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기념박물관 건설비를 기부하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를 서슴없이 저지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를 확인해 보도록 하자. 그는 조선총독부가 추진한 '시정 25주년 기념 종합박물관'(이하, 기념박물관) 건설에 거금을 기부하기도 하고, 자신이 수집한 유물들을 기증하면서 조선총독부와 유착 관계를 유지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을 통치한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1934년부터 '시정 25주년 기념 종합박물관'을 건설하기로 계획했다. 원래 기념박물관은 미술박물관과 과학박물관으로 계획했는데, 최종적으로 미술박물관만 완공되었다. 이는 1937년 12월에 착공하여 14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1939년 초에 완공되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1935년 8월에 기념박물관을 건설하는 데에 5만 원을 기부하겠다고 신청했다. 이와 관련된 당시의 신문 기사를 확인해 보자.
시정 25주년 기념박물관 건축비로 대구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5만 원을 기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5만 원이라는 것을 쉽게 툭 던진 오구라씨를 찾아가면 귀찮은 듯한 표정으로 말한다.
기념 사업으로 박물관에 오만 원을 기부한다고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제가 20년간 조선에서 살면서 지금같이 된 것은 아무래도 위정 당국(조선총독부, 필자 주)의 덕분이므로 감사의 의미에서 기부했을 따름입니다.
위의 기사를 보도한 <조선신문>은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기념박물관 건축비 기부를 위해 5만 원을 신청한 일을 '훌륭하게 잘한 일'이라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보>는 조선총독부가 그의 5만 엔 기부 신청에 대해 "그 기특(한 일, 필자 주)을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5만 원은 당시 일급 1.00엔을 받는 조선인 남성 공장노동자가 약 137년을 하루도 쉬지 않고 저축만 해야 벌 수 있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그는 이와 같은 거액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툭' 기부한 것이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기부하기로 한 5만 원은 기부금 중에서도 상당한 거액이었다. 당시 신문 기사에 따르면 기념박물관은 200만 엔을 들여 건축할 예정이었는데, 그중 100만 엔은 기부를 받기로 했고, 이에 재벌, 은행, 개인들이 기부를 신청했으며, 연내에 100만 엔을 다 채울 것으로 예상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당시에도 재벌 기업이었던 미쓰비시(15만 엔), 미쓰이(10만 엔), 스미토모(10만 엔)보다는 적은 금액이지만, 조선은행(5만 엔), 동양척식회사(5만 엔) 등과 동일한, 그리고 개인 기부자로서는 가장 많은 기부금을 신청했다.
조선총독부가 그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만하다. 조선총독부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그의 기부를 치하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1937년 8월에 감수 포장(紺綬褒章)을 받았다. 이를 받은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다음과 같이 소감을 밝혔다.
이번에 과분한 영예를 주셔서 감격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클 수 없는 큰 은혜에 대해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한 공적도 없는 제가 감사한 은혜를 입은 것은 모두 여러분들의 덕분이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어머니의 기일에 해당하는데 어머님도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감수 포장은 국가를 위해 세운 공로에 대해 등급에 따라 훈장이나 포장을 주는 서훈의 하나로 현재 일본 내각부(內閣府)는 감수 포장에 대해 "공익을 위해 사재(개인은 500만 엔 이상, 단체는 1,000만 엔 이상)를 기부한 자를 대상"으로 하고 "표창되어야 할 사적(事績)이 생겼을 때 각 부처 등의 추천을 바탕으로 심사하여 수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대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5만 엔이라는 거금을 기부한 그를 높이 평가하고 감수 포장까지 내린 것이다.
