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3대 신평사들의 행보는 제각각이다. 전담 조직을 꾸려 플랫폼 구축에 나선 선두 주자가 있는가 하면, 기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며 신중을 기하는 곳도 있다.
신뢰와 보안이 생명인 신용평가업의 특성상, AI 도입은 단순한 기술을 넘어 평가 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실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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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평, 업계 최초 TFT…AI 전환 가속화
국내 3대 신평사 중 AI 전환에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한국신용평가다. 한신평은 최근 업계 최초로 AI 전담 TFT를 구성하고, 단순한 업무 보조를 넘어선 전용 AI 플랫폼 구축에 착수했다. AI 기반의 다양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도입을 통해 투자자 접점을 다각화하겠다는 목표다.
한신평의 핵심 전략은 폭넓은 네트워크를 활용한 글로벌 스탠다드의 이식이다. 대주주인 무디스(Moody’s)와 동일한 수준의 AI 코파일럿 접근 권한을 확보함으로써, 방대한 내부 데이터 분석과 리포트 초안 작성 등에 AI를 전면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기존에 사람이 수동으로 수행하던 데이터 추출 및 비교 분석 과정은 AI를 통해 보다 정교해질 전망이다. 평가위원들은 보다 심도 있는 정성적 판단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 과정에서 한신평은 정보 보안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고 있다. 평가 부문과 영업 부문을 분리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발행사의 미공개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다. AI 도입이 자칫 신용평가업의 근간인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한기평·나신평, 데이터 제작·업무 보조 활용
한국기업평가와 NICE신용평가는 AI에 있어선 아직 초기 단계의 실험적 접근을 이어가고 있다. 한기평은 AI를 활용해 정보 전달 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다. 최근 텍스트 중심의 딱딱한 평가 보고서를 AI를 이용해 숏폼 영상으로 제작,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배포하고 있다. 복잡한 신용 등급 변동 사유나 산업 전망을 시각화된 영상으로 제공함으로써 기관 투자자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과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나신평은 실무 현장의 불편함을 줄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수십 장에 달하는 평가보고서 작성 시 필수적인 표와 그래프를 AI가 자동으로 생성해 주는 도구를 도입했다. 데이터 입력 오류를 줄이고 작성 시간을 단축하는 등 기초적인 업무 보조 수준이지만, 현장 실무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양사 모두 핵심적인 등급 산정 로직이나 리서치 영역에 AI를 전면 도입하는 데엔 신중한 모습이다. 신용평가는 고도의 전문적 판단이 개입되는 영역이어서다. AI가 산출한 결과물의 논리적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에 대한 내부적인 합의도 필요하다. 글로벌 신평사인 무디스와 S&P가 수년전부터 수천억원을 들여 인프라를 구축한 것과 달리 국내 신평사들은 시장 규모의 한계와 보안 이슈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평사들 모두 AI 도입의 필요성에는 100% 공감하고 있다”며 “다만 한신평처럼 글로벌 인프라를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곳과, 자체적인 로직을 새로 구축해야 하는 곳 사이의 속도 차이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평 패러다임 변화…AI가 가져올 미래는
금융투자업계에선 AI가 신용평가사의 핵심 경쟁력을 가르는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에는 누가 더 많은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느냐가 중요했다면, 앞으론 AI를 통해 ESG, 얼터너티브 등 비재무적 데이터까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지가 신평사들의 경쟁력으로 부각될 거란 전망이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선 AI가 리서치 보고서의 초안을 쓰고, 거시 경제 변수를 실시간 시뮬레이션해 신용 위험을 예측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국내 신평사들 역시 실험 단계를 넘어 실무 전반에 AI를 녹여내지 못한다면, 글로벌 신평사들과의 정보 격차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다만 AI 도입이 가속화된다면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AI가 보고서 초안을 작성하고 데이터를 분류하는 수준까지 올라오면, 결국 신평사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감축에 나설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AI가 로우 데이터를 정제하는 저부가가치 업무를 가져가고, 기존 인력은 전문 영역에 집중하게 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기대하는 시각도 있다.
국내 신평사 관계자는 “신용평가의 본질은 데이터 이면에 숨겨진 기업의 의도와 거시적 맥락을 짚어내는 정성적 판단”이라며 “인간과 AI가 담당하는 업무를 나눠 각각의 역할 고도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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