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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포용금융’과 ‘서민금융 강화’는 국정 운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고금리와 부채 부담이 장기화되면서 금융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구조화되는 상황에서, 정부는 서민금융 안정기금 신설과 금융 공공성 강화를 주요 해법으로 제시했다. 서민금융 정책은 단일 제도나 인사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재원 조성 방식, 금융권의 부담, 금리 안정 메커니즘, 정책금융과 민간금융의 역할 분담 등 해결해야 할 쟁점이 적지 않다. ‘누구를 위한 금융인가’라는 근본적 질문 역시 다시 제기되고 있다. 한양경제는 신년 기획 시리즈를 통해 서민금융 안정기금의 설계 과정과 재원 구조, 정책 효과와 한계, 금융권과 정부의 역할, 그리고 그 중심에 놓인 정책 철학과 인사 구도를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서민금융지원 기관 등을 통해 짚어본다. 제도와 숫자 뒤에 가려진 정책의 방향성과 책임의 문제를 독자와 함께 되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註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포용금융’과 ‘서민금융 강화’는 국정 운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고금리 기조와 가계부채 부담이 장기화되며 금융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구조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서민금융 안정기금 신설과 금융 공공성 강화를 주요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이미 실패한 채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질문이 정책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제도권 금융 바깥에서 시작된 시민금융 실험이 국가 정책으로 편입되는 전환점이 마련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재임 시절 도입했던 주빌리은행(등록명 롤링주빌리) 모델을 전국 단위 공공정책으로 확장하는 구상에 착수한 것이다.
주빌리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취급하는 시중은행이 아니다. 장기 연체된 부실채권을 민간 기부금으로 매입해 채무를 소각하는 비영리 채무조정 플랫폼이다. 금융회사나 자산관리회사(AMC)가 수익 목적으로 부실채권을 매입·추심하는 기존 구조와 달리, 회수 불가능한 빚을 사회적으로 정리해 채무자의 재기를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모델은 2013년 이재명 당시 경기 성남시장이 시민단체와 금융 전문가들과 함께 도입했다. 민간 후원금으로 금융사 부실채권을 원금 대비 3~5% 수준에 매입한 뒤, 채무자가 원금의 7%만 상환하면 나머지를 전액 탕감하는 구조다. 2023년까지 약 5만1천500명의 채무자에게
8천억원이 넘는 채무를 실질적으로 소각하며, 정부 제도권 밖에서 사실상 ‘사회적 배드뱅크’ 역할을 수행해왔다.
박선종 주빌리은행(롤링주빌리) 이사장은 이 같은 시민금융 실험의 출발점으로 ‘성장과 안전망의 불균형’을 지적한다.
박 이사장은 “우리나라는 GDP 기준으로 이미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지만,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선진국에 미치지 못해 경제적 약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롤링주빌리는 2015년부터 뜻있는 시민들의 기부로 빚의 늪에서 고통받는 분들을 위해 부실채권을 매입해 전액 소각하고, 채무조정을 지원하는 시민운동을 이어왔다”며 “그 결과 소액 채무자 5만여 명의 부실채권 8천억원 이상을 탕감하는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장기간 불법·과잉 추심에 시달리던 채무자들이 빚의 고통에서 벗어났고, 이는 부실채권 시장 전반에도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다. 박 이사장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을 금융기관 스스로 소각·정리하는 관행이 확산되는 ‘나비효과’가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주빌리은행 모델에 주목하는 이유는 단순한 채무 감면 효과를 넘어 금융 생태계 전반의 구조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장기 연체로 경제활동에서 배제된 채무자에게 재진입의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부실채권 시장을 수익 논리 중심에서 공공성 중심으로 재편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박 이사장은 이를 ‘재도전의 권리’라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그는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나 뛸 수 있는 기회만큼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사회가 필요하다”며 “주빌리은행은 그 최소한의 조건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시행된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되면서 현재 약 40만명 이상이 구조적 채무조정을 필요로 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 가계부채는 1천870조원을 넘어섰고, 청년층·자영업자·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연체율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 온 “실패한 국민에게도 재도전 기회를 주는 공정한 시장경제”라는 인식은 주빌리은행 모델의 제도화로 구체화되고 있다. 금융당국은 비영리법인의 부실채권 매입 허용, 추심 제한, 공익적 채무조정 기준 마련 등을 포함한 법제화 로드맵을 검토 중이다.
정치권에서는 주빌리은행 모델이 대통령 공약인 ‘국민재기지원기금’과 결합해 정부–비영리–금융권 3자 협력 기반의 사회적 배드뱅크로 확장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다만 도덕적 해이 방지 장치, 대상자 선별 기준, 지속 가능한 재원 조성 방식은 제도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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