조선총독부에 유물을 기증하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기념박물관 건축비 5만 엔을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소장하고 있던 유물들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그는 1943년 8월 30일에 수집한 유물 중의 일부를 기부하고 싶다는 기부원(寄附願)을 제출한다. 기증 목록에는 백자, 청자, 금동관을 비롯하여 총 52점의 유물이 있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해당 유물들이 학술 참고품으로써 필요한 것으로 인정되는데, 이를 기부받을지 논의한 후(9월 13일) 총독에게 이에 대한 포상을 요청했다(9월 23일). 10월 8일에는 조선총독부 인사과장이 학무국장에게 '52점에 대한 평가액은 1,151엔인데, 그 평가에 관한 증빙서류나 참고 서류 정비가 곤란하므로 1,000엔 이하로 평가한 후에 포상을 고려함이 좋을 듯하여 일단 서류를 돌려보낸다'라는 취지의 문서를 보냈다.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52점의 유물을 조선총독부에 기증하여 포상까지 받았는지 그 여부는 자료상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기념박물관 건설을 위해 거액을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수집한 유물을 기증하면서 조선총독부라는 중앙 권력과 유착 관계를 형성·유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도굴품을 손에 넣는 불법 행위를 조선총독부가 암암리에 눈감아 주는 데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본의 침략 전쟁을 위해 거액을 헌금하다
한편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조선총독부에 기념박물관 건축비 기부, 유물 기증 이외에도 일본의 침략 전쟁을 위한 거액 헌금을 여러 차례 기부하기도 했다. 이 또한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조선총독부와 긴밀하게 유착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도굴품 불법 매매를 서슴없이 저지르는 행위를 비롯하여 그가 여러 유물들을 손에 넣는 데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백금(白金)을 헌납하여 1941년 11월 16일에 표창을 받기도 했고, 1941년 12월 16일에는 "황군의 혁혁한 전과에 감동"하여 개인 자격으로 육군과 해군에 각각 3만 엔씩 총 6만 엔을 국방비로, 같은 날에 대구상공은행장 자격으로 육군에 1만 5천 엔을 헌금했다. 1942년 1월 15일에는 "육해군의 혁혁한 전과에 감격하여 회사의 총의"로 육군과 해군에 각각 군용기 1대씩을 헌납했고, 1942년 6월에는 조선군애국부(朝鮮軍愛國部)와 해군에 각각 2만 원씩을 헌금했다. 1943년 8월에는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고이소 쿠니아키(小磯国昭, 1942.05.29.~1944.07.21.) 총독을 직접 찾아가 "반도 동포에게 징병제가 실시된 것을 기념하여 지참했습니다. 근소(僅少)하지만 무언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라고 말하면서 10만 엔을 헌금하자 조선총독부가 감격했고 한다.
'조선의 전기왕'으로 엄청난 재력을 쌓아온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이와 같이 수만 엔의 거금과 군용기까지 여러 차례 헌금하며 일본이 침략 전쟁을 벌이는 데에 일조했고, 조선총독부와 일본군은 이에 감격했다. 조선총독부는 오구라 다케노스케의 기념박물관 건립 기부금에 감사를 표했고, 침략 전쟁을 위한 헌금에도 감격을 정도이니 그의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를 충분히 묵인해 줄 만도 하지 않은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도굴품들을 거리낌 없이 사들였다. 그가 직접 사람을 부려 도굴 행위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불법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사주하거나 조장해서 수많은 도굴품들을 손에 넣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그 도굴품 불법 매매 행위의 이면에는 지방의 경찰 권력과 교육 권력의 묵인과 협조라는 또 다른 불법 행위가 저질러지고 있었다.
이와 함께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조선총독부에 기념박물관 건립을 위한 거액의 기부금을 내거나 자신이 수집한 유물들을 기증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 전쟁을 위해 여러 차례 거액을 헌금하면서 지방 권력뿐만 아니라 중앙 권력인 조선총독부와도 유착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여러 차례에 걸친 거액의 헌금은 '조선의 전기왕'인 그가 아니었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와 같이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조선의 전기왕'으로서 축적해 온 재력과 더불어 중앙-지방 권력과 형성한 돈독한(?) 유착 관계는 그가 '조선보물명승천연기물보존령'을 어기면서도 처벌받지 않고 도굴품을 서슴없이 불법 매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될 수 있었고, 도굴품을 포함하여 여러 유물들을 값비싸게 사들이면서 오구라 컬렉션이라고 불릴 만큼 수많은 유물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참고문헌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朝鮮新聞>, <京城日報>, <朝鮮新聞>, <매일신보>
閣府府ホームページ
Copyright ⓒ 프레시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