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32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58년 외무부(현 외교부)에 입부했다.
그는 입부 직후 주미 대사관과 주일 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외무부 동북아과장, 외무부 아주국 심의관, 외무부 아주국장을 지냈다. 이어 1990년 초대 소련 대사로 부임했다. 1992년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 및 남북고위급회담 대변인을 맡은 뒤 1993~1994년 주일 대사를 역임했다. 이어 김영삼정권 시절인 1994~1996년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고인은 대일 외교와 대중 외교, 대러 외교 모두 전문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1983년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당시 외무부 정무차관보로서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를 맡았는데, 한국이 중국 당국과 정부 간 협상을 벌인 건 1949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 사건이 한중 수교의 밑거름으로 작용했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퇴임 후에는 한일포럼 회장,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세종재단 이사장, 동서대 국제관계학부 석좌교수, 국립외교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는 고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로명 세미나실’도 있다. 지난 2024년 휠체어를 타고 이 세미나실을 찾아 후배들에게 외교관으로서의 올바른 삶을 당부하기도 했다.
빈소는 연세대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이며 27일부터 조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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