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여행] 98-굴곡진 역사를 가진 포항 구룡포의 겨울 진미 ‘과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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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여행] 98-굴곡진 역사를 가진 포항 구룡포의 겨울 진미 ‘과메기’

중도일보 2026-01-26 16:46:5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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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kaoTalk_20260126_100848188구룡포 주상절리.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번 겨울 여행은 과메기의 고장 포항(浦港) 구룡포로 정했다.

용 열 마리가 승천하다 한 마리는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을 간직한 구룡포(九龍浦)에는 일본인 가옥 거리가 있으며, 겨울의 진미 과메기 덕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구룡포는 인상적인 곳은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다. 이곳은 1883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일통상장정 이후 구룡포에 일본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해 온 것은 1906년부터다. 어업의 전진기지로 알려지면서 수많은 일본인 어부가 구룡포에 정착했다.

1932년 구룡포 거주 일본인은 287가구 1천161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될 당시 구룡포항 주변에는 조선인 민가가 겨우 3채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통조림 가공공장은 물론이고 음식점, 제과점, 주점 등이 들어서면서 구룡포는 최대의 상업지구로 이름을 떨쳤다. 좁은 골목 좌우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 늘어서 있던 구룡포 읍내 장안마을은 당시 '종로거리'로 불리기도 했다.

이 마을에는 현재 47개의 일본식 목조 건물이 남아있어 2010년 포항시에서는 역사를 기억하는 산 교육장을 만들고자'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전북 군산이 일제의 미곡 수탈 전진기지였다면, 구룡포는 대표적 어업 수탈 현장이었다. 당시 요리점으로 사용되었던 후루사또야(ふるさとや)라는 일본 가옥은 내부 형태 그대로 보존되어 현재 찻집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본의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다.

KakaoTalk_20260126_083056405구룡포 일본인 거리.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일제강점기인 1909년 구룡포로 이주해 움막으로 출발한 하시모토 겐기치(橋本善吉)가 1913년에 터를 잡아 지은 집을 개조하여 만든 '구룡포근대박물관'에서는 당시 일본식 건물과 생활상을 볼 수 있다.

근대박물관에는 100년 전 일본의 전통가옥 양식을 파악할 수 있는 2층 목조건물 내부에는 일본인의 생활상과 구룡포의 역사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한편 인근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과메기문화관이 있다. 이곳은 2011년 폐교한 구룡포동부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2016년'과메기문화관'을 세웠다고 한다. 4층 건물 전시관 내부에는 과메기의 어원과 유래, 생산과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인 가옥거리와 과메기 문화관을 둘러 보고 구룡포 주상절리 향한다. 구룡포 주상절리는 구룡포해수욕장에 연이어 위치하고 있는데, 구룡포항에서 한 굽이 돌면 바로 구룡포해변이다.

구룡포 주상절리는 규모가 크지 않고 아담해 한적한 겨울 바다의 정취를 즐기기 딱 좋은 곳으로 해변 옆 언덕을 오르면 울퉁불퉁하고 희끗희끗한 갯바위가 넓게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화산 폭발로 용암이 분출되다가 갑자기 멈춘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는 타 지역의 주상절리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물이 빠지면 아래로 내려가서 생생하게 관찰할 수 있다. 구룡포에서 살았다던 아홉 마리 용이 꿈틀대고 있는듯한 형상을 한 구불구불한 바위들이 인상적이다.

육각형을 비롯한 다면체 돌기둥으로 형성된 큰 바위덩어리가 있는가 하면, 언덕에는 화산 폭발과 용암 분출의 흔적을 품은 돌기둥이 박혀 있다. 오랜 시간 파도에 쓸려 모서리가 닳고 색이 바랜 주상절리 바위 위를 걸을 수 있는 것도 이곳의 특권이다.

구룡포 주상절리는 제1전망대와 제2전망대에서 감상할 수 있다. 두 전망대 간 거리는 30m 안팎으로 가깝다. 모든 전망대에서 주상절리뿐만 아니라 포항 앞바다의 풍경도 함께 조망할 수 있다. 특히 제1전망대에서는 구룡포해수욕장의 전체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전망대 주변에는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다.

