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WBO 아시아-태평양, OPBF 챔피언, 윤덕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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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WBO 아시아-태평양, OPBF 챔피언, 윤덕노

바자 2026-01-24 08:00:02 신고


THE FIGHTING


용기를 주는 세 편의 파란만장 분투기. 당신도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시 일어서기를.


니트 톱은 Mugler. 레더 팬츠, 브리프는 House Never Dies. 목걸이는 Blessed Bullet. 반지는 모두 Bulletto. 벨트, 키 체인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윤덕노


고등학생 시절 복싱장인 줄 알고 발을 들인 체육관은 사실 종합격투기 체육관이었다. 얼떨결에 레슬링, 주짓수, 킥복싱까지 섭렵했으나 무엇을 해봐도 마음이 동하는 건 복싱뿐. 실력도 체력도 체육관 형들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지만 형들이 운동을 멈출 때까지 버티는 것만을 목표 삼으며 2년을 보냈다. 지금의 맷집과 끈기는 그때 다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땐 대학 진학 대신 곧장 선수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한때는 체육관과의 분쟁으로 한국을 잠시 떠나 있기도 하고, 프로 복서로 데뷔했음에도 잡히는 시합이 없어 무작정 훈련만 해야 했던 시간도 있었다. 선수 인생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건, 현재 소속인 수원태풍체육관의 최락환 관장을 만나고부터다. 매일 규칙적으로, 성실하게 쌓은 시간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삶은 운동과 운동이 아닌 것으로 나뉘며 단순해졌다.

마침내 2025년 4월, 윤덕노는 지금까지의 삶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마주한다. 서울에서 열린 WBO 아시아 태평양 & OPBF 슈퍼미들급 통합 타이틀 매치. 두 개의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치르는 경기가 자국에서 열린 뜻깊은 자리에서 그는 당당히 승리했다. 한국 복싱 역사 최초로 슈퍼미들급 WBO 아시아-태평양과 OPBF 챔피언 타이틀을 동시에 획득한 선수. 두 개의 챔피언 벨트. WBC 슈퍼미들급 세계 랭킹 15위. 올해는 또 어떤 수식을 추가하게 될지 모른다. 변함없이 중요한 건 아시아를 넘어선 세계 챔피언이 되기까지, 지금 밟고 있는 계단에서 다음 한 칸을 오르는 일이다.


팬츠는 Roaringrad. 목걸이는 Bulletto. 브리프, 벨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글러브는 포토그래퍼 소장품.


하퍼스 바자 지난 12월 18일 일본 도쿄에서 WBO & OPBF 아시아-태평양 슈퍼미들급 타이틀 방어전을 무승부로 치렀다. 작년 4월 얻어낸 두 개의 챔피언 타이틀은 지켰지만, 부상도 입었고 승리로 끝난 경기도 아니었으니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윤덕노 사실상 내가 진 경기다. 부상 방어로 무승부 판정을 받은 건 2025년 남아 있던 모든 운을 다 쓴 결과라고 생각한다. 처음 1~2주간은 기분이 이상했다. 진 건 아닌데, 속으로는 졌다고 생각했으니까. 깔끔하게 졌다면 악에 받친 상태가 되어 훈련에만 몰두했을 텐데, 그런 전투력이 생기지도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그때의 기분은 사실 내 실력이 부족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에 느낀 감정이라는 걸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내가 갖고 있는 슈퍼미들급 WBO 아시아-태평양 챔피언, OPBF 챔피언 타이틀은 내 복싱 인생의 다음을 보장해줄 수 있는 키다. 벨트를 지켜야 다음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고, 세계 랭킹 순위도 올릴 수 있다. 그 열쇠를 지키겠다는 각오에 너무 큰 부담이 실려버린 것이 패인이었다. 자책을 많이 했다.

