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말과 일의 설계자가 필요하다[리더의 소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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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말과 일의 설계자가 필요하다[리더의 소통법]

이데일리 2026-01-26 05:21:5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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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후 경영학 박사·비즈니스임팩트 파트너 교수]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서며 조직의 소통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메시지는 넘쳐나고 연락 수단은 스마트폰 하나로 충분해졌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하는 일의 진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연결은 늘었지만 일은 쌓이지 않는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소통 방식의 문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즉흥적으로 연락한다. 일이 터지면 그때 연락하고 생각이 떠오르면 메시지를 보낸다. AI는 조직 안으로 들어왔지만 소통의 기본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은 말솜씨의 문제가 아니다. 감각의 문제도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연락에는 질서가 필요하다. 그 질서를 정리한 것이 연락의 프로토콜이다. 누구에게 먼저 연락할지, 왜 연락하는지, 어떤 도구를 쓸지, 그리고 이 연락이 끝났을 때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를 사전에 정리하는 일이다. 이는 번거로운 절차가 아니다. 일을 줄이는 방식이다. 혼선을 줄이고 재작업을 막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매킨지에 따르면 조직의 소통과 협업 방식을 재설계했을 때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단순히 채팅을 더 빨리하거나 회의를 줄였기 때문이 아니다. 정보가 누구에게, 어떤 순서로, 어떤 형태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다시 설계했을 때 비로소 속도가 성과로 전환된다. 즉, 말의 양이 아니라 흐름의 질이 문제였다는 이야기다.

이 점은 현장에서도 확인된다. 영국의 의료 현장에서는 기존의 동기식 전화나 페이저 중심 소통을 구조화된 비동기 소통 방식으로 전환했다. 결과는 단순했다. 의료진이 더 바쁘게 움직인 것도, 더 오래 일한 것도 아니다. 연락의 방식과 순서가 바뀌자 업무 단위당 소요 시간이 크게 줄어 들었다. 도구를 바꾼 것이 아니라 연락의 프로토콜을 바꾼 결과였다. 조직의 시간은 이렇게 절약된다.

AI는 이미 많은 일을 대신한다. 정보를 정리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보고서 초안까지 만들어준다. 그러나 AI가 대신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어떤 정보를, 누구에게, 언제, 어떤 순서로 연결할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이 판단은 여전히 리더의 몫이다. 그래서 AI 시대일수록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 ‘소통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최근 AI의 진화 방향은 이 사실을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제 AI도 혼자 일하지 않는다. 크루AI와 같은 멀티에이전트 구조에서는 분석·생성·검증 역할을 맡은 여러 AI가 동시에 움직이지 않는다. 그 위에는 반드시 오케스트레이션 계층이 존재한다. 어떤 단계에서 어떤 AI를 투입할지, 순서는 어떻게 할지를 미리 정해주는 구조다. AI조차 프로토콜 없이 일하지 않는다.

연락의 프로토콜은 이 오케스트레이션의 출발점이다. 순서 없는 소통은 혼선을 만든다. 반대로 잘 설계된 연락은 말이 많지 않아도 일이 빠르게 움직인다.

이제 리더는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하는 사람이 아니다.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누가 무엇을 맡아야 하는지, 사람과 AI를 어떻게 연결해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사람이다. 목소리를 크게 내는 지휘자가 아니라 전체 흐름을 읽고 조율하는 오케스트레이터다. 이제 리더는 말의 양이 아니라 흐름의 질로 평가받는다.

문제는 많은 리더가 상황을 정리하기 전에 연락부터 한다는 점이다. ‘일단 해보자, 안 되면 바꾸자’는 식이다. 이는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개복부터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의사는 수술 전에 반드시 기록을 확인한다. 현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뒤 집도한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지금 상황이 무엇인지, 이 일의 정의가 무엇인지, 내가 맡은 역할은 어디까지인지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야 연락의 순서와 도구를 정한다.

또 하나의 함정은 기억력에 대한 과신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경험도 함께 사라진다. 머릿속에만 남겨둔 노하우는 다음에 쓰이지 않는다. AI 시대의 리더는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기는 사람’이다. 연락의 흐름, 쟁점, 판단의 기준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기록되지 않은 경험은 조직의 자산이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FILE’ 기록법이다. 먼저 반복되는 업무와 프로젝트를 담을 ‘프레임’(Frame·틀)을 짠다. 그 안에 이번 일에서 실제로 부딪친 ‘이슈’(Issue·논점)를 정리한다. 그리고 그 이슈를 통해 얻은 레슨(Lesson), 즉 교훈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그 경험을 다음에 재사용할 수 있도록 ‘익스피리언스’(Experience·경험)로 축적한다. 조직에서 경험은 저절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정리될 때 남는다.

기록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 전체를 통째로 남기려 하면 금방 포기하게 된다. 이슈 단위로, 사건 단위로 잘라 기록하면 충분하다. 누가 어떤 관점에서 충돌했는지, 그 충돌이 어떻게 정리됐는지만 남겨야 다음에는 길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반복되는 실수를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AI 시대의 리더십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아니다. 소통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즉흥적인 연락이 아니라 프로토콜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 리더가 오케스트레이터로서 사람과 AI, 판단과 실행을 연결할 때 조직의 결과는 달라진다. AI 시대의 리더는 뛰어난 설계 역량으로 말과 일을 잘 흐르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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