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호랑이에게 잡아먹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이 오래된 속담을 그대로 구현한 설화가 있다.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는 조선 후기 민간에서 널리 구전된 이야기로,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기지와 협력이 어떻게 생존과 승리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생활 도구와 직업의 상징성을 통해 민중의 세계관을 압축해 담아낸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설화는 산이라는 공간에서 시작된다. 산은 한국 설화에서 늘 경계의 장소다. 인간의 삶터와 자연, 질서와 혼돈, 문명과 야만이 맞닿는 곳이다. 그 산에 호랑이가 산다는 설정은 곧 자연의 압도적 힘, 통제되지 않은 공포를 의미한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산을 피한다는 대목은 공동체가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회피하는 집단적 선택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험한 경계를 넘는 존재가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다. 생계를 위해 길을 오가는 장돌뱅이들이었지만, 호랑이에게 잡혀 뱃속에 들어가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뱃속에서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은 서로를 확인하고 탈출을 모색한다. 기름장수가 가지고 있던 등불로 어둠을 밝히고, 호랑이가 깜짝 놀란 사이 소금과 기름을 활용해 호랑이를 무력화한 뒤, 결국 몸을 바깥으로 던져 살아남는다. 이어 호랑이의 다리를 묶어 나무에 매달면서 마침내 공포의 존재를 제압하고 마을로 돌아와 영웅이 된다.
호랑이에게 잡혀 뱃속에서부터 탈출을 모색하는 과정은 죽음과 재생이 동시에 공존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힌다. 이미 ‘잡아먹혔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지만, 그 안에서 정신을 차리고 서로를 인식하는 순간 이야기는 다시 삶의 방향으로 전환된다. 이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신과 기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기름장수가 켜는 등불은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행위로, 인식과 깨달음을 상징한다. 불과 기름은 통제될 때는 유용하지만, 쏟아지는 순간 파괴적 힘으로 변한다. 호랑이가 불에 놀라 날뛰는 장면은 자연의 힘조차 인간의 지혜 앞에서 균형을 잃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소금장수가 던지는 소금 역시 강력한 상징을 지닌다. 소금은 생존에 필수적인 물질이자 정화와 보호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눈에 들어간 소금이 호랑이를 무력화시키는 장면은, 인간 문명이 자연을 제압하는 방식이 폭력이 아니라 생활 속 지혜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승리는 무력이나 힘이 아닌, 경험과 지혜의 결과로 나타난다.
특히 협력이 강조된다.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는 각자의 도구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빛과 불, 자극과 마비라는 서로 다른 기능이 결합될 때 호랑이를 제압할 수 있었다. 이는 농경 사회에서 공동체적 협력의 중요성을 설화적으로 강조한 사례로, 개인 영웅담과는 다른 결을 지닌다.
지역이나 판본에 따라 결말은 달라진다. 호랑이를 죽인 뒤 가죽과 고기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핵심은 생존이다.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이 가장 큰 성취로 그려지며, 민중의 현실적 가치관을 솔직하게 반영한다.
호랑이는 절대악이 아닌 자연의 일부로 묘사된다. 배가 부르면 잠을 자고, 불에 놀라 도망치며, 눈이 아프면 저항을 멈춘다. 인간과 자연이 대립하지만 동시에 같은 세계에 속해 있다는 전통적 자연관이 반영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다른 방식으로 읽힐 수 있다. 예측 불가능한 위기 속에서 개인의 전문성과 타인의 역량을 어떻게 결합할 것인가, 공포 앞에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상황을 분석하고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재난, 위기 관리, 협업의 문제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이야기다.
결국 ‘소금장수와 기름장수’는 사람들이 익숙한 도구와 지혜로 공포를 극복할 수 있으며, 그 힘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일 때 완성된다고 전한다. 이 설화가 오랜 세월 살아남아 전해진 이유도, 아마 그 믿음 때문일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