하퍼스 바자 심리적인 부담이라면 작년 4월 한국에서 열린 OPBF & WBO 아시아-태평양 슈퍼미들급 통합 타이틀전에서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두 개의 챔피언 벨트를 따낸 경기 말이다. 지금까지의 선수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이었다고 봐도 무방한 순간 아닌가?

윤덕노 그렇다. 애초에 OPBF, WBO 두 타이틀을 동시에 걸고 싸우는 경기가 한국에서 열린 건 처음이었다. 그땐 오직 과거의 노력을 믿었다. 나이와 경력을 다 떠나 정직하게 열심히 노력한 시간은 거짓말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한국 최초의 투 타이틀 보유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언젠가 또 다른 챔피언 자리에 오르게 되겠지. 난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계속 열심히 할 테니까.’ 그때 이런 마음가짐으로 해냈다면, 이번에는 나답지 않게 생각이 많았다. 지금은 다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난 더 노력해야 한다. 실력을 쌓아야 한다.

하퍼스 바자 승리가 확정된 순간에는 눈물을 보였다. 어떤 마음이었나?

윤덕노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일단 한국에서 그 정도 규모의 시합이 열리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했겠나. 특정한 누군가 떠올랐다기보다, 고마운 마음들이 한 번에 슥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나 혼자 잘해서 얻어낸 자리는 아니라는 걸 그 순간 피부에 와닿게 느꼈다.

하퍼스 바자 지금 〈아이 엠 복서〉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복싱이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작년 4월 시합만 해도 극히 소수의 매체만 보도하는 정도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는 않나?

윤덕노 솔직히 말해서, 그런 생각은 잘 안 한다. 복싱이 비인기 종목이라는 건 여기 발을 들였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돈을 많이 벌지 못할 수도, 어쩌면 내가 살아온 인생 가운데 최악의 환경을 경험하게 될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2016년 프로 복서로 데뷔를 했는데, 2~3년 동안 시합을 아예 못 뛰었다. 그때 내 체급이 라이트 헤비급이었는데, 한국에는 복싱선수 풀이 많이 없는 데다 있어도 경량급에 몰려 있어서 나 같은 중량급 이상 선수는 상대가 없었다. 시합이 잡힐 때까지 그냥 운동만 해야 했던 것이다. 요즘 체육관에 〈아이 엠 복서〉 보고 등록하러 왔다는 회원들이 많아 반갑지만 프로 선수들 사이 라이벌 구도를 만들 수 있는, 멋있게 싸우는 한국 프로 선수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 같은 선수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건 그냥 훈련을,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하퍼스 바자 어떤 질문을 해도 “운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답”이라는 말로 돌아오고 있다.(웃음) 최락환 관장이 당신의 최고 자질을 성실함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윤덕노 매일 새벽에 일어나 40분 정도 뛰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관장님과 훈련을 한다. 이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코치 일을 하고 있다. 쉬는 날에도 코치 일을 제외한 운동 루틴은 하루도 빠짐없이 가져간다. 이걸 성실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맞는 것 같다. 근데 사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성실함은 0번 아닌가? 무기가 아니라 기본인 거지. 그래서 하루는 관장님한테 여쭤봤다. 성실함은 당연한 거니까, 그거 말고 나한테 뭐 없냐고. 무식한 거라고 하시더라.(웃음)

하퍼스 바자 두어 달 전, 섭외를 위해 처음 연락했을 때가 생각난다. 일주일 넘게 연락이 닿질 않았는데, 알고 보니 태국에서 한창 훈련을 하는 중이었다.

윤덕노 시합 전 제대로 훈련할 땐 휴대폰을 거의 안 본다. 가족들에게 꼭 필요한 연락만 남기는 정도. 수원태풍체욱관에서 최락환 관장님과 훈련을 시작하고부터는 계속 그렇게 살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묻는데 이건 이유가 있어서 가능한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냥 하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 갔다가 씻고 물 한 잔 마시고, 밥 먹고 출근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체득된 거랄까. 지금 나에게서 복싱을 걷어내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겐 전부인데, 전부인 걸 특별하게 인식하면서 살지는 않지 않나.

