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머니 관리 부실하면 돈맥경화 초래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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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머니 관리 부실하면 돈맥경화 초래할 수 있어

이데일리 2026-01-26 05:45: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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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광열 사단법인온율 변호사·양지윤 기자] 치매머니가 한국 경제의 ‘조용한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이유는 치매환자들이 판단력 저하로 고령자의 자산 인출이나 처분이 사실상 막히면서 막대한 규모의 자금 흐름이 막히는 ‘돈맥경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연 200조원에 육박하는 이 자산을 방치할 경우 실물경제의 순환을 망가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매머니를 노린 범죄로 확산할 수 있어 조기 감지와 대응이 가능한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지난 19일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치매 머니 해결을 위한 범금융권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킥오프 회의를 여는 등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현재까 학계·언론의 논의 흐름과 발표를 종합하면 △임의후견제도 활성화 △성년후견제도 개혁 △고령자를 위한 신탁제도 개편 △치매공공신탁 도입 등이 치매머니 대응 방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래픽= 김일환 기자)


◇현실적이라는 성년후견제도 약점 투성이

성년후견제도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선임된 후견인을 통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자산 활용 과정에서 치매 환자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후견인이 법적 권한을 이용해 자산을 유용하더라도 외부에서 인지하거나 개입하기 어렵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치매 발병 이전 미리 후견인을 정하는 임의후견제도는 절차가 복잡하고 후견인과 후견 감독인을 따로 선임해야 하는 등 비용이 높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치매공공신탁은 국민연금공단이 수탁자, 광역치매센터가 상담자가 되어 자금을 관리하는 구조가 유력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고령 치매환자가 지정한 대리인이 수탁자에게 지급을 신청하고 해당 자금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수탁자가 형식적인 감독에 그칠 경우 자금의 실제 사용처를 확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민간 신탁도 사정은 비슷하다. 대부분의 금융기관 신탁계약은 ‘지급청구 대리인’을 통해 자금이 집행되지만, 수익자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를 외부에서 검증하기 어려운 구조다.

◇치매머니 선경험한 일본도 시행착오

한국보다 먼저 치매머니 문제를 맞닥뜨린 일본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일본은 2014년 후견인의 치매머니 부정행위가 831건, 피해액은 56억 7000만엔에 달했으며 이 중 98%가 친족 후견인에 의한 범죄였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2016년 ‘성년후견제도 이용촉진법’을 제정해 제3자 후견인을 선임하고, ‘후견제도 지원신탁’과 ‘후견제도 지원예금’ 등 재산권 남용을 방지하는 제도적 통제 수단을 확대했다.

이 역시도 궁극적인 해법이 되지 못했다. 후견인의 80%를 제3자로 바꿨지만 후견인의 재산관리 권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오히려 고령자들이 제도 이용을 꺼리는 부작용도 발생했다. 이에 일본은 치매 환자의 자기결정권 존중, 후견인 육성책 마련, 지역 연계 네트워크 강화 등 치매머니 약탈 방지에만 치우쳐 있던 데서 벗어나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서울 지하철 종로3가역에서 노인이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도신설 보다 기존 제도 실효성 높여야”

한국은 현재 성년후견인의 약 80%가 친족일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감독 체계는 거의 없다. 특히 가족의 일에 국가가 가급적 개입하지 않는다는 관행이 뿌리 깊게 남아 있어 약탈 범죄를 인지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여지조차 거의 없다.

이 같은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추가정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기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적 약탈 위기에 놓인 치매환자를 조기에 발굴·지원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노인복지관과 치매안심센터 등도 돌봄접점 기관이라는 점을 활용해 고령자 보호의 최전선에 나서야 한다.

수사기관은 고령자 대상 지능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수사 역량을 키워야 한다.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범죄는 외형상 합법을 띠는 경우가 많아 일반적인 수사로는 대응이 어렵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노인 대상 범죄에 대해 감시와 처벌을 별도로 규정한 연방법을 두고 있다. 일각에선 경찰이 풀뿌리 치안의 핵인 만큼 일선 지구대와 파출소 단위에서 치매 관련 범죄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하는 방향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마지막으로 노인보호전문기관은 요양시설 내 학대 감시 외에 지역사회 내 경제적 약탈 피해 고령자를 발굴하고, 개입·지원할 수 있도록 역할을 재편해야 한다. 요양시설 감독은 지자체나 건강보험공단에 이관하고, 기관 본연의 기능에 집중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제도를 덧붙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이다. 부정행위 예방과 실질적 감독·처벌이 가능하도록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는 것, 그것이야말로 치매머니를 지킬 수 있는 핵심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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