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을서 신인으로 金꺾고 파란…金 비대위 대표 때 '컷오프' 탈당
'친노좌장' 李, DJ계 朴과는 협력·견제…대선 문턱은 못 넘어
(서울=연합뉴스) 서혜림 기자 =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총선 '무패' 기록을 가진 여의도의 대표적인 '선거 승부사'로 정평이 나 있다.
시작은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이었다. 평화민주당 신인으로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승리,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5선을 했다.
그 뒤 2012년 19대 총선 때 세종시로 지역구를 옮겨 다시 승리한 뒤 이곳에서 재선하며 7전 전승 기록을 썼다.
하지만 대선으로 가는 문턱은 넘지 못했다.
2007년 17대 대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후보 경선에 출마해 정동영·손학규 후보와 겨뤘지만, 3위에 그치며 탈락했다.
정치 행로에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연으로 얽히고 설켰다.
13대 총선 당시 그는 관악을에서 여당인 민주정의당 후보로 3선에 도전한 김 전 위원장을 단 5천여표(4%포인트) 차이로 꺾었다. 그 뒤 김 전 위원장은 이 지역구엔 출마하지 않았다.
이들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다시 만났다. 김 전 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로 임명되면서다.
김 전 위원장은 공천 과정에서 '친노(친노무현)' 세력을 쳐냈고, 이때 컷오프(공천 배제)를 당한 대표적 인사가 이 수석부의장이었다. 그는 컷오프에 불복, 무소속으로 세종에 출마해 당선 후 복당했다.
이 수석부의장은 민주당 현역 원로인 박지원 의원과도 깊은 인연이 있다.
친노 좌장, DJ(김대중 대통령)계 핵심으로 각각 불린 두 사람은 민주 진영의 한 지붕 아래에서 협력했지만, 때론 서로를 견제하는 미묘한 관계였다.
김대중 정부 당시 두 사람은 교육부 장관(이 수석부의장), 청와대 공보수석(박 의원)으로 함께 일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때 단행한 '대북송금 특검'은 두 사람 사이의 오랜 앙금이 됐다.
그 뒤 20대 총선을 앞두고 박 의원이 민주당에서 탈당해 안철수 의원이 창당한 국민의당에 합류하면서 이들은 서로 다른 길을 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이 수석부의장이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박 의원이 국가정보원장으로 중용되면서 두 사람은 문 당시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위해 다시 '한 배'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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