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중개사, 법률가 아냐…전세 승계 매매와 책임 범위[판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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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중개사, 법률가 아냐…전세 승계 매매와 책임 범위[판례방]

이데일리 2026-01-24 12: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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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희봉 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부동산 시장에서 갭투자는 흔하다. 매수인이 매매대금의 상당 부분을 임대차보증금 반환 채무를 인수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나머지 차액만 매도인에게 지급하여 소유권을 이전받는 방식이다. 이때 매도인과 매수인은 당연히 임대차 계약은 매수인이 승계한다는 특약을 맺는다.

(사진=나노바나나)


그런데 만약 매수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다면 임차인은 누구에게 돈을 달라고 할까? 당연히 새로운 집주인(매수인)에게 청구하겠지만 만약 매수인의 자력이 부족하다면 임차인은 종전 집주인(매도인)에게 청구할 수 있다. 매도인은 특약으로 매수인이 다 책임지기로 했다며 억울해 하겠지만 임차인이 승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매도인은 여전히 보증금 반환 의무를 진다. 이를 법률 용어로 면책적 채무인수가 아닌 이행인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최근 이와 관련하여 공인중개사가 이러한 채무인수의 법적 성격까지 분석하여 매도인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는지에 대해 대법원이 중요한 판단을 내렸다(대법원 2024다292525).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법원은 공인중개사에게 그런 고도의 법률적 분석 의무까지 지울 수는 없다고 보았다.

사안은 이렇다. 집주인 A씨(매도인)는 공기업인 한국감정원(현 한국부동산원)에 아파트를 임대했다. 이후 A씨는 공인중개사 B씨의 중개로 법인인 C회사(매수인)에 이 아파트를 매도했다. 매매대금 2억 7,600만 원 중 보증금 2억 4,000만 원을 뺀 3,600만 원만 받고 소유권을 넘겼다. 계약서에는 매수인이 임대차를 승계한다는 특약이 있었다.

하지만 임차인인 한국감정원은 법인이므로 주택임대차보호법상 대항력이 없어 집주인이 바뀐다고 임대인 지위가 자동 승계되지 않는다. 한국감정원은 임대차 승계에 동의하지 않았고, 임대차계약을 해지하면서 매도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청구했다. 매도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자 한국감정원은 보증보험사로부터 보증금을 받았고, 보증보험사는 대위변제한 뒤 A씨에게 구상금을 청구했다. A씨는 꼼짝없이 2억 4,000만 원을 물어주게 되었다. 이에 A씨는 중개사 B씨를 상대로 임차인 동의가 없으면 내가 빚을 떠안을 수 있다는 위험을 왜 설명하지 않았느냐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과 2심(항소심)은 중개사의 책임을 인정했다. 중개사는 거래의 전문가로서 매도인에게 임차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보증금 채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고지하고 임차인의 동의를 확인한 후 소유권을 넘기도록 주의를 촉구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하급심은 매도인 본인에게도 확인할 책임이 있다며 중개사의 책임을 일부(1심 50%, 2심 25%) 제한했으나 기본적으로 중개사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공인중개사의 업무 범위를 엄격히 해석했다. 공인중개사법상 중개행위는 거래당사자 간의 매매 등을 알선하는 사실행위이지, 변호사법에서 규정하는 법률사무와는 구별된다는 것이다.

채무인수가 면책적인지, 중첩적인지, 혹은 단순 이행인수에 불과한지는 당사자의 의사, 임차인의 대항력 유무, 명시적·묵시적 동의 여부 등 복잡한 요건을 따져봐야 하는 법률적 판단의 영역이다. 대법원은 공인중개사가 이러한 법적 성격까지 조사·확인하여 설명할 의무는 없다고 판시했다. 중개사가 적극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단지 법적 위험성을 경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판결을 통해 부동산 거래 시 주의해야 할 점을 살펴보자.

첫째, 공인중개사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중개사는 물건의 현황, 권리관계의 사실관계(등기사항증명서 기재 등)를 확인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역할을 한다. 복잡한 법리적 해석이나 계약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법적 리스크에 대한 심층 분석은 변호사의 영역이거나, 거래 당사자가 스스로 챙겨야 할 몫이다.

둘째, 임차인이 법인인 주택 매매 시 매도인은 각별하게 주의해야 한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는 개인 임차인과 달리, 법인 임차인은 대항력이 없는 경우가 많아 소유자가 바뀐다고 해서 임대차 관계가 자동 승계되지 않는다. 매도인이 보증금 반환 채무에서 완전히 벗어나려면 반드시 임차인(법인)으로부터 임대인 지위 승계에 동의하며, 기존 임대인의 채무를 면제한다는 취지의 명확한 서면 동의를 받아두어야 한다.

부동산 거래는 전 재산이 오가는 중대한 계약이다. 계약서의 특약 한 줄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공인중개사가 괜찮다고 한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법적 리스크가 모호할 때는 공인중개사가 아닌 변호사의 조력을 받거나, 당사자가 직접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내 재산을 지키는 방법이다.

■하희봉 변호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 △충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제4회 변호사시험 △특허청 특허심판원 국선대리인 △(현)대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변호인 △(현)서울고등법원 국선대리인 △(현)대한변호사협회 이사 △(현)로피드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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