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민주화 50년, 한국 정치사의 산증인 눈 감다…'이재명 멘토' 이해찬 전 총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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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민주화 50년, 한국 정치사의 산증인 눈 감다…'이재명 멘토' 이해찬 전 총리 별세

폴리뉴스 2026-01-25 19:50:00 신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사진은 1990년 6월 당시 지낸 평화민주당 의원 시절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국회 본회의에서 대정부 질의를 펼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통하는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전 국무총리)이 25일 오후 2시 48분(현지시각) 베트남 호치민 떰아인 종합병원에서 별세했다.

유신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으로 두 차례 투옥됐고,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거쳐 집권 여당 대표까지 지낸 그는 한국 민주주의 반세기 역사의 산증인이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4개 민주당 정부 출범 과정마다 핵심 역할을 하며 '킹메이커'로 불렸다.

특히 이해찬 전 총리는 '이재명 멘토'다. 2022년 대선 당시 당내 비주류였던 이재명 후보를 경선 때부터 공개 지지하며 '대세론' 형성에 기여했고,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해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돼 이재명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조언자로 활동해왔다.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평통 아시아·태평양 지역회의 운영위원회 참석차 지난 22일 호치민에 도착했으나, 출국 전부터 몸살 기운을 호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23일 아침 건강 악화를 느낀 그는 긴급 귀국 절차를 밟았지만, 오후 1시쯤 떤선녓 공항에서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심정지가 발생했고, 심근경색 진단을 받은 그는 스텐트 시술과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고인의 별세 소식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고인을 애도했다. 여야 정당도 잇따라 추모와 애도의 메시지를 내고 고인을 추모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해 12월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 손잡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이재명 대통령과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지난해 12월2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서 손잡고 이동하고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이 대통령, 이해찬 위급 소식에 조정식 특보 베트남 급파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이 25일(현지시간)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치료 중인 베트남 호찌민 시내 병원에서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4일 이 수석부의장이 위급하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즉각 조정식 대통령 정무특보를 베트남 현지에 급파했다. 이해식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김현 국민소통위원장, 최민희·김태년 의원 등도 긴급 출국해 병상을 지켰다.

조정식 정무특보는 이날 출국길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공무 수행 중인 이 부의장이 위중한 상황이라는 소식을 보고받고 긴급하게 현지에 가게 됐다"며 "현재 건강 상태는 현지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한편,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위급한 상황에 대해 "국내로 이송하려면 에어 앰뷸런스가 필요한데 베트남에는 에어 앰뷸런스가 없는 상태"라며 "배우자와 이송 방법 등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으나, 결국 국내 이송조차 이뤄지지 못한 채 현지에서 운명했다.

민주평통은 "현재 유가족 및 관계기관과 함께 국내 운구 및 장례 절차를 논의 중"이라며 "세부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공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독재와 맞선 투사…옥중에서 꽃핀 민주화 의지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사진은 1988년 3월 31일 제13대 총선에 출마한 관악구 이해찬 후보의 유세. [사진=연합뉴스]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난 이 수석부의장은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처음 옥고를 치렀다. 1980년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10년형을 선고받아 교도소에 수감됐다. 재판정에서 그가 남긴 "이 목숨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발언은 군사독재 시대 저항 정신을 상징하는 명언으로 회자된다.

1982년 성탄절 특사로 석방된 뒤 재야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1987년 6월 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황실장을 맡아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서울대를 14년 만에 졸업한 그는 같은 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치에 입문,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민정당의 김종인을 꺾고 국회에 첫 발을 디뎠다.

'7전 7승' 선거의 제왕…전략가로서의 면모

이 전 총리의 진가는 선거 전략가로서 발휘됐다. 관악 을에서만 17대까지 5선을 기록한 뒤 2012년 세종시로 옮겨 2선을 더하며 통산 7선을 달성했다. 단 한 번도 낙선하지 않은 '선거의 제왕'이었다.

1995년 43세의 나이로 조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를 진두지휘해 승리를 이끌며 선거 전략가로 첫 각광을 받았고, 15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 선대본부 부본부장을 맡아 DJP 연합을 성공시키며 역사적 정권교체를 만들어냈다.

