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이집트 룩소르(Luxor, الأقصر)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보존된 고대 문명 도시 중 하나다. 이곳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도시가 가진 지형적 특수성을 파악해야 한다. 지상에서 유적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살피는 것도 의미가 있으나, 도시 전체의 설계 원리와 배치를 이해하는 데는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조감(鳥瞰)이 가장 효과적이다. 룩소르의 아침,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대지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 위에 문명을 건설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거대한 설계도와 같다.
하늘에서 본 룩소르는 철저하게 나일강을 중심으로 분리되어 있다. 사진에서 보듯 생명을 품은 짙은 녹색의 농경지와 그 경계를 한 치의 양보 없이 가로막은 끝없는 황금빛 사막의 대비는 이 도시를 구성하는 두 축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이 선명한 경계는 단순한 지형적 구분이 아니었다. 동쪽의 녹색 대지는 해가 뜨는 ‘삶의 터전(산자의 도시)’이었고, 해가 저무는 서쪽의 메마른 산맥은 ‘죽은 자들의 안식처(죽은자의 도시)’였다. 이러한 이분법적 공간 배치는 룩소르가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철저한 종교적, 미학적 계산 아래 건설된 도시임을 증명한다.
도시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나일강은 이 거대한 문명을 지탱해 온 핵심 동력이다. 상류에서 운반된 거대한 석재들이 이 물길을 통해 신전 건립지로 옮겨졌으며, 매년 반복되는 범람은 척박한 땅에 비옥한 토양을 선물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나일강 줄기는 정지한 듯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상 이 거대한 야외 박물관을 형성한 가장 근본적인 건축가나 다름없다. 현재도 강변을 따라 형성된 주거지들은 수천 년 전과 다름없이 이 지형적 혜택을 여전히 누리고 있으며, 이는 문명의 영속성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강 서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거대한 석회암 바위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왕들의 계곡’을 포함하여 고대 왕실의 묘역들이 밀집된 서안(West Bank) 지구다. 지상에서는 산맥의 단면만 보이지만, 하늘에서는 석회암 산맥의 굴곡들이 입체적으로 보인다. 고대인들이 왜 이곳을 영생의 장소로 택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산맥은 거대하고 험준하며 동시에 외부와 차단된 고립된 느낌을 준다. 이 거친 바위산 아래에 수십 명의 파라오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은 이 공간에 무게감을 더해준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산맥 곳곳에 배치된 유적들의 유기적인 연결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건축물들이 주변 자연환경과 이루는 조화이다. 룩소르의 건축물들은 인위적으로 돋보이기보다 주변 바위산의 색과 질감을 그대로 닮아 있다. 돌을 깎아 신전을 만들고 바위 속에 굴을 파서 무덤을 조성한 결과, 건축물과 자연의 경계가 모호해진 독특한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이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배경으로 삼았던 고대 이집트의 미학적 관점이 아닐까.
산기슭 하단부로 내려오면 과거의 유적지와 현대의 거주지가 한 화면에 담긴다. 하늘에서 보면 유적과 현대 가옥들이 특별한 경계 없이 뒤섞인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룩소르가 박제된 유적 도시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삶과 함께 쌓아온 공간임을 시사한다. 누군가의 집 마당과 고대의 무덤 입구가 나란히 배치된 풍경은 룩소르 문화가 일상과의 지속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공존은 지금까지 룩소르를 세계 유일의 살아있는 고고학 현장으로 만든다.
일출과 함께 빛의 각도가 낮아지면 대지는 더욱 선명해지며 건축물의 입체감이 살아난다. 룩소르의 건축물들은 빛의 변화에 따라 그 형체와 질감이 시시각각 변하도록 치밀하게 계산되어 만들어졌다. 멀리 보이는 신전들의 장대한 실루엣은 당시 기술력으로 구현 가능한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였는지를 짐작게 한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자 설계도처럼 펼쳐진 이 풍경은, 룩소르가 개별 유적의 집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유기체임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비행 중 가장 시선을 압도하는 지점은 단연 ‘핫셉수트 여왕의 장제전(Mortuary temple of Hatshepsut)’이다. 깎아지른 절벽을 병풍처럼 등지고 세워진 이 건축물은 하늘에서 볼 때 그 구조적 완결성이 극대화된다. 3단으로 구성된 테라스는 산의 경사를 완만하게 흡수하며 수평으로 길게 뻗어 있다. 이는 거친 자연 지형에 인간의 질서를 부여한 고대 건축의 정수라 할 만하다. 절벽의 수직적인 질감과 장제전 기둥들이 이루는 규칙적인 수평선의 조화는 현대 건축의 미학적 기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세련된 조형미를 보여준다.
장제전을 조망하다 보면 고대인들이 공간을 인식하고 활용하는 방식에 다시금 감탄하게 된다. 광활한 광장과 질서정연한 기둥 배치는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적인 규모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여왕의 권위를 신격화하기 위해 선택된 이 장소와 설계 방식은 미술이 정치를 보좌하고 영원을 기록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주변의 풍화된 지형들 사이에서 완벽한 기하학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장제전의 모습은 룩소르 미술이 추구했던 ‘불멸’의 가치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처럼 룩소르의 전경은 이 도시가 왜 수천 년 동안 인류 문명의 중심지로 기억되어 왔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준다. 지형을 이용한 대담한 공간 배치,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난 정교한 건축 미술은 룩소르를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문화적 자산으로 만들었다. 이 높은 곳에서의 조감은 룩소르라는 거대한 문명의 서문을 읽는 과정과 같다.
이제 상공에서의 관찰을 마치고 지상으로 내려가 이 거대한 설계도 속에 숨겨진 세밀한 부조와 색채의 기록을 하나씩 추적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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