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조선의 마지막 관요가 설치돼 130년간 운영되던 자리입니다.”
김경중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광주시 분원리의 분원초등학교 운동장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축구공을 차며 뛰어다니는 평범한 공간. 하지만 그 발밑 몇 미터 아래에는 조선 후기 왕실 백자를 굽던 가마터가 묻혀 있다. 2001~2002년 발굴조사가 이뤄진 이곳은 조선 왕실에 백자를 공급하던 마지막 관요(官窯) 터다. 지금은 다시 흙으로 덮여 아무 흔적도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는 여전히 수백 년 전 장인들의 손길이 남아 있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풍경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은 이들이 있다.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은 지난해 열린 ‘2025 국가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시상식에서 광주 조선백자 요지 연구로 학술·연구 부문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기관이 받을 수 있는 최고 영예다. 단순한 성과 인정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이어져 온 집요한 연구 여정에 대한 사회적 평가이기도 했다.
경기도는 우리나라 자기(磁器)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발전한 핵심 지역이다. 이 가운데 광주 지역은 조선 초부터 수준 높은 백자를 생산하던 곳으로 1467년경 왕실 전용 가마인 관요가 설치돼 왕실과 중앙 관청에서 사용할 그릇을 전문적으로 제작했다.
15세기 중반 사옹원 분원이 설치된 이후 19세기 말까지, 왕과 왕비, 왕세자와 왕실 가족이 쓰던 그릇은 대부분 이 지역에서 만들어졌다. 광주에서 만들어진 그릇은 배를 타고 한양 인근 마포 나루터 등으로 이동했다. 왕과 세자의 그릇이 다를 만큼 신분 질서가 엄격했던 사회에서, 왕실용 백자를 생산한다는 것은 단순한 공예 활동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의 일부를 담당했다는 의미였다. 특정 지역이 500년 이상 왕실 도자 생산을 전담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하지만 이런 사실은 오래도록 ‘기록’ 속에만 머물러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문헌에 관요자료가 부족해 관요의 정확한 위치, 운영 경로, 이동 과정은 오랫동안 추정의 영역에 놓여 있었다. 경기도자박물관의 연구는 이 공백을 메우는 작업이었다. 문헌이 아닌 ‘땅속의 증거’로 역사를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2001년 광주에 조선관요박물관(경기도자박물관 전신)이 설립되면서 관련 유적의 역사적 가치에 관한 보존과 연구가 본격화됐다.
퇴촌면 우산리 4호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세종, 세조 등 특정 인물과 연결되는 명문 유물이 발견되면서, 관요가 처음 설치된 위치를 두고 이어지던 논쟁에 종지부가 찍혔다. 김경중 학예연구사는 “기록이 사라진 시대를 유물이 대신 증언해준 순간”이라고 말했다. 추정이었던 것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송정동 5호 가마터, 현재의 광주시청 일대도 의미가 깊다. 시청사를 건립하기 이전에 실시된 문화재 조사에서 다수의 명문백자가 출토됐고, 이를 통해 이곳에서 생산된 백자가 남한산성 행궁에서 사용된 사실이 밝혀졌다. 생산지와 소비지가 명확히 연결된 드문 사례다. 도시의 정체성이 땅속 유물에서 비롯된 셈이다.
이 연구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 일’이다. 가마터는 대부분 지표 아래에 묻혀 있고, 출토되는 유물 또한 당시 기준으로 상품성이 없어 폐기된 파편들이 대부분이다. 연구자들에게 이 파편은 단순한 ‘깨진 그릇’이 아니다. 제작 시기, 형태 변화, 기술 수준, 생산 체계가 고스란히 담긴 중요한 단서다. 출토 유물에 새겨진 명문, 태토와 유악의 차이, 가마구조의 변화 등을 종합 분석해 관요의 이동 경로와 운영 시기를 복원해냈다.
여기에 과학기술이 더해졌다. 3D 스캔, 컴퓨터단층촬영(CT), 재료 분석 등을 통해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내부 구조와 제작 기법까지 확인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의미 없어 보이는 작은 조각이 과학 분석을 거치면 중요한 연구 자료로 다시 태어났다. 김 학예연구사는 “조각을 맞추는 일은 퍼즐을 푸는 것과 비슷하다”며 “하나의 답을 얻기까지 수많은 가설과 검증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현장을 함께 걷다 보면, 이 연구가 얼마나 ‘사람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지 실감하게 된다. 언덕 위 작업장 터, 그릇을 굽던 가마터, 잘못 만들어진 그릇을 버렸던 폐기장까지. 세 곳이 하나의 ‘가마터’라는 설명을 듣고 나면, 광주의 언덕과 들판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 평범해 보이던 지형 하나하나가 과거의 산업 공간으로 읽히기 시작한다.
