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시인 "빵점이라 자유로워…그 모순의 힘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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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희 시인 "빵점이라 자유로워…그 모순의 힘으로 쓴다"

연합뉴스 2026-01-25 08:00:1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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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시집 '빵점 같은 힘찬 자유' 펴내…덧없음에서 깨달은 자유

소외된 여성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메멘토 모리가 창작 동력"

김승희 시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김승희 시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승희 시인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1.25
mjk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아무것도 없는데 자유롭다. 아무것도 없으니 자유롭다. 공허해서 울고 싶은데, 빵점이기 때문에 자유롭다…. 삶의 아이러니입니다. 그 힘으로 시를 씁니다."

허망과 자유의, 뫼비우스의 띠 같은 아이러니. 새 시집 '빵점 같은 힘찬 자유'(창비)를 펴낸 시인 김승희(74) 서강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허망함에서 찾은 자유에 관해 말했다.

5년 만에 새 시집이자 열두번 째 시집을 펴낸 김승희 시인을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났다.

빵점 같은 힘찬 자유 빵점 같은 힘찬 자유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헛되고, 헛되다'…바니타스에서 진정한 자유 깨달아

'빵점 같은 힘찬 자유'란 시집의 제목부터가 힘찬 모순이다.

뜻밖이고 엉뚱하고, 당돌하고 거침없는 비유로 "돌발성의 황홀"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에게 제목의 의미를 물었다.

"이상하게 이번 시집에서 '빵점'이란 단어에 빠졌어요. 아무것도 없다, 제로다, 공허하다, 허망하다, 헛되다."

이어 그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성경 전도서의 한 구절을 인용하며 '바니타스'(Vanitas)를 설명했다.

바니타스는 허무, 허영, 덧없음을 뜻하는 라틴어다. 인간의 유한함, 물질과 세속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해골 등 상징적 오브제를 그린 정물화의 한 장르이기도 하다.

"바니타스, 덧없다/ 바니타스, 쓰디쓰다/ 빨간 사과와 해골 아래/ 바람이 소멸이고 전설이다/ 허망의 내력조차 없다// (중략) 바니타스, 허망하다/ 허망한 것이 허망할 때, 그래서 마음껏 다 허망할 때 비약적으로 자유로워진다고 한다/ 허망한 것이 충분해질 때 자유를 알게 된다고 한다"('바니타스 아래 자유가 자란다' 중)

시인은 바니타스를 통해 삶의 덧없음에서 진정한 자유가 찾아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허무와 염세의 세계에만 묶이지 않는다.

시인에게 자유란 "속박을 벗어나서 나아가는 것"이며 "소나기로부터의 자유는/ 무수한 소나기 속으로 그저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작위적 공허라기보다는 고요한 마음으로 저절로 소멸하는 것에 가깝다.

김승희 시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김승희 시인, 연합뉴스와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김승희 시인이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1.25
mjkang@yna.co.kr

그런 만큼 관념과 사변을 벗어나, 일상의 경험을 길어 올려 시문을 짓는다.

깨달음은 예기치 못한 순간 찾아온다.

세수도 안 하고 머리도 안 빗은 초라한 꼴로 동네를 누비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지인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을 때 시인은 "불현듯 나는 내가 자유롭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그런 빵점 같은 힘찬 자유가 나는 좋다"고 말한다.

또 "대학병원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쓰던 날/ 그렇게 마음이 부풀어 오르고 홀가분했다/ 이층 계단을 뛰어 올라가면서 자유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저절로 나오는 말은 진심이다"라고 고백한다.

이런 일상에 대한 통찰과 통렬한 자기 고백이 통쾌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시인 김승희 시인 김승희

[창비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여성의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 증언…소외된 목소리에 귀 기울여

부조리한 현실 속 소외된 여성의 목소리도 놓치지 않는다. 역사 속에서 잊힌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증언하고 애도를 표하면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분홍색 십자가 아래 이름 없는 주소 아래'는 "대도시 도심 빌딩 아래서 백인 남편을 기다리는 동안/ 백인 경비원에게 강간 살해당한 뉴욕의 한인 예술가"인 차학경을 모티프로 한 시다.

차학경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열한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소설·사진·영화·행위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다 서른한 살의 나이에 연쇄살인범에게 목숨을 잃었다.

시인은 "버클리대학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을 때 차학경의 유작인 '딕테'(Dictee)를 알게 됐다. '딕테'는 페미니즘,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적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시대의 불멸의 저서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학경은 불멸의 예술가라는 사실과는 상관없이 우연히 살해당한 여자, 버려진 여자, 유기당한 여자, 실종된 여자 등의 대명사로 남았다"며 "그것이 여성이 저항할 수 없는 약자의 운명이라는 것을 비극적으로 고통스럽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인 김승희 시인 김승희

[ⓒ강민구. 재판매 및 DB 금지]

◇ "청순한 마음으로 시 쓰기 몰두…꿈 이루려면 어느 정도 미쳐야"

김승희는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그림 속의 물'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태양 미사', '왼손을 위한 협주곡', '미완성을 위한 연가', '달걀 속의 생' 등의 시집을 펴냈다.

1994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산타페로 가는 사람'이 당선됐다.

산문집 '33세의 팡세'도 빼놓을 수 없다. 젊은 날의 고뇌와 문학의 열병을 거침없이 토로한 이 산문집은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소월시문학상, 고정희상, 올해의 예술상, 한국서정시문학상, 만해문학상, 고산문학대상, 청마문학상 등을 받았다.

"청순한 마음으로 시 쓰기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그에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시를 쓸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인지 물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의 힘일 것입니다. 죽음의 불가피함과 삶의 유한함, 그것이 창작의 동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여전히, 그의 시집에는 번뜩이는 직관과 말의 역동성이 꿈틀댄다.

오은 시인은 이번 시집의 추천사에서 "시인은 나이 들어도 시는 나이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고 선배 시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김승희 시인은 좋은 독서를 하는 것, 늘 신선한 언어를 찾는 것, 시간을 항상 잘 바라보는 것 그리고 몰두하는 것을 시적 젊음의 비결로 꼽았다.

이어 "꿈을 향해 나가려면 어느 정도는 미쳐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다만 단서를 달았다.

"그런데, 그 '어느 정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너무 미쳐도 안 되고 너무 안 미쳐도 안 되고. (웃음)"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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