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23일(이하 현지시간) 새 국방전략(NDS)을 발표하면서 글로벌 안보 지형에 변화가 예상된다.
이번 NDS는 국방 우선순위에 미 본토를 최우선으로 하면서 서반구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담고 있다. 동시에 중국, 러시아, 이란 등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결 보다 동맹국들이 기존 미국의 '안보 비용'을 분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북한도 후순위에 배치하면서 한반도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나아가 주한미군의 역할이나 구성, 규모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이재명 대통령도 새 NDS와 관련해 "자주국방이 기본 중 기본"이라며 전작권 전환 및 국방능력 확대 의지를 내비친 상태다.
새 국방전략 수립에 주요 역할을 한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이 25일 방한한 가운데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주목된다.
新국방전략, '서반구' 장악 돈로주의 기반…'동맹 분담' 강조
중국-러시아-이란-북한 등은 '후순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23일 새 국방전략(NDS)을 공개했다. 이번 NDS의 핵심은 돈로주의의 기반인 '서반구(남북 아메리카) 우선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미군 전력을 본토 방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NDS는 서반구를 '미 본토(homeland)'로 규정하며 이에 대한 방어를 최대 과제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북극에서 남아메리카에 이르는 핵심 지역, 특히 그린란드와 아메리카만(멕시코만), 파나마 운하에 대해 군사적·상업적 접근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했다.
본토 방어 다음 순위로는 중국이 거론됐다. 2022년 NDS에선 중국이 1순위였으나 뒤로 밀린 셈이다.
중국에 대해선 "대결이 아닌 힘을 통해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을 억제한다"면서 "인·태의 '괜찮은 평화'(decent peace)"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군사적 힘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중국과의 무력충돌을 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NDS는 "제1 도련선(島鏈線·열도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믈라카해협)을 따라 강력한 거부형 방어를 구축하고, 배치하며,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 대해선 "세계 최대의 핵무기 보유국"이자 "이를 지속적으로 현대화하고 다양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미국 본토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수중, 우주, 사이버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4년 전 NDS와 비교해 주목되는 부분은 북한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고, 비중도 다소 줄었다는 점이다. 2022년 NDS는 북한을 중·러 바로 다음의 위협으로 봤는데, 이번 NDS는 북한이 이란 뒤로 '한 단계' 내려갔다.
미 국방부는 북한에 대해 "대규모 재래식 전력 다수가 노후화됐거나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지만, 한국은 북한의 침공 위협에 맞서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미국 본토에 대한 분명하고 현존하는 핵 공격 위험을 제기한다"고 밝혔지만,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언급은 빠졌다. 2022년에는 NDS와 함께 나온 핵태세검토보고서(NPR)를 통해 한반도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목표로 명시한 바 있다.
물론 "북한의 미사일 전력은 재래식 및 핵무기뿐만 아니라 다른 대량살상무기(WMD)로도 한국과 일본 내 표적을 타격할 수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최근 대규모 반정부 시위 사태를 계기로 군사 개입이 검토되는 이란에 대해선 "수십 년 만에 가장 약화하고 가장 취약한 상태"라면서 중동 지역에서 이란이 후원하는 '저항의 축' 역시 "초토화됐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란은 최근 몇 달 동안 심각한 타격을 입었음에도 재래식 군사력을 재건하려는 의지를 보인다"며 "이란 지도부는 의미 있는 협상에 응하지 않는 등 다시 핵무기를 획득하려 시도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NDS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동맹을 향한 '분담' 촉구, 즉 역할 확대 요구다. 4년 전과 비교해 이를 별도로 다루면서 지역별 방어 전략에 동맹의 분담 필요성을 빼놓지 않았다.
미 국방부는 "유럽, 중동, 그리고 한반도에서 동맹과 파트너들이 자국 방어의 일차적 책임을 맡도록 하는 유인을 강화하는 것을 우선시"하되, "미군은 핵심적이지만 제한적인 자원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을 향해선 "더 제한적인 미국의 지원(critical but more limited US support)을 받으며 대북 억제에서 주된 책임을 질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 억제 역시 "이 지역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우리의 공동 방어를 위해 그들(동맹국)이 더 많은 역할을 하도록 유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을 향해선 그동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를 통해 미국에 '무임승차' 했다고 지적하며, "나토 동맹국들이 유럽의 재래식 방어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맡도록 유인"하겠다고 밝혔다.
