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전영선 기자] 2026년 1월, 세계 금융시장에 전례 없는 '패닉 랠리'가 펼쳐지고 있다. 투자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은(Silver) 100달러, 금(Gold) 5,000달러' 장벽이 무너졌다. 1월 23일(현지시간) 국제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4,967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5,000달러 문턱에 다가섰고, 은 현물 가격은 103달러를 돌파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세 자릿수를 기록했다. 단순한 인플레이션 헤지나 자산 증식 차원이 아니다. 시장은 이번 급등을 '기존 화폐 시스템에 대한 신뢰 붕괴'를 알리는 경고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은 100달러 시대 개막… 산업 수요와 화폐 가치가 동시에 폭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은 시장에서 터져 나왔다. 국제 은 현물 가격은 1월 23일 장중 온스당 103.45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불과 1년 전 30달러 수준이던 은 가격이 240%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은의 이러한 '광속 질주'를 두고 산업적 수요와 화폐적 가치가 동시에 폭발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AI 데이터센터,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소재로서 은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구조적 '쇼티지(Shortage)'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려는 투기적 수요와 역사적인 '숏 스퀴즈(Short Squeeze)' 현상까지 겹치며 가격 폭등에 가속도가 붙었다. 특히 은은 금보다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시장의 불안감이 극에 달할 때 상승 폭이 더욱 가파르다. 현재의 은값 폭등은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공포의 크기가 2008년 금융위기 수준을 넘어섰음을 시사한다.
■ 금, 5,000달러 임박… 지정학적 리스크의 결정체
'왕의 금속'의 귀환은 더욱 압도적이다. 국제 금 현물 가격은 1월 23일 온스당 4,967달러를 돌파하며 5,000달러 시대를 예고했다. 지난 1년간 80% 이상 상승한 금값은 1971년 금 본위제 폐지 이후 역대급 연간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수급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번 랠리의 본질은 '지정학적 리스크의 복합화'다. 이란 핵 문제를 둘러싼 중동의 전운(戰雲),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 그리고 최근 불거진 '그린란드 사태'가 기폭제가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령 그린란드 매입을 강하게 압박하며 유럽 동맹국들에 관세 위협을 가했고, 이는 미-유럽 간 관계를 역대 최악 수준으로 악화시켰다. 과거에는 지정학적 위기가 발생하면 '달러'가 강세를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동맹국까지 압박하고, 연방정부 재정 적자가 38조 달러를 넘어서면서 '달러 역시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달러 약세와 지정학적 불안이 맞물리자, 갈 곳 잃은 자본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실물 자산인 금으로 도피하고 있다.
■ '탈(脫)달러' 가속화…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골드 러시
이러한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각국 중앙은행들이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1월 21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6년 말 금 가격 전망치를 기존 4,900달러에서 5,400달러로 10% 이상 상향 조정했다. 상향 조정의 핵심 근거로 '중앙은행과 민간 투자자의 금 매입 확대'를 꼽았다. 중국, 러시아를 비롯한 신흥국 중앙은행들은 미국의 금융 제재를 회피하고 달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외환보유고 내 달러 비중을 줄이고 금 보유량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PBoC)은 14개월 연속 금을 매입하며 2025년 한 해 동안 27톤을 추가, 금 보유량 2,306톤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골드만삭스는 2026년에도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월평균 60톤의 금을 매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국제 통화 질서가 다극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구조적인 변화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통화정책 불확실성마저 겹치며 '법정 화폐(Fiat Money)'에 대한 불신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 韓 금값 '1돈 100만 원' 육박… '금테크' 열풍 넘어선 생존 본능
국내 시장의 파장은 더욱 직접적이다. 삼성금거래소 기준 순금 1돈(3.75g) 매입 가격은 1월 20일 97만7,000원을 기록하며 100만 원 선에 바짝 다가섰다. 불과 1년 전 50만 원대였던 가격이 두 배 가까이 뛴 것이다. 국제 금값이 5,000달러를 돌파하고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유지할 경우, 국내 순금 1돈 가격은 100만 원을 넘어 부가가치세와 마진을 포함한 소비자 실구매가는 120만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국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패닉 바잉(Panic Buying)'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중은행의 골드뱅킹 잔액은 사상 처음 2조 원을 돌파했고, 금·은 ETF(상장지수펀드)로도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 과거에는 금 투자가 자산가들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소액 투자자들도 '현금을 들고 있으면 벼락거지가 된다'는 위기감 속에 금 통장을 개설하고 있다. 국내 은 시세도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한국금거래소 기준 은 1돈당 매입가는 1만6,000원대를 돌파, 한 달 전보다 40% 이상 급등했다. 연초 6,000원대 수준이던 은 가격이 2.5배 이상 뛴 셈이다.
■ 그린란드 사태… 미-유럽 균열이 불러온 '달러 불신'
이번 귀금속 랠리의 직접적 도화선은 '그린란드 사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덴마크령 자치지역인 그린란드의 '완전한 소유권'을 요구하며 덴마크를 포함한 유럽 8개국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군사력 사용 가능성까지 시사하며 NATO 동맹국을 상대로 전례 없는 압박을 가했다. 1월 21일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NATO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프레임워크 합의'를 발표하고 관세 위협을 철회했지만, 그 구체적 내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정부는 '주권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유럽 관계자들은 이번 합의가 '유럽을 분열시키려는 시도'라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시장은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를 읽었다. 투자자들은 달러 약세와 함께 유럽이 보유한 대규모 미국 자산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하며 안전자산으로의 도피를 가속화했다.
■ 비트코인 지고 다시 '실물'로… '성장'보다 '안전'의 시대
주목할 점은 '디지털 금'이라 불리던 비트코인과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다. 2020년대 초반 가상화폐 붐이 일었으나, 지정학적 위기가 현실화되고 전력 수급 문제 등이 겹치자 자금은 다시 '진짜 금'과 '은'으로 회귀하고 있다. 채권처럼 부도날 위험이 없고, 주식처럼 실적에 연동되지 않으며, 전기가 끊겨도 가치가 보존되는 실물 귀금속이 '최종 피난처(Ultimate Safe Haven)'로서의 지위를 재확인한 셈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6년 봄까지 금 가격이 6,000달러에 도달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 시장이 보내는 경고… "지금은 생존의 시대"
지금 시장이 보내는 신호는 명확하다. '지금은 성장보다 생존, 수익보다 안전의 시대'라는 것이다. 금값 5,000달러와 은값 100달러라는 숫자는 탐욕이 아닌 공포가 지배하는 2026년 세계 경제의 서늘한 자화상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급등 이후 조정 가능성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세계금협회(WGC)는 2026년 금 시장의 세 가지 시나리오로 '소폭 상승', '대폭 상승', '대폭 하락'을 제시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실행이 본격화되는 시점인 만큼 극단적 변동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인플레이션의 파도와 지정학적 태풍 속에서, 금과 은은 단순한 광물을 넘어 투자자들의 생존을 위한 '노아의 방주'가 되어가고 있다. 과연 이 방주가 2026년의 격랑(激浪)을 무사히 건너게 해줄 것인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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