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공급 대책이 거론될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이 있다. 지도 위에서 몇 곳이 지워지고, 남은 후보지 끝자락에 과천이라는 이름이 올라온다. 이유는 늘 비슷하다. 수도권에 가깝고, 국가 소유 부지가 있으며, 한 번 개발을 수용한 전례가 있다는 것. 그러나 이 편의적인 논리는 도시가 감당해야 할 한계나 시민의 삶은 고려하지 않는다. 정책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한 가장 쉬운 선택지로 과천이 소비되고 있을 뿐이다.
최근 불거진 한국마사회 이전 논의 역시 다르지 않다. 이전의 필요성과 타당성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기도 전에, 경마공원 부지 활용 방안으로 주택공급 시나리오가 먼저 흘러나왔다. 이는 검토가 아니라 예고에 가깝다. 정책 결정 과정이 투명했다면 나올 수 없는 순서다. 시민들이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고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천은 이미 여러 차례 국가 주도의 주택공급 정책을 감내해 왔다. 지식정보타운, 과천과천지구, 갈현지구, 주암지구까지 연속된 개발로 도시의 밀도는 급격히 높아졌다. 그러나 교통·교육·생활 인프라 확충은 늘 뒤따라왔다. 불편은 시민의 몫이었고, 책임은 흐릿했다. 그 결과 과천은 ‘더 지을 수 있는 도시’가 아니라 ‘이미 과부하 상태인 도시’가 됐다.
그럼에도 경마공원 부지마저 주택공급 대상으로 검토된다는 것은 정부가 여전히 과천을 숫자로만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경마공원은 단순한 유휴지가 아니다. 도심 내 마지막 대규모 녹지이자, 과천의 환경적 균형을 지탱해 온 핵심 공간이다. 이곳을 주택으로 채우겠다는 발상은 단기적인 공급 수치에만 매달린 무책임한 정책 사고의 결과다.
문제는 이런 방식이 반복된다는 데 있다. 정책 실패의 책임은 중앙정부가 지지 않으면서, 그 부담은 특정 도시와 시민에게 전가된다. 합의 없는 결정, 사후 설명, 갈등의 반복. 과천은 그 과정의 단골 희생지였다.
이제 과천시민들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과천은 주택공급 키트가 아니다.” 정부의 잘못된 부동산 정책을 수습하기 위해 언제든 꺼내 쓰는 대상도 아니다. 정책 실패의 대가를 과천에 떠넘기며 도시를 망가뜨리지 말라는 것이 시민들의 경고다. 경마공원 주택공급 논의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더 이상의 일방적 결정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