美전문가 "미국 新국방전략, 韓책임확대·역내 美역할축소 신호"
미국 전문가들은 이번 NDS 발표로 한국의 책임이 보다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제임스 김 한국프로그램국장은 25일 언론에 배포한 분석 자료에서 "이번 NDS는 한국의 책임이 확대되는 반면 미국은 선택적 관여라는 보다 광범위한 전략 아래 역내 군사적 역할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한미동맹이 보다 비대칭적인 형태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새로운 군 태세가 어떻게 구현될지 아직 불분명하지만, 핵심은 새로운 미국의 전략이 한반도의 현상 유지에 상당한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미 한국에서 이러한 전환이 진행 중임을 시사하는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작업이 현재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또 미국의 지정학적 우선순위 재조정은 "서반구 밖 지역에서의 미국의 개입이 제한될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짚었다.
김 국장은 또 NDS에서 "국내 방위산업 기반의 재활성화" 문제가 주요 목표로 다뤄진 점을 언급하며, 세계 10위 수준의 무기 수출국이 된 한국이 "방산 협력의 유형과 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동맹을 재구성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다른 동맹국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안보 영역에서 더 큰 책임을 요구받을 것이며, 미국은 본토와 서반구 안보 확보에 주력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거부에 의한 억제'(deterrence by denial) 강화를 지속할 것"이라며 "70년 역사의 한미 동맹이 마침내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한국이 이 전환기를 전략적, 작전적, 산업적, 외교적으로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에 따라 동맹의 미래뿐 아니라 동북아 안보 구조의 미래도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NDS가 "트럼프 대통령이 4월로 예상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고, 백악관이 대만을 둘러싼 긴장을 낮추려는 상황에서 나왔다"면서 미 국방부가 "베이징에 대해 유화적 어조를 취하며, 그 최상위 목표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전략적 안정성'을 확립하고 중국군과의 긴장을 완화하는 것이라고 밝혔다"는 점을 조명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8년 NDS에선 러시아와 함께 다른 국가들의 경제적·외교적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려는" 수정주의적 강대국으로 중국을 규정한 것과 비교해 이번에는 중국군과의 '군(軍) 대 군' 소통을 확대하고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인·태 지역에서 세력 균형을 도모하려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그러면서 이번 NDS에 담긴 "미국인들에게 유리하지만 중국도 받아들이고 그 아래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의 '괜찮은 평화'(decent peace)"라는 표현, 그리고 대만 문제가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했다.
WSJ은 또 미 국방부가 "서반구에서 미국의 우위가 우선 과제임을 강조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장기적 목표가 유럽, 한반도, 중동에서의 군사적 역할을 축소하는 것임을 시사한다"고 해석했다.
李대통령, 美국방전략에 "자주국방, 기본中 기본"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NDS와 관련해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 자주국방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24일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의 자국 방어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의 트럼프 행정부의 새 NDS 내용을 분석한 기사를 링크하면서 "북한 GDP(국내총생산)의 1.4 배나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5위 군사력을 가진 대한민국이 스스로 방어하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확고한 자주국방과 한반도 평화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전략 기조에 호응을 표하면서, 대선 공약이었던 '임기 내 전작권 전환' 등의 자주국방 정책 기조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美국방차관, 新국방전략 들고 방한…전작권 등 논의 주목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새 국방전략 수립에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이 지난 25일 2박3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아 양국이 어떤 논의를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콜비 차관은 방한 기간 한국의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들과 만나 새 국방전략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주한미군 유연성 확대 등 동맹 현안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콜비 차관의 방한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규모 변화나 전략적 유연성 확대 문제가 한미 당국 간에 논의될지도 주목된다.
미국은 새 국방전략에서 한국에 북한 억제 역할을 더 많이 요구하는 동시에 미군 전력은 본토 방어와 중국 억제에 집중한다는 구상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에 배치된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북 방어에서 대중국 견제로 우선순위가 옮겨갈 가능성이 제기된다.
콜비 차관은 방한 기간 경기 평택에 있는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현장에서 어떤 언급을 할지도 관심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핵심전력으로 북한의 침략과 도발을 억제함으로써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에 기여해왔다"며 "앞으로도 그러한 방향으로 지속 발전하도록 미측과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콜비 차관이 한국의 국방비 인상에 대해 거듭 강조할 수도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조인트 팩트시트'를 통해 한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3.5%로 증액한다는 데 합의한 바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난 한미안보협의회(SCM) 공동성명에서도 한반도 방위에 있어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된 바 있다"며 북한 억제에 한국 책임을 강조한 미국의 새 국방전략이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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