KakaoTalk_20260126_100859285말린 과메기. (사진= 김영복 연구가)

주상절리 옆 삼정마을에는 바닷가 과메기 덕장에서 청어나 꽁치를 일일이 먹기 좋은 사이즈로 잘 활복해서, 꺠끗하게 씻어서 해풍에 말린다고 한다.

이곳은 해풍이 가장 적당히 불어오는 곳으로 밤에 얼고 낮에 녹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가장 맛있는 과메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포항이나 구룡포에서 과메기를 먹을 줄 아는 사람들은 삼정마을에서 말린 과메기를 제일로 여긴다고 한다.

특히 구룡포하면 과메기, 과메기하면 구룡포할 정도로 겨울 구룡포는 과메기와 동의어다. 항구 뒤편 구룡포시는 2017년 '과메기·물회 음식특화거리' 조성을 했다.

1832년에 쓰인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를 보면 "영일만의 토산식품 중 조선시대 진상품으론 영일과 장기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 가공의 관목청어뿐"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과메기는 주로 청어로 만든다.

해초가 많은 포항 영일만은 겨울철에 청어 떼가 몰려와 산란하는 장소였다. 그물만 던지면 한가득 끌려 올라오는 청어는 이곳의 중요한 식량이었다.

비교적 해초가 많은 포항 영일만은 겨울철에 청어 떼가 몰려와 산란하는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34년에는 동해에서 1년에 5000만kg이나 잡혀 청어알 만해도 영일만(迎日灣) 연안에 산더미처럼 쌓였다 한다.

이 청어를 서울 사람들은 '비웃'이라고 불렀다.

조선후기인 1870년 황필수(黃泌秀1842∼1914)의 어휘집인『명물기략(名物紀略)』에 '청어는 값싸고 맛이 있어 서울의 가난한 선비들이 잘 먹는 고기라 지적하고 비유어(肥儒魚)'로 표기했다.

선비를 살찌게 하는 고기라 하여 청어를 '비유어'라 했고, 이 '비유어'가 음운변화에 의해 '비웃'이 된 것이다.

그러나 비웃은 서해에서 청어를 일컫는 서울말이다.

해초가 많은 포항 영일만은 겨울철에 청어 떼가 몰려와 산란하는 장소였다. 그물만 던지면 한가득 끌려 올라오는 청어는 중요한 식량이었으나, 한 철에만 잡히는 청어를 두고두고 먹을 수 있도록 보관하는 방법이 문제였다. 그러다 누군가가 부엌 살창(통풍이 되는 작은 창)에 청어를 걸어 놓았는데, 여기는 부엌의 연기가 빠져나가는 곳이라 훈제하는 효과가 생겨 고기가 쉽게 상하지 않았다. 그 뒤로 사람들은 모두 부엌 살창에 1두름은 20마리로 치는 청어 몇 두름쯤은 걸어놓고 겨울나기를 시작하였다.

이렇게 매달아 놓은 청어들이 차가운 겨울바람에 얼었다가, 다시 밥 짓느라 따뜻해진 연기를 쐬며 녹았다가를 반복하면서 반(半)건조 되었다. 이를 먹어보니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이 아주 그만이었다. 이렇게 해서 '냉훈법(冷燻法)'이라는 천연의 동결 건조 방법을 터득한 영일만 사람들은 이 방법을 더 발전시켜 낮에는 해가 쨍쨍 내리쬐고 밤에는 차가운 바닷 바람이 부는 구룡포 바닷가에 청어를 매달아두었다.

조선 후기 학자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1788∼1863)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烟貫目)이라 부른다. '라고 하였다. 영일만 지역의 청어 말리는 법과 다를 바가 없는 내용이다.