2002년엔 노무현 후보의 대권 도전을 권유하고 선거대책본부에서 초선 의원의 당선을 도왔으며, 2012년과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의 두 차례 대선 도전에서 '킹메이커' 역할을 했다. 2024년 22대 총선에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을 맡으며 마지막까지 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특히 2018년 당대표 시절 "민주 정부 20년 집권"을 공개 천명하며 장기집권 구상을 제시했고, 2020년 21대 총선에서 시스템 공천을 통해 180석 압승을 이끌어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한 이 총선 결과는 이듬해 이재명 대통령 당선의 발판이 됐다.

4개 정부 핵심 실세…'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사진은 1998년 10월 29일 당시 교육부 장관을 지낸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이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전문대학 학장 초청 오찬에 참석한 모습.왼쪽부터 이해찬 교육부 장관, 김대중 대통령, 정종택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사진=연합뉴스]

김대중 정부에서 46세의 젊은 나이로 초대 교육부 장관에 발탁된 그는 고교 평준화 확대, 학력고사 폐지 등 파격적 교육개혁을 주도했다. 당시 정책의 영향을 받은 학생들을 지칭하는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정도였다.

노무현 정부에선 2004년 두 번째 총리로 임명돼 '실세 총리'로 불렸다. 노 전 대통령보다 6살 아래임에도 회의실에서 '맞담배'를 피웠다는 일화는 양측의 각별한 신뢰를 상징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그를 "천생연분"이라 평했다.

총리 시절 행정수도 이전을 주도하고 세종특별자치시 건설을 진두지휘하는 등 헌정사상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 '책임 총리'로 평가받았다. 초선 시절엔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위에서 계엄군의 만행을 파헤치며 '면도날'이란 별명을 얻었고, 노무현·이상수 의원과 함께 '노동위 3총사'로 불리며 노동 입법에 매진했다.

문재인 정부에선 친노계 좌장으로서 대선 당선을 도왔고, 2018년 당대표로 선출돼 강력한 장악력으로 문재인 정부를 뒷받침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지난해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돼 대북·통일 정책 분야에서 조언자 역할을 기대받았다.

정치권에선 그를 '대통령 빼고 다 해본 사람'으로 불렀다. 7선 의원에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당대표까지 화려한 경력은 김종필이나 이회창에 비견될 만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사진은 지난 2025년 12월 2일 청와대가 제공한 제22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과 손잡고 행사장으로 향하는 이해찬 수석부의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 탄생'의 1등공신인 '이재명 멘토'인 이해찬 전 총리는 이재명 정부에서도 그의 영향력은 계속됐다. 2022년 대선에서 당시 당내 비주류였던 이재명 후보를 경선 때부터 사실상 공개 지지하며 '대세론' 형성에 기여했고, '사법리스크' '계파갈등' 등 각종 악재에도 언제나 이 대통령을 이끌어준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불렀다.

지난해 10월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된 것은 대북·통일 정책 분야에서 여전히 조언자로서 역할을 기대받았음을 보여준다. 당시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대북·통일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인선"이라고 설명하면서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겠다는 의지를 부각했다.

이른바 '이해찬계' 의원들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에도 선대위는 물론 핵심 포스트를 지키며 여전한 영향력을 입증했다. 이 대통령 역시 이 전 총리에 대한 '예우'에 힘을 쏟았다. 이번 베트남 출장 중 위급 상태에 빠지자 이 대통령이 조정식 특보를 급파하고 국가안보실을 중심으로 치료 지원을 지시했다.

'버럭 해찬'의 양날…직설 화법이 남긴 명암

직설적 화법과 원칙주의자로 유명했던 그는 총리 시절 대정부질문에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의원들과 격렬한 설전을 벌이며 '버럭 해찬'이란 별명을 얻었다. 이런 강경한 스타일은 지지층에겐 신뢰의 근거였지만, 반대 진영엔 협치보다 진영 논리를 앞세운다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6년 '3·1절 골프' 파문으로 총리직에서 불명예 퇴진했고, 2016년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공천 탈락 후 무소속 출마,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과정에서의 대표직 사퇴 등 정치 역정 곳곳에 파란도 있었다.

