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3일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해찬 당 상임고문을 부축해 국회에서 열린 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 입장하고 있다. / 뉴스1
25일 타국에서 73세로 별세한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추진력과 소신이 강하다는 평가와 함께 독선적이고 불통이라는 비판도 동시에 따라붙었다. 그의 보수 진영과의 거친 충돌사는 최근 정치권의 강대강 대치 국면과 맞물리며 다시 조명되는 분위기다.
진보 세력의 '장기 집권' 구상을 둘러싼 그의 발언들은 여야 갈등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9년 2월,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고인은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당 '40·50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21대 총선에서 압승 거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2022년 대선에서 재집권함으로써 앞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을 전개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앞서 2018년 8월 당대표 경선에서 '20년 집권론'을 내걸었고, 같은 해 9월 민주당 창당 63주년 기념식에서는 "앞으로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며 '50년 집권론'을 꺼냈다. 이어 며칠 뒤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는 '죽을 때까지 정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파장을 키웠다.
'100년 집권론'은 이 같은 집념의 확장판으로 받아들여졌고, 그는 "조선 정조(正祖) 대왕이 1800년 돌아가신 이래 220여 년 동안 민주·개혁 정권이 집권한 건 DJ(김대중) 5년, 노무현 5년, 문재인 5년 등 15년밖에 없다"는 논리로 장기 집권 염원을 정당화하곤 했다.
야권에서는"(아예) 1000년이라고 하지, 왜 100년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 같은 비꼬는 반응이 나오는 등 불편한 기색이 공개적으로 표출됐다.
이후 9개월쯤 지나 장기 집권론을 둘러싼 대립은 정점을 찍었다.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 김재원 의원은 2019년 11월 9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열린 '좌파독재 공수처법 저지 및 국회의원 정수 축소 촉구 결의대회'에서 자신과 택시 기사와의 대화를 소개하며 이 수석부회장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이해찬 대표가 '20년 집권한다, 50년 집권한다'더니 이제는 '나 죽기 전에는 정권 뺏기지 않겠다'고 하더라"며 "그 말을 듣고 너무 충격받아서 택시 기사에게 이 대표 발언을 전했다"고 했다.
이어 "택시 기사는 '그럼 이해찬이 2년 안에 죽는다는 말 아닌가? 놔두면 (한국당 대표인)황교안이 대통령 되겠네요'라고 하더라"며 "가만히 생각하니까 그 말이 그 말이더라. 택시비 10만원 주고 내렸다"고 했다.
민주당이 "여당 대표에게 저주에 가까운 막말"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자 김 의원은 "이해찬 대표의 의지에 택시 기사가 반감으로 한 말을 우스갯소리로 소개한 것"이라고 해명하면서도 사과는 하지 않았다.
고인은 국무총리 시절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야당 의원들과 거침없는 설전을 마다하지 않아 '버럭 해찬' '호통 총리'로 이름을 날렸다.
2004년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안택수 의원의 질문 공세에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고 받아친 것이 한 예다. 이 같은 답변에 안 의원이 사퇴를 요구하자 이 수석부의장은 "내가 안 의원의 주장에 거취를 결정할 사람은 아니다"고 응수했다.
2006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여당 당원인데 공정한 선거 관리가 되겠느냐"고 묻자, 그는 "홍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지만, 저는 5번의 선거에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맞섰다.
7선 의원 출신으로 민주당 대표 및 총리까지 지낸 당내 대표 원로인 고인은 작년 10월 장관급인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됐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사회학과에 입학해 1972년 10월 유신을 계기로 학생운동에 투신한 1세대 운동권이다. ‘운동권 대부’로서 진보 진영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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