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적용을 확대하겠습니다."
이재명 정부 국정과제와 사업계획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다. 사각지대인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에 노동법 적용을 확대한다니, 일단은 환영하고 볼 일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팩트체크 없이 덮어놓고 지지해선 안 된다. 먼저 이 궁금증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자.
"그럼 지금까지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은 산안법 적용이 아예 배제되었나요?"
아니다. 2020년에 이뤄진 산안법 전부개정(이른바 '김용균법')으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에도 법 적용의 길이 열렸다. 다만 이들이 산안법 보호범주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2가지 허들을 넘어야만 한다.
객관적 기준도 없이 14개 업종만 보호
우선 대통령령(산안법 시행령)에 명시된 업종에 포함되어야 한다. 2020년에는 총 9개의 업종이 명시되었는데 조금씩 확대되어 이제는 14개 업종으로 늘어난 상태다. 어떤 업종일까? 열거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보험모집인, 건설기계조종사, 방문강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택배기사, 퀵서비스기사, 대출모집인, 신용카드회원 모집인, 대리운전기사, 방문판매원, 대여제품 방문점검원, 가전제품 설치수리기사, 화물차주, 소프트웨어기술자
도대체 이들 업종이 선정된 기준은 무엇일까? 알 수가 없다. 당연히 객관적인 설명도 없다. 웹툰작가를 비롯한 문화예술 노동자는 모두 배제된다. '보호의 필요성'이 기준이라면 도로 위를 누비다 맨홀에 빠지기도 하는 보험사 사고조사원이 빠진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학습지 교사라 해서 모두 보호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산안법에 명시된 업종은 '방문 강사'이기에 가가호호 방문을 하는 교사는 포함되지만, 인터넷 교사는 보호대상에서 제외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구분법 아닌가.
대리기사 28만명 중 20명만 적용되는 산안법
둘째, 시행령에 명시된 14개 업종에 속해 있다 해도 '전속성 기준'이라는 구시대적 조건을 통과해야 한다. 이를테면 배달의민족·쿠팡이츠 2개의 앱을 이용하는 라이더는 산안법의 단 1개의 조항도 적용되지 않는다. 오직 하나의 사용자에게만 '전속'될 것을 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N-잡러 시대에 참으로 어이없는 조건 아닌가.
그래서 윤석열 정부에서도 산재보험법에 있던 전속성 기준을 폐지한 바 있다. 구시대적 기준이 사라지자 2023년 7월에만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65만 명의 산재보험 가입자가 늘어났다. 가장 인상적인 증가폭을 보여준 것은 대리운전기사였는데, 2023년 6월에 고작 20명에 불과했던 산재보험 가입자가 전속성 기준이 폐지된 직후 무려 28만 명으로 폭증했다.
통상적으로 3~4개의 앱을 이용하는 대리기사의 경우 오직 하나의 앱만 사용하는 '전속 대리기사'가 오히려 찾기 힘든 고용형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안법에는 여전히 구시대적 전속성 기준이 남아 있다. 다시말해 산안법 보호대상은 대리기사 28만 명 중 고작 20명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
바늘구멍 통과해도 선언적 조항만 적용
그럼 14개 업종과 전속성 기준이라는 2개의 허들을 통과한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에겐 산안법이 모두 적용될까? 천만의 말씀! 바늘구멍을 통과해도 적용되는 조항은 산안법 제5조와 6조, 77조와 78조 뿐이다. (아래 표 참조) 그나마 78조는 배달업 관련 특례조항이라 다른 업종에는 해당사항이 없고 오직 배달 라이더와 사업주에만 적용되는 조항이다.
그렇다면 그 조항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제5조는 사업주의 의무, 제6조는 근로자의 의무를 포괄적으로 담은 규정이다. 구체적인 권리나 의무를 규정했다기보다 "국가의 산업재해 예방정책을 따라야 한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기준을 지켜야 하며" 등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이라 할 수 있다.
특수고용·플랫폼 관련 조항인 77조 역시 마찬가지다. "안전 및 보건에 관한 교육 실시" 정도의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의무만 부과하고 있다. 물론 "산재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는데, 여기서 필요한 조치는 각 업종별로 시행규칙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시행규칙에 명시된 내용은 정말 보잘 것이 없다. 예를 들어 대리운전기사의 경우 폭언·폭행에 대한 매뉴얼만 제공하면 끝이다. 똥짐 지느라 질환에 노출되어 있는 배달 라이더인데 근골격계 예방조치조차 빠져 있다. 이런 보잘 것 없는 조치 몇 개만 하면 사업주는 산안법상 모든 의무와 책임을 벗게 된다.
