(Saint Wilgefortis)의 비극과 관련한 작품입니다. 그녀는 무어인 왕과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명령에 거부하며 신께 풍성한 수염이 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결국 결혼을 못하고 십자가 형에 처해지지요. 그러나 이런 비극적 서사는 작품에서는 그 즉각 드러나지 않아요. 서사의 연결고리도 분명하지 않고요. 감정이나 비극을 다루는 데 개인적인 윤리 혹은 원칙이 있나요?
예전에는 감정을 가능한 한 배제하려고 했어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작업을 시작했기에 작품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상황도 빨리 왔는데, 감정을 다룰 만큼 제가 준비돼 있지 않다고 느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런 말 하는 경험이 쌓이고, 정신분석을 받으며 제 내면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면서 작업에도 점점 정서적인 층이 스며들고 있다고 느껴요. 다만 '규칙'은 없습니다. 제가 확실히 지키려는 건,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 것 이에요. 저는 작업을 하며 스스로의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야 어떤 작품의 바탕에 다른 주제가 있었다는 걸 발견하기도 해요. 꿈 해석처럼요.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와 근본의 주제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브제를 만드는 걸 좋아해요. 오브제는 제가 떠난 뒤에도 남아서, 스스로 독립하고(해방되고), 관객이든 저든 각자 다른 발견을 할 수 있죠. 또 제 작업은 기억과도 관련이 있어요. 조부모가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줘도 모든 아이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상처를 받지는 않잖아요. 미술사도 비슷합니다.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나 다른 감각으로 전승되죠. 저는 어둠을 전달하기 위해 반드시 어두운 미학만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밝고 명랑한 형식으로 어두운 내용을 뒤집어 전달하는 것 이 더 강력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할 만큼 매력적이어도, 그 안에 어둠이 들어 있을 수 있어요. 문화란 그런 식으로 노출되고, 계속 다른 효과를 만들죠.
'Banded Bridge', 2025, Hand patinated waxed bronze, 48.8 x 29.5 x 7 cm.
이번 전시에서 오딘과 두 마리의 까마귀(두 마리) 그리고 늑대 같은 북유럽 신화의 요소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왜 오딘이었나요?
오딘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제가 자주 떠오르는 신이었어요. 한 학자가 제안한 흥미로운 이론이 있는데, 오딘이 늘 두 마리의 까마귀, 늑대와 함께 등장하는 건 인간·늑대·까마귀가 공생하던 아주 오래된 기억의 흔적일 수 있다는 거예요. 정착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 사냥의 시대에 까마귀가 높은 곳에서 먹잇감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면 늑대와 인간이 함께 사냥을 했었고, 그 모습에서 오딘이 탄생한 게 아니었겠느냐는 것이죠.
와! 너무 그럴듯 한데요? 〈왕좌의 게임〉에서도 늑대 가문 사람들이 까마귀를 통해 다른 장면을 보고 다이어 울프를 수호 동물로 거느리고 다니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실제로 오늘날에도 까마귀와 늑대가 함께 사냥하는 장면을 관찰할 수 있어요. 저는 이 연결이 소름 끼칠 만큼 매혹적이 에요. 지금은 더 이상 살 수 없는 방식—이미 사라진 삶의 상태—가 신화의 이미지 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요. 저는 그걸 노스탤지어로 다루지 않습니다. 철학적인 가능성, 다른 존재 방식에 대한 사유로 다뤄요. 북유럽 신화를 보면 오딘은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됩니다. 개털 모자 같은 디테일, 전장에서 죽은 영웅을 발할라로 데려오는 역할 등, 설명이 이상할 정도로 정확해요. 그래서 오딘은 어떤 의미에서 ‘위로의 동료’처럼 느껴집니다. 제 조각 중 하나의 제목이 ‘컴패니언(Companion)’인 것도 그런 맥락이에요. 신화는 결국 우리를 지지하고 안내하는 드라마이기도 하니까요. 제게는 꽤 위안이 됩니다.
조금 튀는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A Wishing Well'이라는 작품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람들은 왜 연못이나 분수를 보면 동전을 던질까요? 동양만 그런 줄 알았는데, 서양도 그러더라고요. 혹시 벨기에 사람들도 산에 가면 돌탑을 쌓나요?
맞아요. 우리도 그래요. 산에서 돌탑을 쌓지요. 저도 그 보편성이 흥미롭습니다. 제 고향을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말하길, 과거의 초기 정착지는 시야가 트이는 언덕과 ‘고여 있는 물’ 근처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해요. 마시는 물이 아니라 의례의 물 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멀리 볼 수 있는 장소와 물을 결합한 의례가 세계 곳곳에 반복되는 걸 보면, 물을 향해 뭔가를 바치는 감각이 인간 몸에 '코딩'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물에 뭔가를 던지면, 그건 사라지죠. 경계를 넘어가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그래서 ‘신의 몫을 바치는 행위’처럼 읽히기도 하고, 물이 가진 정화의 감각 때문에 신성한 설득력을 얻지요. 비합리적이지만, 그래서 더 강력한 제스처입니다. 풍요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행위이기도 하고요.
'Legend: Critter Pavilion, Cornucopia', 2024, Gouache and silverpoint on poplar panel, 28 x 21 cm.
마지막으로, 작업에서 암시(allusion), 은유(metaphor), 상징(symbol) 같은 장치들이 계속 겹쳐 보입니다. 이 셋은 비슷하면서도 다르죠. 본인은 이런 도구들을 어떻게 구분하고, 어떤 레이어로 쓰나요?
저는 어떤 체계나 도그마로 굴러가지 않아요. 때로는 작업을 다 하고 나서야 내가 뭘 했는지 깨닫기도 합니다. 저는 제 작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동시에 저 자신을 하나의 바로미터로 씁니다. 오만한 얘기지만, 나를 위로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될 때가 있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어요. 그리고 제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이 제 작업을 다시 정보로 만들고, 그렇게 우리의 상상력이 만나는 지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문장학, 드라마, 사냥, 늑대와 까마귀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의 상상력을 연결해주죠. 저는 작품이 스스로 서 있길 바랍니다. 저는 사라질 것이고, 누군가는 제 작품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발견하겠죠. 제가 원하는 관객은 호기심이 있지만, 동시에 자율성을 가진 관객입니다. 누군가가 제 작품에서 위안을 찾되, 그 위안이 제 설명 때문만은 아니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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