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반도체 지형을 다시 써버린 ‘가장 큰 베팅’
엔비디아와 AMD가 TSMC를 핵심 파운드리 파트너로 선택한 결정은, 당시만 해도 무모해 보였던 도박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당시의 선택이 두 회사의 시장 지배력을 결정지은 가장 중요한 분기점 중 하나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AI 시대에 접어들며 반도체는 산업 전반의 병목으로 떠올랐다.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공급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가운데 세계 최대 파운드리인 TSMC는 고객 주문을 소화하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으며, 신규 고객을 받는 데도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TSMC의 ‘충성도’는 단순히 매출 규모로 설명되지 않는다. 초기 공정 접근 권한, 빠른 물량 배정, IP 공동 개발, 일정 조율에서의 우선권까지 포함된다. TSMC가 중시하는 것은 단기 수익이 아니라, 자사가 성장하기 전부터 함께해온 고객과의 장기적 관계다.
배경은 TSMC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인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NEC 등이 반도체 시장을 지배하던 시절, 모리스 창이 이끈 TSMC는 ‘순수 파운드리’라는 생소한 모델로 출발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TSMC를 선택한 고객들은 극히 제한적이었고, 엔비디아와 AMD는 그 초기 파트너 중 하나였다.
최근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은 당시를 회상하며, TSMC 창업자인 모리스 창과의 첫 만남을 언급했다. 그는 초기에 “엔비디아가 TSMC의 최대 고객이 될 것”이라고 말했고, 현재 그 약속은 현실이 됐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현재 TSMC 최대 고객이며, A16 공정의 사실상 단독 고객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 계약을 통해 향후 수년치 물량까지 확보한 상태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런 관계는 엔비디아가 AI 시대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핵심 배경 중 하나로 꼽힌다. 공정 접근성과 안정적인 물량 확보는, 기술력 못지않게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AMD 역시 비슷한 선택을 했다. 한때 자체 공장을 보유하고 있던 AMD는 이를 분사해 글로벌파운드리스로 독립시킨 뒤, 생산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TSMC를 주력 파운드리로 삼는 결정은 당시 내부적으로도 큰 전환점이었다.
"Another major call was deciding you know, really to, you know, change fundamentally our our relationship with Global Foundaries and, you know, go with, you know, TSMC as our leading manufacturing partner."
- AMD's CEO Lisa Su
AMD CEO 리사 수는 최근 TSMC로의 전환을 “재임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라고 직접 언급한 바 있다. 그 결과 AMD는 서버와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렸고, EPYC와 라이젠 라인업을 통해 인텔의 아성을 본격적으로 흔들 수 있었다.
반면 인텔은 내부 파운드리 문제로 수년간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제품 일정과 경쟁력이 반복적으로 흔들렸다. 결국 인텔 역시 일부 제품에서 TSMC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현재 AI 반도체 공급망에서 TSMC는 엔비디아·AMD와 함께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 인텔, 삼성 파운드리의 대안이 점차 현실화되고 있음에도, 최첨단 공정과 안정성 측면에서 TSMC가 차지하는 위치는 여전히 독보적이다.
과거 엔비디아와 AMD가 수년 전 선택한 TSMC 중심 전략은, 회사의 운명을 건 베팅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AI·컴퓨팅 지형을 보면, 당시의 베팅은 결과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선택이었다는 평가가 점점 더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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