제1조 목적에선 거대한 '선언'을
2020년에 이뤄진 산안법 전부개정은 사실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독특하게도 법의 제1조 '목적' 조항을 바꾼 것이다. 종전에 '근로자의 안전 및 보건'이라고 명시된 부분을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으로 개정해 굉장히 포괄적인 보호대상을 설정한 것이다. (아래 표 참조)
법의 목적까지 바꾸며 보호대상을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확대하겠다는 선언이 이뤄졌지만,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에게 실질적 권리는 '그림의 떡'에 불과했다. 선언적·추상적 조항 말고 정말 필요한 조항들은 따로 있는데 말이다.
주로 취객을 상대하는 대리운전기사인데 감정노동자 건강장해 예방조치(산안법 제4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 "가정교육이 안 되어 있다"는 고객의 폭언에 노출되어 있는 배달 라이더도 마찬가지다. 위험 노출도는 높은데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조차 작업을 중지할 권리(산안법 제52조) 역시 해당사항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산안법의 보호범주에 포함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얼마전 대전에서 취객의 폭행에 대리기사가 참혹한 죽음을 당했는데도 노동부는 '산안법 위반 없음'이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던가. (☞관련기사 : 차에 매달려 끌려가다 대리기사가 숨졌는데 산안법 대상 아니라는 노동부)
미리 보는 일하는사람법의 미래
산안법 보호대상을 기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확장하겠다는 웅대한 '선언'을 1조에서 했지만, 정작 적용된 조항은 꼴랑 4개 뿐이며 그 조항 모두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내용만 담고 있다.
그나마도 적용받기 위해서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듯 14개 업종과 전속성 기준이라는 허들을 통과해야 한다. 그 결과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 누구 하나도 자신들이 산안법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효능감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이게 바로 '일하는사람기본법'이 보여줄 미래이다. 법 조항들만 보면 좋은 말만 모아놓았지만, 아무런 실효성도 강제성도 없는 선언적·추상적 문구들뿐이다. 이런 법이 만들어진다 한들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 그 누구도 뭔가 권리를 얻었다는 효능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주목할 대목 - 5조·6조를 적용한 방식
하지만 재미있는 대목이 있다. 앞서 언급한 조항 중 산안법 5조와 6조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적용되는 걸까? 사실을 말하자면, 실제 법 조항 원문에는 그 단어가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읽히도록 하기 위해 인용할 때 생략했던 건데, 생략한 부분은 무엇이었을까?
제5조와 6조에서 '사용자'에는 "제77조에 따른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부터 노무를 제공받는 자와 제78조에 따른 물건의 수거·배달 등을 중개하는 자를 포함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으며, '근로자'에는 "제77조에 따른 특수형태근로종사자와 제78조에 따른 물건의 수거·배달 등을 하는 사람을 포함한다"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다시말해 산안법 제5조와 6조에서만큼은 '근로자'와 '사업주' 개념을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과 '노무를 제공받는 사람'까지로 넓혀준 것이다. 비록 추상적·선언적 내용이라 할지라도 이 조항이 적용될 수 있었던 방식은 '근로자(노동자) 개념 확장'이었다는 점이다.
개념 확장 : 권리 보장의 가장 쉬운 방법
우산 그림으로 비를 막을 수 없듯이, 선언으로 권리가 확대되지 않는다. 구급상자가 필요해서 열어봤더니 "건강 조심하세요"라는 응원문구 뿐이라면 무슨 효능감이 있을까? 산안법은 5년 전에 이미 '선언'을 했지만, 5년 동안 구체적 권리가 단 하나도 확대되지 않았다. 일하는사람기본법으로 백번 천번 '선언'을 해봐야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진짜 필요한 것은 '적용 확대'라는 구호가 아니라, 근로자(노동자)와 사업주(사용자) 개념 자체를 현실에 맞게 확장해 실질적인 권리(작업중지권, 감정노동 보호 등)가 전부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흥미롭게도 산안법은 이미 제5·6조에서만큼은 그 힌트를 보여주고 있다.
일하는사람기본법이 아니라 주요 노동관계법과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노동자) 개념을 확장하고 사업주(사용자) 개념을 확장하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최저임금법, 남녀고용평등법은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 산재보험·고용보험이 사업장 단위 가입과 행정이 가능했듯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역시 가능하며 그 방법 역시 근로자·사용자 개념 확장으로 충분하다.
이제 남은 선택지는 분명하다. 산안법 제5조와 6조 같은 추상적 조항 몇 개에 가둘 것인가, 아니면 산안법 전반으로 확장해 우산 그림이 아니라 진짜 우산을 쥐어 줄 것인가. 위험 앞에서 멈출 권한과 책임을 지게 만드는 의무가 실제로 생겼는가. 이런 질문에 제대로 답하는 해법이 아니라면 또 하나의 '전시용 권리'로 끝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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