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어복서' 김민욱, 어느 복싱 챔피언의 예능보다 강렬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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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엠어복서' 김민욱, 어느 복싱 챔피언의 예능보다 강렬한 인생

바자 2026-01-24 08:00:00 신고

3줄요약

THE FIGHTING


용기를 주는 세 편의 파란만장 분투기. 당신도 두 주먹 불끈 쥐고 다시 일어서기를.



팬츠는 Yori Sports. 슈즈는 Onitsuka Tiger. 톱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김민욱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식을 내맡기고 뒹굴거리던 어느 주말,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새로 시작한 복싱 예능에서 선보인 어느 은퇴 선수의 경기였다. 현역 선수의 무자비한 공격으로 코너에 몰린 한 남자가 가드를 단단하게 올리고 주먹을 끝까지 보면서 카운터를 친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복싱을 시작한 뒤 줄곧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다. 드디어 국가대표가 됐으나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선발전에 탈락했다. 설상가상 감독과의 불화가 깊어지며 복싱을 그만뒀다. 이후, 노동판부터 홍대 클럽까지 지금까지 몰랐던 세상을 흠뻑 경험한 그는 입대 후 우연히 집어든 잡지를 통해 패션 사진에 빠져들었다. 제대 후에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우고 스튜디오에 취직했다. 그러나 친구 따라 방문한 체육관에서 운명처럼 복싱과 재회했다.

그렇게 스나이퍼라는 별명을 얻으며 프로 복싱 데뷔 2년 만에 동양 챔피언으로 군림했지만 그의 가슴속엔 더 큰 꿈이 있었다. 5년간의 처절한 노력 끝에 마침내 세계 최대 규모인 미국 프로 복싱 본무대에서 인생 경기를 치렀다. 그런데 몸이 이상했다. 다음 날부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그렇게 링을 떠났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결말이 있는 영화가 아닌 누군가의 실제 인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고 있다. 삶은, 계속된다.


세트업은 Children of the Discordance. 슈즈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하퍼스 바자 어쩌면 〈아이 엠 복서〉에서 가장 주목받은 출연자다. 비록 5회 만에 탈락했지만 일명 ‘그 자세’로 화제를 모았다.

김민욱 은퇴한 아저씨가 낭만을 찾는 느낌이랄까. 노장 투혼이라 좋아해 주신 것 같다. 처음에 아내는 나대지 말라며(웃음) 방송 출연을 결사 반대했다. 걱정되었겠지. 나 같은 아저씨가 팔팔한 이십 대를 어떻게 이기겠나. 지금은 장난 삼아 “나가길 잘했지?” 하면 아내도 그렇다고 끄덕여준다.

하퍼스 바자 당신의 체육관에 부모가 자식 손 붙들고 와서 우리 아이에게도 권투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고. 복싱에 대한 인식이 예전과는 확실히 달라진 듯하다.

김민욱 복싱이 무식하게 ‘막 하는’ 스포츠가 아니라는 걸 아는 거다. 지능적으로 상대를 속이고 멘탈을 다뤄야 하는 운동이라, 생각보다 아이큐가 많이 필요하다. 요즘 부모들도 그런 점을 매력적으로 봐주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체육관을 찾아온 친구도 그랬다. 그런데 프로 말고 아마추어 복싱을 하고 싶다더라. 올림픽 금메달 따는 것보다 세계 챔피언이 될 생각을 하라고 했다.

하퍼스 바자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다. 처음 복싱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김민욱 내가 어렸을 땐 TV에서 해외 복싱 경기를 중계해 줬다. 일요일마다 아버지와 목욕탕에서 경기를 보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중학교 입학식 날 마치 운명처럼 복싱부를 만났다. 촌스러운 단체복을 입고 운동장을 뛰는 모습이 너무 멋지게 느껴졌다. 그때 내 키가 135cm 정도로 작았는데, 아버지한테 복싱부에 들어갔다고 선언하니까 살짝 웃으시더라. ‘그래, 어디 한번 해봐라’ 이런 마음이셨던 것 같다.

하퍼스 바자 아마추어 복싱으로 국가대표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가 후에 프로 복싱에서 세계 챔피언을 꿈꾼 희귀한 이력을 갖고 있다. 아마추어 복싱과 프로 복싱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들었다.

김민욱 어릴 땐 내가 아마추어 복싱을 하고 있는지 프로 복싱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아마추어 복싱은 엘리트 양성을 위한 국가 차원의 육성 사업이다. 큰돈은 못 벌어도 실업팀에 들어가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에 대부분 아마추어 복싱의 길을 선택한다. 우리나라는 일단 운동을 시작하면, 국가대표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그런데 미국은 다르다. 아마추어를 거쳐서 결국 프로가 된다. 프로 리그로 가야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추어와 프로를 둘 다 경험한 내 입장에선, 한국에서도 보다 많은 아마추어 선수가 프로 리그를 경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길 바란다.