하퍼스 바자 전부로 여기는 대상일수록 쉽게 실망하고, 상처 입는다. 복싱을 향한 애정과 사랑이 다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윤덕노 재미있어서. 나를 제일 힘들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 삶에 복싱만 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복싱을 처음 접한 고등학생 때의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

하퍼스 바자 고등학생 시절 처음 복싱을 접한 건 종합격투기 체육관에서다. 킥복싱, 주짓수, 레슬링 같은 다른 종목도 배웠을 텐데, 꼭 복싱이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나?

윤덕노 그곳에서 2~3년 정도 운동을 배웠다. 처음에는 체육관 형들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나도 옆에서 같이 버티는 것만이 목표였다. 기술, 힘, 체력. 어떤 것도 형들보다 나은 게 없었으니까. 프로 데뷔 전까지 할 건 다 해보고 복싱으로 전환했다. 뭘 해봐도 복싱이 제일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게임도 되게 좋아하는 사람인데, 게임할 때 느끼는 재미와 흥분보다 크다면 설명이 될까? 지금도 게임과 복싱 중에 택하라면 고민 없이 복싱이다. 진짜 재밌다니까? (웃음)

하퍼스 바자 이후 대학 진학 대신 바로 선수를 시작했던 건 생활고로 인해 일자리를 찾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 선수 경험 없이 곧바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데에 나름의 부침이 있었을 것이다. 불안하고 흔들릴 때에는 어디에 기대나?

윤덕노 “하던 대로 하라”는 관장님의 말씀. 내가 제일 약해지는 순간은 큰 시합을 앞두고 하루의 모든 일과를 다 끝낸 뒤 혼자 집에 있을 때다. 걱정, 불안, 쓸데없는 생각은 꼭 혼자 있을 때 찾아온다. 내일도 오늘처럼,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다. 그리고 다음 날 더 빠릿빠릿 움직인다. 성실함이 내 무기라고 하지 않았나. 이럴 때 써먹는 거다.

하퍼스 바자 최락환 관장을 향한 신뢰가 두터워 보인다. 어떤 영향을 받았나?

윤덕노 같이 운동을 한 지 4년 정도 되었는데, 그 시간 동안 매일 만나고 부대끼면서 알게 됐다. 나를 믿고 계시는구나, 나도 모르는 내 능력을 알고 계시는구나. 처음으로 한국 타이틀전에 출전했을 때, 관장님 차를 타고 집에 가면서 들었던 말이 있다. “내가 항상 뒤에 있으니까 나 믿고 하면 된다”고. 난 지금도 나를 완벽히 믿진 못해서 나보다는 관장님을 믿는다. 앞으로도 나를 의심하면서, 관장님의 정확한 눈을 믿으면서 운동할 것이다.

하퍼스 바자 WBC 슈퍼미들급 세계 랭킹 15위 윤덕노가 바라보는 다음의 목표는 무엇인가?

윤덕노 무승부로 끝났던 모리와키 유이토와 리매치 경기를 할 예정이다. 일단 거기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이겨야 그 다음이 생기니까. 나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하퍼스 바자 10년 뒤, 윤덕노는 어떤 선수로 기억될까?

윤덕노 동양 챔피언, 세계 챔피언 같은 타이틀도 당연히 좋겠지만, 링 위에서는 어떤 요령도 안 피우고 열심히 했던 선수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면 좋겠다. 정직하게 제 몫을 열심히 한 선수. 난 은퇴하면 산에 들어가 조용히 살 거다.(웃음) 돈 많이 벌어서 편하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정신 바짝 차리고 운동해야지. 지금처럼 성실하게.


목걸이는 Bulletto. 브리프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글러브는 포토그래퍼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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