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선주 더봄] 작별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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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주 더봄] 작별 연습

여성경제신문 2026-01-25 13:00:00 신고

1

아빠의 차가 출발했다. 다카 공항까지는 1시간 남짓 걸린다. 공항으로 가는 길 하늘은 유독 파랬다. 먼지는 없었고 구름도 적었다. 나는 뒷좌석에 현오랑 나란히 앉았다. 현오는 들떠 있었다. 차만 타면 자던 현오는 아빠에게 말을 걸며 신이 나 있었다. 엄마는 말없이 창밖만 뚫어져라 바라봤다.

“수오 약 먹었어?”

“응.”

엊그제부터 시작된 기침이 멎지 않는다. 갈수록 심해졌다. 방글라데시의 겨울은 한국의 여름과 같다. 덥고 습기도 많았다. 엄마와 현오는 한국으로 떠나고 나와 아빠는 이곳에 남는다. 나는 여기 아빠 근무지에서 영어 공부를 해야 했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지만, 엄마의 입국 날짜가 다가오자 마음이 가라앉았다. 자동차와 함께 달리는 겨울 하늘은 줄곧 맑았다. 방글라데시에서는 흔한 날이 아니었다. 아빠는 가끔 백미러로 나를 살피는 듯했으나 나는 모른 채했다. 시간은 조용히 흘렀다.

“빠진 거 없지?”

“없어. 여보, 수오 약 잊지 말고.”

“예예. 걱정 마시고 들어가세요.”

아빠는 유쾌하게 엄마를 보내고 있었다. 공항은 외국인과 현지인들로 붐볐다. 이곳은 현지인보다는 외국인 공항 출입이 더 자유로웠다. 아빠는 이곳에서 계속 근무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2년 정도 머문다고 했다. 엄마는 다른 날과 다르지 않았다. 가끔씩 나와 마주쳤고 내가 기침할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임 /copilot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제작한 이미지임 /copilot

우리는 게이트로 향했다. 엄마의 걸음은 느렸지만 뒤처지지 않았다. 뒤로 돌 듯 말 듯 나를 의식한 걸음이라고 나는 믿었다. 현오의 발걸음은 참새처럼 가벼웠다. 

“형! 책상 서랍에 종이접기 색종이 있어. 형 가져.”

“배낭 뒤쪽에 망고 젤리 넣었어. 한꺼번에 다 먹지 마.”

“진짜! 고마워 형.”

작은 참새는 웃으며 말했다. 참새는 날마다 나를 기다렸다. 하교 시간에 운전기사 밀론과 함께 오기도 했다. 친구 없이 매일 나를 기다리며 놀아주기를 원했다. 나는 샤만다와 축구를 한다고 현오를 거의 방치했다. 참새는 나무 기둥에 쑤셔 박혀 나에게 날아오지 못했다. 

“빠진 거 없지?”

“없어요. 수오는···”

아빠와 엄마는 즐겁지도 슬프지도 않은 대화를 했다. 표정 없는 말의 여운이 우리 곁에 오래 머물렀다. 나는 엄마를 똑바로 보지 않았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엄마를 오래 못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엄마를 부를 정도로 엄마에게 궁금한 것이 없어야 했다. 궁금한 것이 차고 넘치는데도 말이다.

“현오, 이제 언제 와?”

“형, 나는 이제 여기 안 와.”

현오는 경쾌하게 답했다. 그 순간 엄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기침이 거푸 쏟아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기침을 했다. 참지 않았다. 예상대로 엄마는 나를 보지 않았다. 공항 속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나는 엄마가 나를 봤으면 하는 눈길을 들키고 싶었다. 의식적으로 기침의 강도를 높였다. 대합실 의자가 기침 소리에 마구 흔들렸다.

“수오야, 가슴 안 아파?”

“···”

“기침 많이 해서 가슴 아프면 따뜻한 물 먹어. 노란 물통 알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였다. 이때다. 엄마와 나의 시간이 사라졌다. 우리의 은하수가 공항 인파 사이를 돌다 운행을 멈췄다. 마치 영화 마지막 자막처럼 엄마와 나의 말들이 공항 밖으로 밀려나갔다. 얇은 책장에 살갗이 베이면 아주 잠깐 짜릿했었나. 나는 옆에 있는 엄마가 몹시 그리웠다.

“이놈 감기 걸릴 때 됐지. 괜찮아. 모레 정도면 기침 멎어.”

“형은 목감기지? 나는 콧물인데.”

엄마와 내 앞으로 현지인과 외국인이 뒤죽박죽 스쳤다. 질서도 빈틈도 없는 발걸음이 사람보다 많았다. 기침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귓속이 얼얼했다. 사람들 말소리가 뚜렷하게 들리지 않았다.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더 많은 기침이 쏟아졌다. 질서도 빈틈도 없는 기침이 청각의 영역까지 침범했다. 이 순간 모든 소리가 무자비했다. 

“수오야, 잠깐 숨을 멈춰.”

게이트 앞에서 엄마가 내 팔을 잡았다. 그리고 고개 밑으로 엄마의 고개를 들이밀고 말했다. 

“숨 꾹 참다 숨 들이마시고 길게 뱉어봐.”

“흠··· 후···”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했다. 엄마가 말하는 대로 숨을 참다 긴 숨을 뱉었다. 이때다. 우리의 멈췄던 시간이 다시 움직였다. 이제야 은하수가 운행을 시작했다. 

“좀 낫지? 이렇게 해. 쉴 새 없이 기침이 쏟아지면, 알았지?”

“으응.”

“들어가. 여보 시간 됐다.”

“수오!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 곧 또 보니까 그때 엄마가 검사한다.”

 

2

나는 얼른 엄마의 두 눈을 봤다. 두 개의 눈동자가 각각 다른 눈빛으로 나에게 향했다. 어떤 눈빛이 떠나는 눈빛인지, 머무는 눈빛인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똑같은 눈빛의 눈동자가 나를 계속 바라보는 것 같았다.

“곧? 언제?”

“좀 있으면 또 보지. 그러니까 연습해. 엄마 말대로.”

엄마와 현오는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곧 본다고 했다. 그러면 걸어오는 앞모습을 볼 테지. 뒷모습은 멀리 뒤에다 두고.

엄마가 하라는 연습, 기침 연습. 기침을 하면 기침을 멎게 하는 연습. 엄마랑 헤어지는 연습, 작별 연습. 이별이 오면 이별을 멎게 하는 연습. 이별을 깨뜨리는 연습. 작별 연습. 

나는 작별 연습을 위해 따뜻한 물을 마셔야 한다. 서둘러 따뜻한 물을 마시고 싶었다. 나는 성큼 앞서가는 아빠의 손을 얼른 잡았다.

“아빠, 노란 물통에 따뜻한 물 있지?”

여성경제신문 양선주 시인·한국미니픽션작가회 회원 zoo-mous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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