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아이의 질문 하나가 3000명의 운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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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 아이의 질문 하나가 3000명의 운명을 바꿨다

프레시안 2026-01-24 17:16:51 신고

쇠사슬을 본 소년

1805년 어느 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한 농장에서 7살 소년이 아버지와 밭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길 위로 쇠사슬에 묶인 사람들이 지나갔다. 노예들이었다. 소년은 물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은 왜 묶여 있어요?"

이 질문 하나가 한 남자의 평생을 결정했다. 그리고 그 평생이 3천 명의 운명을 바꿨다. 그 소년이 바로 레비 코핀(Levi Coffin, 1798 - 1877)이다. 훗날 "지하철도 대통령"이라 불리게 될 인물. 물론 실제 대통령은 아니다. 너무 많은 노예를 구출해서 붙은 별명일 뿐.

퀘이커교도의 위험한 장사

코핀 가문은 퀘이커교도였다. 평화와 평등을 강조하는 이 기독교 분파는 노예제를 극도로 혐오했다. 1784년부터 퀘이커가 노예를 소유하면 교회에서 쫓겨났다.

15살 때부터 코핀은 노예 구출활동을 시작했다. 첫 케이스는 납치당해 노예가 된 자유인 스티븐을 구출한 것이었다. 15살 소년치고 꽤 대담한 행동이다.

1824년 10월 28일, 코핀은 캐서린 화이트(Catherine White, 1803 - 1881)와 결혼했다. 캐서린의 가족도 노예 구출 활동에 참여했다. 둘은 같은 뜻을 품은 동지이자 부부가 됐다.

1826년, 부부는 인디애나주 뉴포트로 이사했다. 노예주들의 박해를 피해서였다. 1827년 잡화점을 열었고 장사가 잘됐다. 그리고 그 돈으로... 노예 구출 활동을 확대했다. 성공한 사업가가 번 돈으로 불법 활동을 한 셈이다. 당시 도망 노예를 도우면 법적으로 처벌받았으니까.

그랜드 센트럴 역이 된 집

1838년, 코핀은 2층 벽돌집을 지었다. 이 집은 나중에 "지하철도의 그랜드 센트럴 역"이라 불렸다.

'지하철도'는 실제 철도가 아니다. 도망 노예를 북쪽이나 캐나다로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비밀 네트워크였다. '역'은 은신처, '차장'은 안내자, '승객'은 도망 노예를 의미하는 암호였다.

코핀의 집 2층에는 비밀문이 있었고, 그 안에 14명이 숨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노예 사냥꾼이 찾아오면 코핀은 수색영장과 소유권 서류를 요구했다. 법적 절차를 까다롭게 따지는 사이 노예들은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결과? 단 한 번도 수색당하지 않았다. 법을 방패로 삼은 것이다.

1830년대, 코핀은 또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노예 노동으로 만든 상품은 절대 팔지 않겠다는 것. '자유노동 상품'만 취급했다. 사업적으로 엄청난 손해였다. 당시 주요 상품 대부분이 노예 노동의 산물이었으니까. 실제로 1847년 신시내티로 이주해 관리한 자유노동 상품 가게는 실패했다. 그래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케이티 이모의 헌신

레비만 영웅이 아니었다. 캐서린도 똑같이 헌신했다. 레비는 이렇게 말했다. "밤이 아무리 춥고 어두워도 그녀는 일어나 도망자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12명, 15명, 심지어 17명이 함께 식사한 적도 많았다."

캐서린은 재봉 모임을 조직해 노예들을 위한 옷을 만들었다. 도망 노예를 집사나 요리사로 변장시켰다. 가장 많이 쓴 변장은 퀘이커 여성 복장이었다. 높은 깃, 긴 소매, 베일, 챙 넓은 모자로 착용자를 완전히 가릴 수 있었다.

도망 노예들은 그녀를 "케이티 이모"라고 불렀다.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음식과 옷, 희망을 준 여성이다.