하퍼스 바자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비인기 종목이라고 말하는 건 프로 복싱일 테다. 지금 한국의 프로 복싱은 어느 정도 열악한가?

김민욱 한국 챔피언이라고 하면 ‘오’가 아니라 ‘아’ 하는 게 현실이다. 프로 복싱에서 파이트 머니는 한 라운드당 고작 10만원이다. 시합 전까지 투자해야 하는 돈이 우승한 뒤 받는 돈보다 더 큰 셈이다. 자고로 프로 스포츠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있게 마련이다. 돈이 다는 아니어도 돈이 돼야 사람이 모이고, 그래야 리그가 탄탄해질 수 있다. 선수 역시 잘한다고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잡아 끄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런 매력적인 선수들이 발굴되려면 아마추어에서도 활발히 선수들이 넘어와줘야 한다. 아마추어 협회는 국가에서 운영하다 보니까 힘이 있고, 프로는 말한 것처럼 열악하기 그지없다. 아마추어와 프로가 아예 다른 세계처럼 움직이니까 융화가 쉽지 않다.

하퍼스 바자 프로 복싱이 발달한 미국과 비교하면 정반대 상황인 걸까?

김민욱 미국 복싱계를 그린 〈카운터펀치〉라는 다큐멘터리에 잘 드러나는데 미국은 레거시 정신이 없다. 미국은 국가대표가 되어도 나이키 후원 정도가 전부다. 그게 미국에 세계 챔피언은 있어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없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금메달도 별로 없는데 프로도 이미 망해버린. 정반대라기보다 더 나쁜 상황이다.

하퍼스 바자 승패가 분명한 세계에 사는 만큼, 때때로 시합에서 이기고 지는 것이 마치 인생의 승패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김민욱 아마추어는 패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승이 많으면, 말하자면 성적이 좋으면 그걸로 명문 대학을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질 뿐이다. 그런데 프로의 세계에선 치명적이다. 패하면 내 랭킹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프로 선수일 때는 시합에서 지면 사람들이 다 나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다. ‘지면 어떡하지’에 대한 스트레스를 달고 살았다. 특히 미국에서는 이방인이었고 게다가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여기서 지면 끝이라는 압박감이 더 컸던 것 같다. 다만 나의 목표는 승패에 연연하기보다 그저 재밌는 선수가 되는 거였다. 프로의 세계에선 승패도 중요하지만, 얼마만큼 화제가 되는지도 중요하다. 재미있는 경기를 하면 다시 불러주게 돼 있다. 말했듯 프로 스포츠라는 건 엔터테인먼트이기도 하니까.

하퍼스 바자 제일 자신 있는 기술이 오른손 스트레이트라고. 그래서 스나이퍼라는 별명도 생겼다. 복싱 문외한으로서 묻는다. 스트레이트 K.O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

김민욱 복싱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스트레이트를 꽂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랄까. 상대방 뺨을 친다고 해보자. 우리 팔은 본능적으로 밖에서 안으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이지 직선으로 나가지 않으니까. 원거리 공격이다 보니까 타점을 맞추기 어렵고 정확한 타이밍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쓰러뜨리기 까다로운 기술이다. 적중률도 30%밖에 안 된다. 그런데 내 경우엔 유난히 스트레이트가 잘 먹혔고 그걸로 K.O도 많이 시켰다. 저격수 같다고 스나이퍼란 별명을 얻었고 링네임으로 계속 사용했다.

하퍼스 바자 왜 스트레이트 K.O였는지 알 것도 같다. 흔히 운동선수 하면 멋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거라는 편견과 달리, 현역 시절부터 스타일리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외양이 아니라 실제로 당신의 복싱 스타일이 그러하기 때문이란 걸, 시합 영상을 찾아 보고 단번에 이해했다.

김민욱 멋있게 복싱하는 걸 좋아해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가드를 올릴 때도 손을 어디에 붙이느냐, 허리를 어떻게 펴느냐에 따라 보이는 인상이 달라진다. 그렇게 멋있는 자세를 반복해서 갈고 닦다 보니 이제는 몸 자체에 배어 들었다. 일부러 멋져 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동으로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하퍼스 바자 당신이 생각하는 멋은?

