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추진 중인 약가 제도 개편안을 두고 제약·바이오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업계는 약가 인하 자체보다 인하 속도와 폭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급격한 가격 인하가 연구개발(R&D) 투자 위축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약가 제도 개편, 이대로 좋은가’ 정책토론회에서는 정부의 약가 산정 기준 개편안을 둘러싼 우려와 대안이 집중 제기됐다. 이번 토론회는 국민의힘 백종헌·한지아·안상훈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제약바이오협회가 주관했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13년 만의 약가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의 핵심은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53~59% 수준인 복제약 약가를 40% 수준까지 낮추고, 이를 기존 등재 의약품에도 순차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제약업계는 개편안이 산업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국내 제약산업은 국산 전문의약품, 특히 복제약 매출을 기반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확대해 성과를 내는 구조”라며 “약가 인하를 급격히 추진할 경우 R&D 투자가 위축되고, 고가 의약품 대체 효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이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회장은 2012년 약가 일괄 인하 사례를 언급하며 “당시 단기적으로 재정 지출은 줄었지만 소비자 부담은 13.8% 증가했다”며 “약가 정책은 산업계와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한국신약개발조합, 한국제약협동조합 등이 참여한 ‘제약바이오산업 발전을 위한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도 개편안 재설계를 요구했다. 비대위는 △산정 기준과 인하 폭 대폭 축소 △시행 시기 조절 △R&D 투자 우수 기업의 인하 대상 제외 △국산 원료 사용 우대 확대 등을 핵심 건의 사항으로 제시했다.
김영주 비대위 정책기획위원장(종근당 대표)은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은 복제약이 전체 의약품의 약 50%를 차지하는 구조”라며 “약가 인하는 곧바로 매출 감소와 수익성 악화로 이어져 R&D 투자 축소와 인력 유출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이는 산업 생태계 전반의 선순환 구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업계는 과거 해외 사례도 경고 신호로 제시했다. 비대위는 일본과 프랑스의 약가 인하 정책 이후 의약품 품절과 공급 불안이 빈번해졌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복제약 약 23%가 공급 부족 또는 생산 중단을 겪었고, 프랑스는 신규 복제약의 15%만이 자국 내에서 생산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낮은 약가를 맞추기 위해 중국·인도산 원료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글로벌 공급망 위기 시 의약품 수급 불안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법조계에서도 제도 설계의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토론회 발제를 맡은 김앤장법률사무소 박관우 변호사는 “약가 인하와 같은 규제 조치와 함께 산업에 대한 인센티브가 균형적으로 작동해야 한다”며 “즉각적인 매출 감소 충격을 완화할 수 있도록 점진적인 제도 시행이 바람직하다”고 분석했다.
패널 토론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윤재춘 대웅제약 부회장은 급격한 약가 인하에 대해 “새싹을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며 “국내 제약산업이 외국 제약사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주 종근당 대표는 “약가 인하로 모든 기업이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며 “산업계가 수용 가능한 인하 범위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백종헌 의원 역시 “정부가 재정 절감 효과만을 이유로 산업 전반에 구조적 충격을 주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약가 제도 개편은 재정과 산업 경쟁력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재설계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업계는 건전한 산업 구조 개선이라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속도와 폭을 조절하지 않은 약가 인하는 장기적으로 산업 경쟁력과 의약품 공급 안정성 모두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와의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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