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에서 ‘신뢰(Trust)’는 보이지 않는 화폐다. 우리가 금(Gold)이나 달러를 의심 없이 거래하듯, 산업 현장에서 ‘KS(한국산업표준) 인증’은 품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이자 거래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인프라였다. 그러나 지금 이 견고했던 신뢰의 댐이 무너지고 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옛 격언처럼, 위조된 중국산 불량 자재가 정직한 국산 제품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역선택’의 징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25일 이재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충남 천안을)이 대표 발의한 ‘산업표준화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이러한 시장 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입법부의 응답이다. 이는 단순한 규제 강화가 아니다. 무너진 산업 생태계의 ‘게임의 규칙’을 다시 세우는 정치·경제적 결단이다.
산업적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KS 인증 시스템은 심각한 도덕적 해이에 노출돼 있다. 최근 적발된 사례들은 충격적이다. KS 인증을 받지 않은 업체가 저가 중국산 자재에 가짜 KS 인증을 부착해 아파트 건설 현장에 납품했다. 국가기술표준원의 시판품 조사 결과, 불량 제품 적발률은 2022년 29.8%에서 2023년 42.4%로 폭등했다. 2024년 26.2%로 다소 주춤했다지만, 여전히 유통 제품 4개 중 1개는 ‘불량’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짝퉁 KS’의 범람은 국내 제조업의 근간을 흔든다. 연구개발(R&D)과 품질 관리에 비용을 투입하는 정상 기업은, 불법 ‘라벨 갈이’ 업체와의 가격 경쟁에서 필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우량 기업의 도산과 산업 공동화로 이어진다.
정치·법률적 시각에서 현행법은 ‘이빨 빠진 호랑이’이다. 가장 큰 맹점은 기업이 ‘고의’로 불량 제품을 만들어도 인증을 즉시 취소할 법적 근거가 미비했다는 점이다. 고의적 분식회계는 자본시장에서 즉시 퇴출감이지만,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고의적 불량 자재 유통은 경징계에 그쳐왔다. 또한, ‘시판품 조사’ 요건이 까다로워 정부가 시장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도 선제적으로 개입하기 어려운 ‘행정의 사각지대’가 존재했다.
이 의원의 개정안은 이 두 가지 구멍을 정확히 메운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요청 또는 장관 직권으로 조사를 착수할 수 있도록 감시의 문턱을 낮추고 ▲고의로 규격 미달 제품을 생산·유통한 업체에 대해 KS 인증을 취소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조항을 신설했다. 이는 법률적으로 ‘무관용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경영적 해법은 간단하다. 불법 행위로 얻는 기대 수익보다 적발 시 치러야 할 비용을 압도적으로 높이면 된다. 그동안 솜방망이 처벌은 불량 기업들에게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잘못된 시그널을 줬다. 이번 개정안을 통해 ‘인증 취소’라는 강력한 페널티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품질 통제 프로세스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법이 유도하는 건전한 ‘시장 규율’이다.
KS 인증은 대한민국 산업이 지난 반세기 동안 쌓아 올린 ‘품질 주권’이다. 이 주권을 위조하고 훼손하는 행위는 단순한 상거래 위반이 아니라, 국민의 안전과 국가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매국(賣國) 행위와 다를 바 없다. 시장을 교란하는 불량 기업에게는 확실한 ‘엔드게임’을 보여줘야 할 때다.
이재관 의원은 “불법·불량 KS 제품으로 인해 성실한 KS 인증 기업은 물론 소비자들까지 피해를 입고 있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KS 인증 제도의 신뢰성을 높이고 , 관련 제도를 더욱 탄탄히 정비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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