KakaoTalk_20260126_083129757과메기. (사진= 김영복 연구가)

그러나 조선의 실학자 풍석(楓石) 서유구(徐有,1764~1845)가 쓴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정조지(鼎俎志)」에는 이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풍어(風魚)만드는 법을 기록했는데, 이 풍어만드는 법[風魚方]은 "用靑魚、 鯉魚破去腸胃. 每斤, 用鹽四五錢, 七日, 取起, 洗淨拭乾. 下切一刀. 將川椒、 茴香加炒鹽, 擦入內幷腹裏, 外以紙包. 外用麻皮成一箇, 掛于當風之處. 腹內入料多些方妙. 청어(靑魚)나 잉어는 배를 가르고 창자와 위를 제거한다.

고기 1근마다 소금 0.4~0.5냥을 넣고 7일 동안 절인 다음 꺼내서 깨끗이 씻고 닦아 말린다. 아가미 밑을 칼로 한 번 자른다. 천초 · 회향에 볶은 소금을 넣은 다음 아가미 안쪽과 뱃속에 비벼 넣은 뒤, 겉을 종이로 감싼다. 종이로 감싼 겉을 삼껍질로 묶으면 풍어(風魚) 하나가 완성되는데, 이를 바람이 드는 곳에 걸어놓는다. 뱃속에 넣는 양념이 많을수록 맛이 빼어나다."라고 했다.

많은 청어를 한 번에 매달기 위해 긴 나뭇가지에 청어의 양 눈을 뚫어 줄줄이 꿰었는데, 처음에는 이를 눈을 꿰뚫은 물고기'관목어(貫目魚)'라고 부르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과메기'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칼럼니스트이며 주당(酒黨)으로 유명했던 수탑(須塔) 심연섭(沈鍊燮. 1923~1977)의 수필에 '농사의 부엌 아궁이는 으레 연기를 내게 마련이다.

굴뚝이 낮은 탓이겠지만 시골 사람들이 굴뚝을 높이지 않는 것은 아마 열량을 절약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아궁이에 송엽을 땔 때 부엌 안은 연기로 가득하게 되고 자연 통풍이 필요하게 된다. 채광(採光)을 겸한 그 통풍구(通風口)가 추녀 바로 아래다. 뚫은 살창이다. 그 곳이 바로 청어의 건조장, 비웃 몇 두름을 겨우내 그 살창에 걸어두면 송엽의 향연으로 훈제가 되어 이른 봄에는 빳빳한 관목이 되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이게 바로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훈제법으로 만들어 진 연관목(烟貫目)이다.

KakaoTalk_20260126_083138328과메기. (사진= 김영복 연구가)

이 연관목(烟貫目)을 훈목어(燻目魚)라고도 한다.

과메기는 주로 청어로 만들었는데, 1960년대 이후 영일만에 청어가 급격히 줄어들어, 대신 많이 잡히는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어 보았는데 맛이 청어에 뒤지지 않았다. 지금도 보통 과메기는 꽁치로 만드는데, 한 마리를 통째로 말린 '통마리'와 내장과 뼈를 발라내고 말린 '배지기' 등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과메기는 고기 한 점에 마늘, 쪽파 등을 얹어 미역 줄기로 돌돌 감은 뒤에 초장에 찍어 먹어야 비린내도 덜 나고 맛깔스럽다. 그러나 산지인 구룡포에서는 과메기 특유의 고소한 맛을 즐기기 위해 말린 것 그대로 먹는다.

과메기는 등푸른 생선으로 DHA·EPA 등 오메가-3가 풍부하고 단백질·비타민E·칼슘·비타민D가 많아 심혈관·뇌 건강과 노화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과메기 100g당 단백질 18~29.6g, 오메가-3 약 7.9g, 칼로리 177~246kcal로 보고되며, 칼슘·인·철분과 비타민 B1·B2·B12, 비타민 A·D·E가 함유되어 있다.

건조 과정에서 영양이 농축되어 생꽁치보다 오메가-3가 약 36% 더 많은데, 오메가-3가 혈중 중성지방을 낮추고 HDL을 높여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을 준다. DHA가 뇌세포 보호와

기억력 개선에 기여하며, 비타민 D·칼슘은 뼈 건강과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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