김민욱 최근에 주지훈 형이 그러더라. 연기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잘하는 연기가 진짜 멋있는 거라고. 운동도 똑같다. 복싱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봐도 멋있다고 느낀다면, 그게 진짜다.

하퍼스 바자 복싱을 그만두었다가 다시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영화 같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한때 당신이 패션 사진가의 꿈을 키웠다는 것이다.

김민욱 내가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면 영화로 나왔을 텐데(웃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 대학교 시절 감독과의 불화로 숙소를 이탈했었다. 당장 내일 아침 일어나서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나니까 신세계였다. 서울에 올라와서 홍대 클럽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군대에 갔는데, 패션 잡지에서 테리 리처드슨의 사진을 보고 포토그래퍼라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 그렇게 전역하고 카메라를 샀다. 사진 학원도 다녔다. 이후엔 ‘스타일난다’ 초창기 멤버로 취직했다. 물론 내가 꿈꾸던 예술 사진은 아니었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러다가 친구 따라 동네 체육관을 다니게 됐다. 다시, 복싱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프로로 가는 출발점이 됐다.

하퍼스 바자 그로부터 몇 년 후, 당신은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어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김민욱 세계 챔피언이 되고 싶었다. 사실 지금도 되고 싶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국에 갔다. ‘너네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 약간의 호기로움과 함께.

하퍼스 바자 물론 미국 생활이 마음처럼 술술 풀리진 않았다.

김민욱 우연도 있고, 타이밍도 있고, 다시 돌아가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 메이저 경기를 네 번 했다. 그중에서 세 번째 경기를 일주일 앞둔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팔이 안 올라가는 거다. 시합 전에 안전 검사를 하는데, 팔굽혀펴기 5개 하고 팔이 덜덜 떨리더라. 주변에서 괜찮냐고 물어보면 아무 문제 없는 척했다. 경기는 해야 하니까. 시합에서 왼손은 거의 못 쓰고, 어찌저찌 겨우 이겼다. 당시 기사 중에 얼굴에 피가 낭자한 유명한 사진이 있는데, 그날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잠을 잘못 자서 목에 있는 신경이 눌려 한쪽 팔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거였다. 그게 아직도 나에게 가장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하퍼스 바자 인생 경기도 미국에서 치렀다.

김민욱 미국에서의 마지막 경기다. 1 라운드에 내가 세 번 K.O 시켜서 이겼다. 상대편 단체의 부두목이 오더니 말 없이 악수를 턱 건네더라.(웃음) 그런데 그 경기 이후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게 되면서 가슴 아픈 날들이 이어졌다. 은퇴하는 데 결정적 이유가 됐다.

하퍼스 바자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김민욱 안 되는 걸 끝까지 쥐고 있는 건 미련한 짓인 것 같다. 돌아보니 나도 세계 챔피언 할 만한 깜냥은 아니었구나 싶다. 지금은 후련하다. 아내에게도 종종 하는 말인데, 과거의 나를 생각하면 참 딱하다. 고생 많았다. 그때는 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복싱장에서 살았다. 영어를 못하니까 친구도 없고, 하루에 한 번 마트에 들르는 게 일상의 전부였다. 그렇게 5년을 복싱만 보고 사니까 어느 날 더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바보 같지만 그랬다. 세계 챔피언은 못 됐지만 그만큼 노력은 했다 싶다. 그렇게 다시 한국에 돌아 왔고 복싱은 그만뒀다. 이것 때문에 내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하니 싫더라. 그러던 차에 우연히 아내를 만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하퍼스 바자 만약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면 행복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랬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래 시시한 거라고. 실제로 당신이 꿈꾸던 대통령이 됐든 과학자가 됐든 세계 챔피언이 됐든 어린 시절 가졌던 그 꿈과 희망에 비하면 시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김민욱 공감한다. 내가 더 주목 받고 화려한 삶을 산다고 해서 지금의 행복을 알았을까.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면 내 아내를 만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끔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미국에서 돌아온 건가 싶다. 세계 챔피언이 되었다면 큰돈을 벌었을 테고, 그 후로 다시는 복싱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이 정도면 됐지”라고 위안했을까. 지금은 거의 체육관에서 산다. 낮부터 오후까지는 일대일 수업을, 저녁에는 일반 회원을 가르친다. 거의 하루에 12시간 일한다고 보면 된다.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바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하퍼스 바자 지금 김민욱의 꿈은?

김민욱 최고의 체육관을 운영하고 싶고, 누군가를 좋은 선수로 만들 수 있는 코치가 되고 싶다. 그리고 선수들을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돕는 세계적인 프로모터가 되고 싶다. 복싱은 내 운명이다.


퍼 재킷은 Sulv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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