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유현 인턴기자】이재명 정부가 의료 접근성 강화를 국정과제로 내세우면서 ‘비대면진료’와 ‘통합돌봄’의 법제화를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시기 한시 허용되면서 확산된 비대면진료는 지난해 의료법 개정으로 상시 제도권에 편입됐고 노인·장애인 돌봄을 지역사회에서 통합 지원하겠다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돌봄통합법)’ 역시 제정 2년 만에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법이 통과됐다는 사실만으로 충분치 않다. 비대면진료는 민간 플랫폼 중심 구조가 고착될 위험과 함께 공공성·접근성·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돌봄통합법 역시 전국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예산·인력·지자체 준비가 부족해 시작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쏟아진다.
의료 인력 감소, 지역 격차, 초고령사회로의 진입 등을 감안할 때 의료와 돌봄 서비스의 ‘연결’과 ‘확장’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하지만 제도 설계와 현장 조건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지 못한 채 속도전으로 추진될 경우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 만큼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의 신중한 접근과 단계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간 플랫폼 중심 제도화...공공성·환자 안전은 뒷전?
코로나19 시기 한시 허용된 비대면진료는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 의료법 개정을 통해 상시 제도화의 길로 들어섰다. 복지부는 15년 만의 의료법 개정이라는 성과를 강조하며 “대면진료를 원칙으로 하되 접근성 보완 수단으로 비대면진료를 제도권 안에 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비대면진료 시장이 민간 플랫폼 중심으로 법제화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플랫폼 수익 중심 운영 방식이 과잉 진료와 처방을 유도할 수 있고 민간 플랫폼에 의료데이터가 쌓이면서 개인정보 유출 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쟁점을 감안해 시민사회와 전문가들은 공공성을 갖춘 비대면진료 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부와 여당은 논란이 커진 뒤에야 공공 앱 구축 방침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플랫폼을 기본 틀로 놓고 규제와 역할을 사후적으로 덧입히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정책의 출발점이 거꾸로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비대면진료가 ‘지역 필수의료 강화’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정부는 비대면진료를 지역의료 공백 해소 수단으로 홍보했지만 의료계와 전문가들은 “플랫폼 중심 활성화로는 지역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반문한다. 실제로 현재 설계는 대도시·모바일 친화적 계층의 편의를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필수의료 체계와 연동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고령층·취약계층에 대한 고려 역시 부족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비대면진료는 스마트폰·앱 사용 능력을 전제로 하지만 문자 송·수신 정도에 그치는 디지털 활용도가 ‘앱 가입→ 본인인증→ 영상통화→전자처방전 확인’까지 요구하는 비대면진료와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는 명확하다. 디지털 격차 해소 없이 비대면진료를 확대할 경우 의료 접근성을 확대하는 정책이 아니라 거꾸로 취약계층을 소외시키는 정책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박민숙 부위원장은 비대면진료 정책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5년간의 원격의료 시범사업에 대해 정부가 한 번도 엄정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며 “시행 이전에 효과·부작용·안전성에 대한 면밀한 시범사업 평가서와 보고서 공개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부위원장은 “원격의료가 그 자체로 의료 민영화”라는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이미 법 통과·국무회의 의결로 시행이 예정된 상황에서는 민간 영리 플랫폼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공공 플랫폼 구축이 핵심 대안”이라고 제시했다.
법 마련했지만...無 예산·無 인력·無 인지도
복지부는 돌봄통합법을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하며 제정 2년 만인 올해 3월 27일부터 전국 시행에 들어간다고 자신 있게 밝혔다. 정 장관은 지난해 12월 9일 시행령과 시행규칙 제정안을 공포하며 “그간 시범사업으로 추진돼 온 경험을 바탕으로 통합돌봄을 전국에서 시행하기 위한 기틀이 갖춰졌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기틀이 갖춰졌다’는 복지부의 판단과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돌봄 관련 단체들 사이에선 돌봄통합법 첫해 예산으로 확정된 914억원은 ‘국정과제’라는 위상과 비교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거세다. 시범사업 당시에는 노인 중심 사업에만 지자체당 5억4000만원씩 지원 받았지만 노인·장애인 통합 돌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첫해에 지자체당 평균 사업비가 2억7000만원~9000만원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재정자립도가 높다는 이유로 46개 지자체를 예산 지원에서 제외한 결정은 통합돌봄을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제도’가 아닌 ‘역량 있는 지자체만 알아서 하라’는 방향으로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지자체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정부는 통합돌봄 전담 인력 2400명의 인건비를 6개월간 한시 지원하기로 했지만 현장에서는 최소 3인 체계(복지팀장·사회복지직·간호직)를 유지하기 위해 3250명이 필요하다며 850명 증원을 요구했음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통합돌봄을 상시 업무로 끌어안아야 하는 지자체와 현장 공무원의 부담만 가중된 셈이다.
지자체 간 준비 수준의 격차 역시 문제다. 지난 8일 공개된 복지부 자체 중간 점검에서 전국 229개 시·군·구 중 실제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을 정도로 준비가 된 곳은 137곳(59.8%)에 불과했다. 10곳 중 4곳은 법 시행 이후에도 바로 통합돌봄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복지부는 “조례·조직·인력·인프라 등 핵심 지표를 계속 점검하고 준비가 미흡한 시군구는 현장 점검과 개선계획 협의를 병행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자체 간 격차가 고착될 가능성은 매우 크다.
국민 인지도와 홍보 부족 문제도 그대로다. 정 장관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여러 기관들이 집행하고 있는 다양한 정책과 제도를 국민들이 잘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적극 안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단법인 ‘돌봄과 미래’에서 집계한 ‘지역사회돌봄 정책 수요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 인식 조사’에 따르면 노인·장애인 돌봄에 대한 관심도는 응답자의 80%를 넘지만 돌봄통합법 시행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절반 이상(54%)이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건강돌봄시민행동 김원일 운영위원은 “지금처럼 지자체에 소규모 예산만 나눠주는 방식으로는 통합돌봄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며 “국가가 공공 인프라와 서비스 제공 인력, 조정체계를 직접 구축하고 보건의료·장기요양·일상돌봄을 연계하는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서울대학교 보건행정학과 이주열 교수는 복지부가 당면한 과제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안들을 제시했다. 그는 우선 응급실 뺑뺑이의 근본 해법으로 “각 병원 응급실이 응급의학 전문의를 포함한 필수 의료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이어 “응급실은 응급환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질환 중증도에 따른 이용 기준을 명확히 하고 기준 미달 환자가 응급실을 이용할 경우 비급여로 본인부담을 현재의 3~4배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모든 119 구급차에 AI(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장비를 도입해 실시간으로 병원 상황을 파악·연결하는 현대화된 이송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도 말했다.
필수·지역의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인력 확보 방안과 지역 의료기관에 대한 다양한 인센티브 제공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필수·지역의료기관에 강력한 가산수가제를 도입해 의료기관이 해당 분야에 참여할 유인을 확보해야 한다”며 “상급종합병원과 지방의료원·보건소 간 연계 진료체계를 구축하고 수련의가 6개월에서 1년간 지방의료원·보건소·보건지소에서 의무적으로 진료를 수행하는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제안했다.
비대면진료를 두고는 “현재는 제한된 진료권 내에서 운영되고 있어 만성질환자의 사례처럼 향후 일정 부분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통합돌봄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조건으로 “유관 기관과 단체를 통합전산플랫폼을 통해 연계하고 공공과 민간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통합지원 전담조직이 조율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행정력만으로는 서비스 대상자를 발굴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기술·조직·현장 네트워크를 결합한 방식으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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