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쏠림·계층 양극화 심화…"단기부양책보다 구조 개선·기초체력 강화"
(세종=연합뉴스) 안채원 송정은 기자 =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동력이 되살아나면서 올해 '2% 성장'에 청신호가 켜지는 분위기이지만, 내수에서는 뾰족한 회복 조짐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구조적으로 산업별·계층별 격차가 벌어지는 이른바 'K자형 성장'이 고착화하면서 양극화를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자영업자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5년 만에 최대 폭으로 감소한 것도 이같은 내수 분야의 어려움을 반영한다.
◇ 반도체 '나흘로' 끌어올리는 성장률…코스피도 양극화
25일 정부와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지난해 실질 성장률(1%·속보치) 가운데 반도체를 포함한 IT 제조업의 기여도는 0.6%포인트에 달했다.
반도체 수출로만 보면 성장률을 0.9%포인트 끌어올린 것으로 집계됐다.
이같은 쏠림 현상은 갈수록 심화하는 양상이다. 관세청의 이달 1∼20일 수출입 현황 통계에 따르면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70% 이상 뛰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9.5%까지 늘었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우리 경제의 성장은 인공지능(AI) 확산에 따른 반도체 수요 폭발에 의존한 측면이 크다"며 "향후 AI 관련 투자가 둔화 국면에 진입하거나 거품론 등이 현실화하면 이를 대체할 성장 동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짚었다.
주식 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꿈의 지수 '5,000'을 찍은 코스피 시장에서 대형주 지수는 이달 들어 19.32% 올랐지만, 중형주와 소형주 지수는 각각 8.02%, 1.32% 오르는 데 그쳤다. '코스피 5,000 시대'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대형주 쏠림에 따른 결과물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코스피 지수가 4,600선에 육박했던 지난 9일에도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를 제외한 지수는 3,400선 수준에 머물렀다.
내수 경기의 바로미터인 자영업자 현황을 뜯어보면 이같은 양극화 흐름은 한층 뚜렷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작년 자영업자는 562만명으로 전년보다 3만8천명 줄면서 코로나19 사태 당시인 2020년 이후로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특히 '나홀로 사장'을 뜻하는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전년보다 3만8천명 줄었다. 2024년(-4만4천명) 6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선 뒤 2년 연속 줄어든 것이다.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는 제자리걸음에 그쳤다.
통상 호경기에는 직원채용이 늘면서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기 마련이지만, 상당수 자영업자들이 사업 규모를 늘리지 않고 직원을 두지 않거나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아예 문을 닫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결국 고물가와 고금리, 내수 부진의 직격탄이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집중되면서 내수 현장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 소득·자산 격차 심화…소득분배 지표 3년만 악화
산업과 금융시장에서 쏠림 현상은 가구의 소득·자산 격차 확대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5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부자'들의 금융자산 증가율(8.5%)은 전체 가계 금융자산 증가율(4.4%)의 갑절에 달했다. 이들이 보유한 총금융자산(3천66조원)은 전체 가계 금융자산(5천41조원)의 60% 이상을 차지했다.
가계소득 분배 지표는 3년 만에 악화했다.
2024년 기준 소득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의 소득 차이를 나타내는 '5분위 배율'은 5.78배를 기록했다. 상위 20%가 하위 20%보다 5.78배 더 많은 소득을 올렸다는 뜻으로, 이 수치가 전년보다 높아지면서 가계 간 소득 격차는 2021년 이후 다시 벌어졌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반도체 등 유망 산업에 속했는지 여부 등에 따라 소득과 자산 격차가 뚜렷해지는 양상"이라며 "올해 고환율 기조까지 이어지면서 수출 대기업·고소득층과 중소기업·영세 내수업자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경제 기초 체력 강화…재정 정책보다 규제 완화"
전문가들은 'K자형 성장'의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단기적인 경기 부양책보다 경제 구조 전반의 체질 개선에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년 두 차례 시행된 민생회복 소비쿠폰 등 한시적 소비 진작책보다는 성장의 온기가 산업 전반과 계층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는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염명배 명예교수는 "반도체 수요 변동과 같은 외부 변수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결국 경제의 기초 체력을 강화해야 하고, 그 출발점은 과감한 규제 완화"라며 "기업 활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둔 채 재정 지출로만 대응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김광석 경제연구실장도 "유동성 공급 중심의 부양책은 자산·소득 양극화를 오히려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chae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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