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미국 의약품 관세 위협에 대응한 각국의 선제 증산 움직임으로 지난해 글로벌 의약품 생산량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관세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되면서 올해는 생산 증가세가 둔화되고, 내년 이후 다시 완만한 회복 국면에 들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6일 한국바이오협회 바이오경제연구센터가 금융서비스 기업 아트라디우스 보고서를 인용해 분석한 결과, 지난해 글로벌 의약품 생산량은 전년 대비 9.1% 증가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지속적으로 의약품 수입 관세 부과 가능성을 언급하자, 주요 제약사들이 관세 시행 전 공급 물량을 앞당겨 늘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보고서는 올해 글로벌 의약품 생산 증가율이 긴축 정책과 기저 효과로 1.6%에 그친 뒤, 내년에는 3.7% 수준으로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의 급증은 구조적 성장이라기보다 관세 리스크에 대한 일시적 대응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지역별로는 유럽의 변동성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영국과 유럽연합(EU)의 의약품 생산량은 전년 대비 21.6% 증가했다. 대형 의약품 제조 거점인 아일랜드는 생산량이 41.3% 급증했다. 그러나 올해 영국과 EU의 생산량은 합산 기준 3.7% 감소하고, 아일랜드 역시 6.4% 줄어들 것으로 관측됐다.
EU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의약품 관세율 상한을 15%로 설정했지만, 영국은 혁신 의약품에 대해 국민건강서비스(NHS)의 순가격을 25% 인상하는 방식으로 미국 수입 관세를 사실상 회피했다. 다만 보고서는 제조업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기조가 비용과 복잡성 측면에서 부담이 커 자원이 부족한 중소 제약사에는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의약품 생산량이 5.2% 증가했지만, 올해는 0.9%로 둔화될 것으로 예측됐다. 내년에는 2.5% 증가하며 점진적인 회복이 예상된다. 반면 중국은 비교적 안정적인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의약품 생산량은 지난해 3.6% 증가했고, 올해는 6.6%, 내년에도 유사한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이 글로벌 활성의약품성분(API) 생산량의 약 40%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API가 미국 관세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관세 노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란 해석이다. 글로벌 의약품 시장의 매출과 투자 역시 지난해에는 각각 9.7%, 5.2% 증가했지만, 올해는 1.6%와 2.7%로 둔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내년에는 매출 3.9%, 투자 4.9% 증가가 예상된다.
아트라디우스는 “대형 다국적 제약사들이 백악관과의 협상을 통해 약가 인하를 조건으로 관세 면제를 받았고, 주요 국가들도 무역 협정을 통해 관세 상한선을 설정했다는 점에서 미국 관세의 전반적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의약품 공급망은 점차 분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고서는 “각국 정부가 의약품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전략적 비축과 국내 제조를 장려하는 정책을 강화할 것”이라며 “향후 제약 산업에서는 기업 전략 못지않게 정부 정책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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