경기도자박물관은 이러한 연구 성과를 발굴 유물 특별전, 학술세미나, 타 기관 전시 지원 등을 통해 시민들과 공유해왔다. 조선백자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를 통해 대중적으로 친숙해졌다면, 이 연구는 그 백자의 ‘출생지’를 복원해낸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전시장에서 감상하던 그릇들이 어디에서, 어떤 사람들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보여준 연구였다.
광주 조선백자 요지가 지닌 가치는 단순한 지역 유적의 복원이 아니다. 조선 왕실 문화의 실체, 국가 운영 체계의 일면, 장인들의 기술과 실험정신, 그리고 한 도시가 수백 년 동안 감당해온 역할이 함께 드러난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한국 도자의 뿌리가 경기도에 있고, 조선 왕실 백자의 정점이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은 지역 문화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김경중 학예연구사는 현재 연구 단계를 ‘걸음마’라고 표현했다. 가마터의 위치와 운영 시기, 생산 체계 등 기초 자료는 충분히 확보했지만, 이제는 그 백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 어떤 상징을 가졌는지, 그리고 이 연구를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할지가 남은 과제라는 것이다. “땅속 이야기를 어떻게 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꿀 것인가가 앞으로 가장 큰 숙제”라는 말에는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통령표창은 그 긴 여정에 대한 하나의 결실이다. 김 학예연구사는 이를 ‘완성’이 아니라 ‘출발’로 받아들이고 있다. 분원초등학교 운동장 아래 잠든 가마터처럼, 아직도 광주의 땅속에는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그 시간은, 우리 모두가 함께 읽어야 할 이야기로 확장되고 있다.
인터뷰 광주 조선백자 요지 연구 이끈 김경중 학예연구사
“땅속 유물 이야기… 고고학·인문학적 언어로 풀어낼 것”
“유물이 땅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기쁘기만 할 것 같죠. 그런데 실제로는 감동보다 ‘책임’이 먼저 옵니다. 이제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이 조각이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 끝까지 설명해내야 하니까요.”
광주 조선백자 요지 연구를 이끌어온 김경중 한국도자재단 경기도자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발굴 현장을 이렇게 기억했다. 조선 중기 관요 백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8년 이후 광주 지역 요지 조사를 사실상 전담해왔다. 이번 대통령표창 역시 개인이 아닌, 그가 속한 박물관이 20년 넘게 축적해온 성과에 대한 평가라고 말한다.
김 학예연구사가 특히 의미 있게 꼽는 사례는 도마리 1호에서 출토된 ‘德五(덕오)’·‘德七(덕칠)’명 백자편이다. “520년 전 장인들이 최고의 백자를 만들기 위해 안료를 시험하고, 조건을 바꿔가며 실험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장인들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만난 느낌이었죠.” 그는 이를 “조선 백자가 기술 집약적 결과물이라는 걸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설명했다.
그가 광주 조선백자 연구를 ‘걸음마 단계’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마터의 존재 여부, 운영 시기, 이동 경로 등은 고고학적 조사와 명문자기를 통해 상당 부분 규명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이 백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용됐는지, 어떤 상징성을 가졌는지, 그 맥락을 해석하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단순한 발굴을 넘어 인문학적 해석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김 학예연구사가 보는 경기도자박물관 연구의 특징은 ‘현장 기반’과 ‘과학 분석의 결합’이다. “출토 유물은 형태만 봐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3D 스캔, CT 촬영, 재료 분석 등을 통해 내부 구조와 제작 방식을 확인해야 비로소 학술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에게 발굴은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점이다.
대통령표창에 대해서도 그는 담담했다. “성과를 인정받은 것은 감사하지만, 저희에게는 ‘여기까지 했으니 이제 더 잘해보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습니다. 땅속 이야기를 어떻게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풀어낼 것인가. 연구는 학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와 연결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 땅속에서 출발한 조선 왕실 백자의 이야기가, 오늘의 일반 시민에게까지 닿을 수 있도록 현장과 사료를 넘나드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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