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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주 법무법인 안다 대표변호사·안다상속연구소장]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평균 기대수명은 약 82세에 이른다. 그러나 평균수명이라는 숫자는 개별 개인의 삶의 생존기간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누구나 언젠가는 삶의 황혼기에 접어들지만, 그 시점과 방식은 예측할 수 없다. 주변에 활발히 사회활동을 이어가던 50대나 60대가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 죽을 것인가’를 예측하는 일이 아니라, ‘언제라도 대비된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후반부에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정리의 시간이 찾아온다. 직장에서의 은퇴, 사회적 역할의 변화, 인간관계의 축소, 체력과 인지능력의 저하 등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찾아온다. 이 시기에 자기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그 결정은 타인이나 제도에 의해 대신 내려질 가능성이 커진다. 자기 의지대로 살지 않으면, 남의 의지대로 살아가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인생노트 작성’이다.
노인복지관이나 평생교육기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인생노트 쓰기’ 강좌라고 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거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정리하고, 남은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설정하는 작업에 가깝다. 인생노트의 핵심은 “내 삶에 대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고, 내가 결정한다”라는 점이다. 나이가 들수록 선택의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불필요한 것에서 벗어나는 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인생노트의 내용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우선 자신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정리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건강 상태, 복용 중인 약, 자주 이용하는 병원과 담당 의사, 과거의 주요 질병 이력 등은 위급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된다. 인지능력이 충분히 유지될 때 이러한 내용을 정리해 두면,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 발생 시 가족이나 의료진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스스로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자기 삶의 궤적을 기록하는 일이다. 살아오면서 중요했던 사건, 기억하고 싶은 순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성취와 실패를 간단히라도 남겨두는 것이 좋다. 상장, 사진, 편지, 기록물 등은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거나 폐기되기 쉽다. 인생노트는 이러한 자료를 선별하고 정리하는 기준점이 된다. 이는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기록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하는 계기가 된다.
재산에 관한 정리 역시 인생노트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현금, 예금, 증권과 같은 유동자산과 부동산, 임대차 보증금 등 고정자산을 구분하여 정리하고, 관련 서류의 보관 위치를 명확히 해 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상속 분쟁을 예방하는 실질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상속 분쟁은 재산의 규모보다 정보의 부재와 정리되지 않은 기록에서 비롯된다. 인생노트는 법률문서 이전 단계의 생활 기록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부모님이 인생노트를 쓰고 그것을 확보한다면 나중에 상속분쟁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인생노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앞으로의 삶’이다.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목표와 계획,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재정적 범위를 함께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 꼭 이루고 싶은 일, 가보고 싶은 장소, 만나고 싶은 사람을 버킷리스트 형태로 정리해도 좋다. 계획은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방향이 있는 삶과 방향 없는 삶은 분명히 다르다. 작은 목표를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과정은 노년기의 삶에 분명한 활력을 준다.
인생노트를 통해 자기 삶을 정리하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유언장이나 신탁계약서 작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죽음을 앞당기는 행위가 아니라, 오히려 남은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드는 준비다. 대문호인 톨스토이는 “세상에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생의 마지막 또한 우연에 맡기기보다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잘 사는 삶의 완성일 것이다.
인생의 황혼기에 인생노트를 작성하는 일은 삶을 정리하는 행위이자, 동시에 삶을 다시 시작하는 행위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기 위한 조용하지만 단단한 준비로서, 인생노트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조용주 변호사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사법연수원 26기 △대전지법·인천지법·서울남부지법 판사 △대한변협 인가 부동산법·조세법 전문변호사 △안다상속연구소장 △법무법인 안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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