소설이 된 현실

코핀 부부가 도운 사람 중에는 한겨울에 얼어붙은 오하이오 강을 맨발로 건넌 여성이 있었다. 아기를 안고, 사냥개에 쫓기면서. 작가 해리엇 비처 스토(Harriet Beecher Stowe, 1811 - 1896)는 이 이야기를 듣고 1852년 소설 "톰 아저씨의 오두막"에 각색해 넣었다. 소설 속 엘라이자가 바로 그 여성이다.

이 소설은 첫 해에만 30만 부가 팔렸다. 19세기에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다.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1809 - 1865) 대통령이 1862년 스토를 만나 이렇게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래서 이 작은 부인이 이 큰 전쟁을 만들었군요?"

현실의 영웅이 소설의 영감이 되고, 그 소설이 다시 현실을 바꿨다.

끝까지 멈추지 않은 삶

남북전쟁(1861 - 1865) 동안과 이후, 코핀은 해방된 노예들을 돕는 활동을 계속했다. 1년 만에 10만 달러를 모금했다. 1864년에는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자유민 구호협회 설립을 도왔고, 1867년에는 파리 국제 노예폐지 회의에 참석했다. 78살의 나이에도 쉬지 않았다.

1876년, 코핀은 회고록을 출판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나는 내 직책을 사임하고 지하철도의 운영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더 이상 지하철도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1877년 9월 16일, 코핀은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장례식에는 너무 많은 군중이 몰려 수백 명이 밖에 서 있어야 했다. 캐서린은 남편보다 4년 더 살다 1881년 5월 22일 세상을 떠났다.

2026년 한국,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이 19세기 미국 부부의 이야기가 2026년 한국과 무슨 상관일까? 상관이 크다.

첫째, 관찰자인가 행동가인가. 7살 코핀은 "왜?"라고 물었고 평생 그 질문을 붙들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부조리를 보고도 "원래 그런 거 아냐?"라고 넘어가는가? 비정규직 차별, 산업재해, 괴롭힘... 우리 주변의 보이지 않는 족쇄를 보고도 모른 척하지 않는가?

둘째, 법과 정의는 다르다. 코핀이 한 일은 당시 법으로 불법이었다. 1850년 도망 노예 송환법은 북부주민도 노예를 돌려보내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코핀은 법을 어겼다. 법이 정의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불법이던 시절, 노동조합이 불법이던 시대가 있었다. 때로는 부당한 법에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셋째, 사업과 신념의 균형. 코핀은 수익성 떨어지는 자유노동 상품만 팔았다. 실패했어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기업들은 수익이 조금만 떨어져도 "우리가 자선 사업하나?"라고 한다. 150년 전 코핀은 이미 윤리적 경영을 실천했다.

넷째, 동등한 동반자. 레비와 캐서린은 진정한 동지였다. 캐서린도 똑같이 위험을 감수했다. 한국사회의 "내조"와는 다르다. 동등한 파트너십이었다.

다섯째, 작은 행동의 힘. 코핀이 도운 한 여성의 이야기가 소설이 됐고, 그 소설이 역사를 바꿨다. 김용균 씨의 죽음이 중대재해처벌법을 만들었고, 촛불 하나하나가 정권을 바꿨다. 작은 행동을 무시하지 말라.

우리에게도 '지하철도'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이주노동자,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탈북민, 성소수자... 우리는 지금 어느 쪽에 서 있는가? 쇠사슬을 보고도 모른 척하는 쪽인가,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내미는 쪽인가?

레비 코핀은 슈퍼히어로가 아니었다. 그저 7살 때 본 광경을 잊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슈퍼히어로가 될 필요 없다. 부조리를 부조리라고 인식하고, 작은 행동을 시작하면 된다.

당신은 7살 때 무엇을 목격했는가? 그리고 당신은 어떻게 응답했는가?

▲레비 코핀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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