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강세와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 가능성이 맞물리며 원·달러 환율의 단기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한·미 경제 성장률 격차라는 구조적 요인이 견고해 환율이 안심 국면에 진입했다고 보기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23일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1원 하락한 1465.8원을 기록했다. 지난 21일부터 사흘 연속 하락 마감이다.
이날 일본은행(BOJ)의 금리 동결 결정과 함께 미·일 당국이 ‘레이트 체크(Rate Check·요율 점검)’를 진행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레이트 체크는 외환당국이 실질 개입에 앞서 거래 수준을 점검하며 시장에 경고를 보내는 단계로 해석된다. 이에 엔화 가치가 급등했고, 원화 가치도 동반 강세를 보였다.
단기적으로는 환율을 끌어내리는 재료가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다. 오는 27~28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새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개최한다. 금리 동결이 유력한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예고한 차기 연준 의장 후보 발표에 쏠려 있다. 차기 의장 지명이 가시화될 경우 금리 인하 기대가 재부각되며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환율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국민연금은 오는 26일 올해 제1차 기금운용위원회를 열고 기금 운용 전략 전반을 점검할 예정이다. 통상 2~3월에 열리던 1차 회의를 결산 이전인 1월에 소집한 것은 2021년 이후 5년 만이다.
연초부터 기금위 회의가 열리는 것은 환율 상승 흐름 속에서 자산 배분과 환헤지 전략을 점검하려는 목적이 크다는 분석이다. 특히 국내 주식 비중 등 전체 투자 전략의 조정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기금운용위원회가 정한 2026년 말 기준 자산 배분 목표에서 국내 주식 비중은 14.4%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7.9%로 이미 목표치를 웃돌고 있다. 최근 코스피 상승 흐름을 감안하면 이탈 허용 범위 상단에 근접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지난해 말 국민연금 업무보고에서 주가 상승에 따른 수익을 언급하며 포트폴리오 조정 필요성을 시사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최근 국내 주가가 올라 국민연금의 고갈 시기가 미뤄지고, 국내 주식 보유 한도도 초과했다”며 “국민연금도 (국내 주식 배분 비중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기금위 논의 결과가 해외 투자 비중 축소로 이어질 경우 달러 순공급이 늘어나 환율에 추가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러한 요인에도 불구하고 환율을 둘러싼 중·장기 상방 압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보다 근본적인 배경으로 한·미 경제 성장률 모멘텀 격차를 지목한다. 경기 모멘텀의 차이가 자산 수익률 기대 격차로 이어지면서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와 기업의 투자 흐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미·일 공동 개입이 현실화될 경우 달러 약세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 있어 개입이 장기화되기는 쉽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미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한 사례는 1996년 이후 세 차례에 불과하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올해 경제성장률에 대한 시장 컨센서스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향 조정되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을 추세적으로 안정시키는 근본적인 동인은 단순한 금리차 개선이나 수급 조절이 아니라 벌어지는 한미 간 경제 성장률 격차를 얼마나 빨리 좁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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