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자율주행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뀐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자율주행 실증 도시 추진 방안은 사실상 기존의 기술 개발 방식을 전면 수정하는 대전환 선언에 가깝다. 테슬라와 웨이모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주도하는 E2E(End-to-End) 인공지능 방식을 국가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도입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이번 대책의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살펴본다.
정부는 지난 22일 미래 모빌리티 실현을 위한 '자율주행 실증 도시 추진 방안'을 발표하며 기존의 소규모 구역 단위 실증에서 벗어나 도시 전체를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대전환을 예고했다. 이번 방안은 미국과 중국 등 선도국과의 기술 격차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이 겪고 있는 데이터 부족과 고비용 인프라 문제를 해결하는 데 방점을 두었다. 현재 한국의 자율주행 누적 실증 거리는 약 1,306만km로 미국 웨이모(1.6억km), 중국 바이두(1억km)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으며, 기술 경쟁력 또한 열세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간 국내 자율주행 기술 개발은 개발자가 미리 규칙을 설정하는 룰 기반(Rule-Based)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반면 글로벌 시장은 AI가 인지부터 제어까지 통합 처리하는 E2E(End-to-End) 방식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E2E 방식은 대규모 데이터를 학습하여 복잡하고 예외적인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지만,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GPU와 방대한 주행 데이터가 필수적이다. 국내 스타트업과 중소기업들은 자본력의 한계로 인해 이러한 인프라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가 제작한 이미지.
이에 정부는 광주광역시를 첫 번째 실증 도시로 선정하고 2026년 4월부터 도시 전역을 시범운행지구로 지정하기로 했다. 광주는 인구 130만 명 이상의 대도시이면서 도농 복합적인 특성을 갖춰 다양한 도로 환경에서의 데이터를 확보하기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 지정으로 기존에 실증이 제한되었던 스쿨존(어린이 보호구역)이나 노인 보호구역 등에서도 규제 특례를 통해 자유로운 주행 테스트가 가능해진다. 특히 운전자가 탑승하지 않는 완전 무인 실증까지 허용하는 자율주행 샌드박스를 운영하여 기업들이 기술적 난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다.
실증에 참여하는 기업에는 자율주행에 최적화된 전용 차량(SDV) 200여 대가 제공된다. 기존에는 기업들이 일반 완성차를 역설계하여 센서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개조해왔으나, 이는 비용이 많이 들고 시스템 안정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제공하는 전용 차량은 고성능 중앙 컴퓨터와 통신 이중화 구조를 갖춰 안전성을 높였으며, 기업은 이 차량을 활용해 데이터 수집과 기술 고도화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데이터 학습을 위한 핵심 인프라인 AI 학습센터도 구축된다. 광주 국가 AI 데이터센터와 연계하여 E2E AI 모델 학습에 필요한 고성능 GPU(H100 등)를 기업에 지원하고, 가상 환경에서 주행 시나리오를 검증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도 제공한다. 실증 과정에서 수집된 방대한 영상과 센서 데이터는 표준화된 파이프라인을 통해 자동으로 가공되어 기업들이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는 플랫폼 형태로 운영될 예정이다.
단순 자료 사진.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단계별 실증 절차도 마련했다. 1단계는 시험 운전자가 운전석에 탑승하고, 2단계는 조수석에 탑승하며, 최종 3단계에서 완전 무인 주행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사고 발생 시 기업의 배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증 도시 전용 보험상품도 개발된다. 이는 자동차 보험과 배상책임 보험을 결합한 형태로, 사고 원인에 따라 제조물 책임이나 AI 결함 등을 따져 보험 처리를 지원하는 구조다.
국토부는 2026년 2월 참여 기업 공모를 시작으로 4월부터 본격적인 실증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후 2027년 상반기에는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무상으로 운영하며 기술 상용화 가능성을 최종 검증한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번 실증 도시 추진이 단순한 테스트를 넘어, 한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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