골초로도 유명했던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국무회의 후 종종 맞담배를 피우며 대화를 나눴다. 권양숙 여사의 잔소리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못하던 노 전 대통령이 이해찬이 회의실에 들어오면 몇 개비를 부탁해 함께 피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민주 진영 4개 정부 관통한 '영원한 전략가'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25일 베트남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고 민주평통이 밝혔다. 향년 73세.사진은 2012년 6월 9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시 민주통합당 새 대표로 당선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73년 유신 반대 투쟁부터 2026년까지 53년. 이해찬이 몸담았던 한국 정치는 군사독재를 청산하고 민주주의를 제도화했으며, 진보 정당이 네 차례 집권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으로 이어지는 4명의 민주당 출신 대통령 모두와 때론 킹메이커로, 때론 동지로, 때론 조언자로 깊은 관계를 맺었다.

이재명 대통령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 비통한 마음 금할 수 없어"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영면을 기원한다'며 추모의 글을 올렸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오늘 민주주의 역사의 큰 스승을 잃었다"며 "고인의 별세 소식에 비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애도했다. 

이어 "이해찬 수석부의장님은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 일생을 바쳤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던 청년의 기개는 국정의 중심에서 정교한 정책으로 승화되었다. 시대적 과제 앞에서 원칙과 소신을 굽히지 않으면서도, 안정과 개혁을 조화롭게 이끌어내는 탁월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고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이 대통령은 "특히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새로운 국가 비전을 제시하며 수도권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혁신적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했다. 

또한 "통일을 향한 확고한 신념으로 평화의 길을 모색하셨던 수석부의장님의 뜻을 되새겨 본다"며 "함께 이루고자 했던 꿈을 완성하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하는 아쉬움은 말로 다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물은 굽이쳐도 결국 바다로 흘러가듯, 그토록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와 평화통일, 그리고 대한민국 균형발전을 향한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남겨주신 귀한 정치적 유산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고 고인의 뜻을 기렸다. 

그러면서 "이제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시고 부디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해 유가족분들께 깊은 애도를 전한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정치권, 잇따른 추도 물결...靑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한평생 올곧은 길 걸어"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 페이스북

이 전 총리의 별세 소식에 정치권 전반에서 추도 메시지가 잇따랐다.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은 25일 SNS에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께서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베트남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다가 별세하셨다"며 "슬프고 비통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고 전했다.

홍 정무수석은 "대한민국이 어둠의 시기를 지날 때 가시밭길을 마다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횃불을 높이 드셨고, 경륜과 지혜의 정치인으로 끊임없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신 나침반과 같은 분이셨다"며 "저도 수석대변인으로 당 대표이셨던 총리님을 모시며 국민의 삶을 위한 정치,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오로지 공익을 추구하는 정치인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총리님께서는 마지막까지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으셨다"며 "우리 사회가 총리님의 삶에 큰 빚을 졌다"고 언급했다.

이어 "이제 우리가 그 뜻을 이어 계속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위한 길을 걸어갈 것"이라며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이해찬 전 총리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25일 서면브리핑을 통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반세기의 한 축을 이루어온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의 서거에 깊은 슬픔과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민주주의의 산증인이자 거목이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유신체제에 맞서 거리에서, 감옥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1987년 6월 항쟁의 중심에서 시민과 함께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역사적 전환을 이끌었다"며 "대한민국 민주정부 4번의 탄생 과정마다 역할이 있었다는 사실은, 민주주의 발전과 책임정치 구현에 얼마나 큰 발자취를 그려오셨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SNS를 통해 "이해찬 전 총리님께서 운명하셨다는 비보에 가슴이 무너진다"며 "평생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신 민주당 이해찬 상임고문님의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SNS에 "이해찬 총리님은 평생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지키기 위해 헌신하셨다"며 "감히 후원회장을 맡기도 하였지만, 늘 여쭙고 배웠다"고 회고했다. 조 대표는 "2019년 제가 독화살을 맞던 시간, 당신께서는 단호한 어조로 사태의 본질을 말씀하시며 흔들리지 말고 마음 굳게 먹으라고 당부하셨다"며 "꽉 잡아주시던 그 손을 잊지 못한다"고 추모했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이날 SNS를 통해 "이해찬 전 국무총리님의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대한민국 정치의 한 축을 책임지시며,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신 고인의 발자취를 국민과 함께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슬픔 속에 계실 유가족 분들께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SNS에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갑작스러운 별세 소식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7선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역임하시며 오랜 세월 대한민국 정치 현장에서 소임을 다하셨다"고 밝혔다.

[폴리뉴스 박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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