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 개점 전부터 줄을 선 이들의 대화에서는 한국어, 중국어, 영어가 섞여 들린다. 한 손에는 여행 가이드북을,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쇼핑백을 든 이들은 ‘오픈런’의 주역이 된 외국인 관광객들이다. 역대급 고환율이 국내 물가를 압박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 백화점은 명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쇼핑 성지로 변모하고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지난해 외국인 매출액은 전년 대비 무려 82% 증가했고,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역시 52% 늘었다. 같은 기간 롯데백화점 본점 외국인 매출도 40%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의 상황도 비슷하다. ‘MZ세대(1980년~2000년대 초 출생 세대)의 성지’로 불리는 더현대 서울과 무역센터점은 외국인 매출 비중이 전체의 약 20%에 달한다.
특히 외국인 명품 매출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명품 카테고리 외국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명품 매출 증가율(15.6%)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 백화점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가격 경쟁력이다. 22일 원·달러 환율은 1469원으로 반년 전인 지난해 6월 30일(1354원)보다 115원 올랐다. 원·유로 환율(1718원)과 원·파운드 환율(1974원)도 최근 10년간 최고점 수준을 기록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외국인 입장에서는 한국의 명품 가격이 앉은자리에서 10% 가까이 저렴해졌다. 여기에 외국인 관광객에게 주어지는 세금 환급 혜택까지 더해지면 체감가격은 더 낮아진다.
이에 백화점들은 외국인 고객 모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인천공항 환승 외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투어 코스 상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해외의 주요 관광지처럼 환승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맞춤 쇼핑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백화점 부산 센텀시티점도 단기여행객과 크루즈 하선객을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강화할 예정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해 본점에서 외국인 전용 멤버십을 도입하기도 했다. 작년 12월 도입한 외국인 전용 롯데 투어리스트 멤버십 카드는 5% 할인 혜택과 계열사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출시 한 달 만에 1만3000여명이 발급받았다.
외국인 관광객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월부터 11월까지 1741만827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509만8766명) 대비 15.4% 늘어난 수치다. 12월 관광객까지 더해지면 2019년(1750만명) 기록했던 최대 관광객 수를 경신할 것으로 관측된다.
고환율, 고물가, 고금리 등 3고 현상에도 백화점은 외국인 관광객 수요에 힘입어 호조세를 보일 전망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올해 1분기 백화점 경기전망지수(RBSI) 전망치는 112를 기록했다. RBSI가 기준치(100)보다 높으면 유통업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커머스·수퍼마켓·편의점·대형마트 등 다른 유통업이 모두 기준치를 밑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환율 변동성과 관광객 증가 흐름이 이어질 경우 외국인 매출 비중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원화 약세에 관광객 증가가 맞물리면서 한국 백화점이 ‘가격 메리트가 있는 명품 쇼핑처’로 인식되고 있다”며 “외국인 소비가 백화점 실적을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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